# 지난 1월 27일 오후 5시 서울 금천구 가산동. 지하철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에 위치한 우림라이온스밸리 빌딩을 찾았다. 서울시 청년 공간 ‘무중력지대’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6층 일반 사무실 몇 개를 지나 그 곳에 도착했다. 자동문 열림 버튼을 누르자 잔잔한 음악과 함께 88평(293㎡)의 널찍한 실내 공간이 한 눈에 들어왔다. 단연 눈에 띈 것은 실내 한 가운데 위치한 공유 부엌. 인덕션과 싱크대, 냄비와 주걱 등 각종 요리도구가 마련되어 있었다. 방금 설거지를 마친 듯 선반 속 머그컵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남학생 3명이 육각형 테이블을 서성이며 라면을 끓여먹기 위해 냄비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입구에 마련된 안내 책자를 들고, 오른쪽 뒤편에 마련된 개인용 책상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10명 정도가 테이블에 앉아 개인 공부나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부분 2-3명이 짝을 이뤄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작업하고 있었다. 중간 중간 구석에 마련된 미니 당구나 젠가를 즐기는 커플들의 모습도 보였다. 자리에 앉은 지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왼쪽 뒤편에 위치한 온돌방을 찾는 직장인 남성 2명이 보였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사다리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 조용히 잠을 청했다. 2시간이 지나서야 그들은 온돌방을 내려왔다.

▲ 무중력지대 G밸리 내부 지도. 각 구역마다 일, 휴식, 독서, 휴식 등 컨셉이 명확하다. (무중력지대 G밸리 제공)

 서울시 청년 공간 ‘무중력지대’는 현재 금천구와 동작구에 한 군데씩 자리하고 있다. 위치한 곳의 이름을 따서 각각 ‘무중력지대 G밸리’, ‘무중력지대 대방동’이라 부른다. 무중력지대 G밸리는 2014년 12월, 무중력지대 대방동은 2015년 4월에 개관했다. 서울시에서 예산을 투입하고, 공유 공간 사업을 하는 민간 청년 기업이 위탁 운영을 맡는 식이다. 무중력지대 G밸리는 프로젝트노아, 무중력지대 대방동은 엔스페이스가 운영하고 있다. 하루 평균 213여명의 청년들이 무중력지대를 찾고 있다(무중력지대 G밸리․대방동 합산, 2015년 하반기 기준). 처음 이 곳이 논의된 때는 2012년 7월 서울시 굿잡 토론회. 무중력지대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도 이 때가 처음이었다. 기획 초기 단계부터 참여한 조금득 무중력지대 대방동 센터장은 “당시 토론회에서 청년들이 다양하고 새로운 것을 구상하고 시도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감했고, 이후 공간 기획이 진행됐다”고 기획 계기를 설명했다. 무중력지대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오게 됐을까. 무중력지대를 관리․감독하는 서울시 청년정책담당관 청년지원팀 오범주 주무관은 “취업난, 주거나 부채 문제 등 청년들이 겪는 사회적 압력들이 그들의 꿈을 묶어둔다고 보았다”며 “청년들이 이러한 중력에서 벗어나 여유를 갖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무중력지대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2012년 8월 서울시에서 ‘무중력지대 기본계획안’을 수립했고, 2014년 2월까지 청년들이 직접 TF팀을 꾸려 공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머리를 맞댔다. 그 결과 지금의 무중력지대가 탄생했다.     


북 카페, 공유 사무실, 휴게실 기능 더한
청년 맞춤형 ‘다목적 공유 공간’

▲ 무중력지대 G밸리 공유 부엌의 모습. 인덕션, 냉장고, 정수기 등이 있고 청년들은 외부에서 자유롭게 먹거리를 들고 와 요리해 먹을 수 있다.

 무중력지대의 개념은 독특하다. 카페, 공유 사무실, 휴게실의 기능이 한 공간에 모두 모여 있다. 개인 혹은 팀 과제를 진행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이 기본적으로 있지만, 쪽잠을 잘 수 있는 온돌방(G밸리)과 함께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공유 부엌이 마련되어 있다. 500원 짜리 동전 하나로 향긋한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고, 곳곳에 배치된 푹신한 소파와 쿠션도 편안함을 더한다. 일과 모임, 휴식과 요리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청년 맞춤형 다목적 공유 공간인 셈이다. 무중력지대 개관 이전, 이와 같은 청년을 위한 다목적 공간의 선례는 없었다. 오 주무관은 “(무중력지대는) 기능적으로 최초”라며 “처음 기획했을 당시 담당자들이 아이디어를 모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무중력지대 대방동 조 센터장 역시 “운영진들은 카페나 도서관 등 단일한 목적으로만 이 공간이 활용되는 것을 가장 피한다”며, “공부는 물론 청년들이 함께 식사도 하고, 세미나도 여는 등 다양하게 활용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실제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직접 싸온 도시락을 들고 오거나 쪽잠을 자는 등 다양한 용도로 공간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직장인 최민서(30)씨와 정나래(30)씨도 그 중 일부였다. 무중력지대가 입주한 건물에서 근무한다는 최 씨와 정 씨는 간단히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최 씨는 “점심식사나 잠깐 낮잠을 자려고 이 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가장 자주 이용하는 장소를 묻는 질문에 정 씨는 휴식지대의 온돌방을 가리켰다. 그녀는 “회사에도 여자휴게실이 있긴 하지만 사용하려면 눈치가 보이는데, 이 곳은 짧은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장소인 것 같다”고 언급했다.
 

카페나 스터디룸 주로 찾는 청년들
공간 이용 부담 줄여줘

공간 이용료가 무료이고 이용 시간에 제약이 없다는 점도 청년들에게 매력적이다. 특히 조별과제나 취업준비를 위해 커피숍이나 스터디 룸을 찾는 대학생들과 취업 준비생들의 호응도가 높다. 물론 대학 내에도 스터디 룸이 마련되어 있지만 만족도는 낮은편이다. 

▲ 무중력지대 G밸리의 내부 모습.

작년 1월 한국대학생활협동조합과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공동으로 발표한 ‘대학 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대학생 3,700여 명 중 78.8%가 대학 내 스터디 룸 크기와 개수 만족도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학내 스터디 룸은 크기도 작고 개수도 부족하다는 의미다. 외부 공간을 찾더라도 비용이 문제다. 매주 두 종류의 스터디를 주 2회(3시간) 진행한다면, 카페를 이용할 경우 주 16,000원(4000[아메리카노 평균 가격]*4[방문 횟수]) 가량이 든다. 유료 스터디 룸을 이용할 경우는 부담이 더 크다. 주 24,000원(2000[1시간 평균 이용료]*3[이용 시간]*4[방문 횟수]) 가량의 지출금이 생긴다. 대학생 한 달 평균 생활비가 약 40만 9천원 정도임을 감안할 때(2015년 알바천국 설문 결과)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무중력지대는 지갑을 열지 않고도, 편히 찾을 수 있는 작업 공간으로 역할하고 있었다. 돈이 아닌 ‘공간’으로서 지역 청년들에게 공평한 혜택을 주는 셈이다.

▲ 무중력지대 대방동 상상지대(Coworking Zone) 모습. 개인 작업이나 팀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친구와 디자인 크루를 운영하는 양희지(25)씨는 개인 작업 공간으로 카페 대신 무중력지대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전에는 매번 카페에서 작업하다보니 커피 값이 많이 나왔다. 친구와 작업하다가 순수 커피 값만 30만원 넘게 나가겠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며 “이후 무중력지대를 알게 되어 자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숭실대 글로벌미디어학부에 재학 중인 김지향(23)씨와 이은지(23)씨 역시 부족한 학내 공간을 대신해 무중력지대를 찾았다. 김 씨는 “대학교 졸업 작품을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주 3-4회 정도 무중력지대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책상에는 작은 아두이노(컴퓨터 기기 제어용 기판) 키트와 노트북, 여러 권의 노트가 놓여 있었다. 김 씨는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넓은 공간이 필요한데, 학교 공간이 충분치 않아 이 곳을 찾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딱딱한 회의실보다 움직임 자체가 편해야 아이디어가 잘 나오는데,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인 것 같다”며 자유로운 분위기도 장점으로 꼽았다.

 
청년 간 교류의 장
창업 성공 사례도 속속 등장해

이처럼 카페나 스터디 룸의 대체 공간을 넘어, 무중력지대는 커뮤니티 형성을 통해 청년의 가능성을 길러내는 인큐베이터 역할도 하고 있다. 무중력지대에서 창업 프로젝트를 준비해 성과를 거둔 팀들이 대표적이다. 행사 전문 MC를 매칭해주는 온라인 서비스 엠씨파인더를 운영하는 “벤트리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다. 조 센터장은 “이 팀은 몇 달 간 코워킹 존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창업을 준비한 팀”이라며 “지난해 하반기 청년 스타트업으로 인정받아 현재 무중력지대 대방동 2층에 입주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입주한 “청년연대은행 토닥”도 마찬가지다. 청년연대은행 토닥의 김진희 이사장은 무중력지대 자체 인터뷰에서 “안정적인 사무 공간, 그리고 부담 없이 행사를 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기존에 있던 사무실과는 비교 불가능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용 부담 없이 창업 준비 공간을 안정적으로 제공받아 자신들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올해는 지역성 살려
청년 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 

작년 한 해 무중력지대 G밸리에는 총 3억 원, 무중력지대 대방동에는 총 2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무중력지대 G밸리 권진영(27) 매니저는 “작년 한 해 예산의 70% 정도가 인건비와 운영비로 지출되고, 나머지 30%가 청년들을 위한 사업 운영에 사용되었다”며 “올해에도 유사한 규모로 예상 된다”고 말했다. 올해 무중력지대는 어떤 사업들을 계획하고 있을까. 무중력지대 운영진들은 기존 사업을 충실하게 이어가되, 지역성을 보다 반영해 청년들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데 집중할 것이라 밝혔다. 무중력지대 대방동의 ‘청년 악성 부채탕감 사업’과 G밸리의 ‘일터 문화 개선 사업’이 그 예다. 무중력지대 대방동 조 센터장은 “대학 진학 이후 청년들이 학자금 대출을 많이 받기 때문에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며, “부채 문제를 다루는 청년 단체들과 연계해 기금을 모으면서 실제 부채 탕감을 진행하고, 이들을 위한 재무관리 교육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무중력지대 G밸리 권 매니저 역시 일터 문화 개선 사업의 취지에 대해 “청년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진행하거나 일터 개선을 위한 과제 발굴을 진행해, 복합적인 삶터로서의 기능을 회복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중력지대 운영 2년차를 맞이하는 만큼 이전보다 청년들의 삶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겠다는 의미다.
 

청년에게 ‘공간’ 투자하는 무중력지대
숫자 늘리는 만큼, 지속적 운영도 보장되어야

서울시는 올해 하반기 개관이 예정된 성북 무중력지대(가칭)를 포함해, 2020년까지 청년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무중력지대를 8곳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현재 운영 중인 무중력지대 대방동은 정작 자리를 빼앗길 처지다. 내년부터 바로 그 자리에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여성 복합 공간 ‘스페이스 살림’이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1년 안에 새로운 부지를 찾아 옮겨야 할 상황이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 주무관은 “대체 부지를 찾아야 하지만, 아직까지 관련 계획이 확보된 상태는 아니”라고 말했다. 비용 문제 등 현실적 조건이 까다롭다는 이야기다. 조 센터장 역시 “무중력지대의 숫자 자체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운영 중인 무중력지대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같이 고민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커피숍, 스터디룸, 지역 도서관…. 집, 학교, 직장 외에 청년들이 갈 곳은 많다. 공간 자체가 부족해 학업이나 취업 준비에 차질을 빚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공간들의 개수’가 곧 ‘질 높은 청년 공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용도 부담이지만, 이들 공간이 청년 간 교류를 통해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공적 투자를 통한 청년 공간 마련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취업난, 주거 문제 등에 힘들어하는 청년을 지원하고 응원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이들이 편히 휴식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무중력지대는 청년들의 쉼터이자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드는 대안적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편히 들르는 친구 집이나 아지트”를 넘어, “청년들이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언덕”으로서 청년 삶의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무중력지대. 청년들에게 공간을 투자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무중력지대의 시도처럼, 청년 공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보다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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