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서울에 위치한 한 외식업체 본사에서는 5명의 신입공채 지원자들이 2차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 속 한 지원자가 결연한 표정을 짓더니 가져온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통기타였다. 곧이어 조용하던 대기실에 트로트 ‘자옥아’의 통기타 버전이 울렸다. 지켜보던 다른 지원자들도 저마다 자리를 잡고는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엉성하게 걸 그룹 춤을 추는 사람, 큼큼거리며 노래를 불러보는 사람, 심지어는 전통 무술을 연습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이 볼 2차 면접의 필수요소가 바로 ‘장기자랑’이었기 때문이다.
 
구직자들이 면접에서 빈번하게 요구되는 장기자랑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스펙을 초월한 채용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 한편으로는 지원자들의 열정을 본다는 명목 하에 장기자랑을 요구하는 회사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 이진서(27)씨는 “작년에 면접을 본 5개 회사 중 2개 회사가 면접 과정에서 장기자랑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며 ”무엇을 해야 할지도 걱정이었지만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취업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1083명을 대상으로 '그룹 면접에서 이것만은 꼭 피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한 결과, 응답자의 33.33%가 '개인 장기자랑'이라고 답했다. 22.81%를 차지한 ‘압박질문’과 17.54%를 차지한 ‘스펙 비교’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올해 2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과 함께 구직자 233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최악의 면접멘트 중 하나로 ‘개인기를 해보시오’가 뽑혔다. 장기자랑에 대한 구직자들의 부담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면접 현장에서 까다로운 장기자랑을 요구하는 경우 지원자들의 당혹감은 더욱 커진다. 박윤진(25)씨는 작년 한 중소기업의 면접에서 춤과 노래를 제외한 장기를 보여 달라는 면접관의 말에 순간적으로 앞이 깜깜해졌다. 장기자랑에 대한 사전 공지나 언급이 전혀 없었기에 별다른 준비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결국 박씨는 정장을 입은 채 맨바닥에서 요가시범을 보여야만 했다. 박씨는 “장기자랑 때문에 너무 당황해 이후 질문들에 대답을 잘 하지 못한 것 같다”며 “망쳤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박씨는 결국 해당 면접 전형에서 떨어졌다. 
 
아예 장기자랑을 준비하기 위해 학원을 찾는 취업준비생들도 생겨나고 있다. 23일 종로의 한 댄스 학원. 강사가 시범을 보이자 신수정(26)씨의 시선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율동처럼 쉬워 보이는 동작에 곧바로 움직임을 흉내 내어 보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 듯 했다.이번에 배우는 곡은 98년 발표된 코요테의 ‘순정’이다. 신씨는 면접관들이 좋아할만한 예전 가요에 맞춰 춤을 배울 수 있다는 이유 ‘8090 댄스’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신씨는 “장기자랑 때문에 떨어졌다는 후회를 하기 싫어 학원에 등록했다”며 “수강료가 아깝지만 특별한 장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장기자랑에 대한 구직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기업들도 면접 과정에서 장기자랑 전형을 수정하거나 관련 요구를 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작년 신세계는 오디션 형태로 진행되는 2차 면접 ‘드림 스테이지’에서 일반적인 오디션 채용에서 빠지지 않는 지원자의 단순 장기자랑을 배제하고는 관심업무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형식을 도입했다. 관심업무에 대한 구체적인 발표가 직무와의 연관성도 더 높고 지원자의 열정과 관심정도를 알아보는데도 더 적합하다는 이유에서였다.
 
KT도 보여주기식 장기자랑보다는 지원자의 스토리를 주요하게 평가하는 스타오디션을 전형을 실시했다. 해당 면접에 참여했던 한 지원자는 “브릭팝에 관심이 많다고 하면 한 번 해보라는 요구가 항상 있었는데 이번 면접은 관심분야와 나의 연관성을 설명하면 되는 거여서 부담이 덜 했다”며 “오히려 장기자랑보다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어필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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