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역 지하에서 11번 출구로 올라가는 계단은 꽤 높았다. 힘겹게 꼭대기에 다다른 순간 시야를 꽉 채운 건 빨간색 바탕에 쓰여 진 큼지막한 중국어였다. 골목 사이사이로 들어갈수록 중국어간판도 많아졌다. 중국말도 들렸다가 조선족말도 들렸다가 간혹 어설픈 한국말도 들렸다. 주민 다섯 명 중 네 명이 외국인이라는 영등포구 대림2동의 모습이다.

이곳에 위치한 대동초등학교는 전교생의 절반에 가까운 학생이 다문화가정 자녀인 학교다. ‘중국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논다’, ‘한국 학생들이 다문화 아이들을 따돌린다.’ 대동초등학교를 소개한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이다. 2월 5일 오후 1시. 대동초등학교의 따돌림문화를 취재하기 위해 대림역을 찾았다.

하지만 이런 편견은 학교 정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깨지고 말았다.


“얘들아. 너희 학교에 중국인 친구들 많지? 그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있어?” 학교 담장 너머에 있던 학생들을 붙잡고 물었다. 학생들은 가방과 외투를 아무 데나 벗어두고 ‘꼬리잡기’ 놀이에 한창이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다”는 말이었다. 의아한 마음으로 정문을 넘었다.

▲ 대동초등학교 본관 건물. 중앙현관에 써진 문구는 ‘바르게 사이좋게 슬기롭게’다.

대동초 학생들 “다문화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어요”

오후 2시. 진민영(12)군은 세 시까지만 학원에 가면 된다며 인터뷰요청에 흔쾌히 응해 줬다. 친구 중 다문화학생이 있냐는 질문에 진군은 3년 전 중국에서 전학 온 이지훈(12)군 얘기를 꺼냈다. 진군은 “처음에 지훈이가 한국어를 잘 몰라서 말이 안 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로 중국어와 한국어를 가르쳐주며 친해졌다. “지금은 영어학원도 같이 다니고 있다”고 했다. 세 시에 간다던 그 학원이다. 옆에서 장난치던 손승현(12)군도 같은 반 중국인 친구에게 “니치팔러마(밥 먹었니)”를 배웠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발음을 익살스럽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작년 1학기 전교부회장이었던 진민영군은 “중국인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고민을 들어 준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과 중국 학생이 어울리지 않는 문화가 있냐는 질문에 진군은 “그런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몇 명 없다. 보통 다 같이 친하게 지낸다”고 답했다.

이날 대동초등학교에 전학 온 정나(11)양은 학교가 끝난 뒤 친구들과 꼬리잡기 놀이를 했다. 놀이를 주도한 한국인 김태령(11)양에게 중국인 친구와 어울리는 데 불편한 점은 없느냐고 묻자 김양은 “정나가 중국인인지도 몰랐다”고 답했다. 그게 왜 이상하냐는 투의 표정도 지어보였다. 한국인 김민주(11)양도 같은 반 중국인 친구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고 했다. 말이 안 통한 적 없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 말 잘하는 친구도 많다. 어떤 친구는 한국어로 욕도 한다”고 전했다. 함께 놀던 조선족 출신 함 모양(11)은 “사실 4학년 올라와서 따돌림 당한 적이 있다”며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러지 말라고 싸우면서 다시 친해졌다고 했다. 함양은 “지금 함께 놀고 있는 친구들이 그때 싸웠던 친구들”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학교 밖에서 만난 대동초등학교 졸업생 김민규(14)군도 “중국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솔직히 누가 중국인인지도 관심을 안 가진다”고 말했다. 김군은 “차이나타운 근처에 술 취한 중국인들이 많아 불편한 점은 있지만 친구들이랑 지낼 때는 중국인인지 아닌지를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4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 모씨(45)도 “애들은 다 똑같은 애들이지 않느냐. 어울림에 있어서 경계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김 씨는 “언어적인 문제가 충분히 해결되지 않은 중국 학생들도 많아서 아직 학력수준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문화학생들은 잘 어울렸다. 따돌림 문화가 전혀 없는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서로 패를 지어 경계하는 삭막한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다문화학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 대동초등학교 학생들이 방과 후 운동장 옆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

다문화예비학교·이중언어교실에서 한국어 배우는 다문화학생들

다문화학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은 언어 문제다. 2학년 때 중국에서 대동초등학교로 전학 온 라성연(11)양은 “처음 왔을 때는 친구들과 말도 못했다. 국어시간에는 엎드려서 잤다. 수업을 못 알아들었다. 그때는 한국말 거의 못했다”고 말했다. 라양처럼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으로 전학 온 경우 중도입국 학생에 속한다. 중도입국 학생은 유년시절을 한국에서 보내지 않아서 한국어 습득에 어려움이 많다.

새로 입학한 다문화학생들 중에서도 한국어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동초등학교는 2014년부터 다문화학생 비율이 급격히 늘었다. 학기 시작이 우리보다 빠른 중국에서 먼저 학교에 입학 한 다음 반 년 후 한국 초등학교에 재입학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학교 관계자는 전했다. 그래서 한국어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입학한 신입생들이 많아졌다.

대동초등학교는 2015년부터 다문화예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 입국한지 2년이 안 된 다문화학생 중 한국어 의사소통을 어려워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중도입국 학생이나 한국어교육을 받지 않고 입학한 신입생이 주로 이 수업을 받는다. 이 학생들은 6개월 간 예비학교에서 일주일에 10시간씩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해 배운다. 평소에는 본인 반에서 교과수업을 듣다가 특별학급시간에 예비학교교실로 이동하여 수업을 듣는 식이다. 대동초등학교는 작년 2학기부터 이중언어교실도 운영 중이다. 이 시간에는 한국어와 중국어로 수업이 진행된다. 담임교사가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하면 이중언어강사가 중국어로 통역을 해주는 식이다.

예비학교에서 수업을 들은 라성연양의 경우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아이유’ 노래를 부를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좋아졌다. 2015년도 신입생 반을 맡았던 이동숙 교사도 “학기 초엔 우리 반 다문화학생 22명 중 절반 정도가 한국어 읽기와 쓰기를 못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반에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학생은 단 한 명뿐”이라고 전했다.

대동초등학교에서 다문화교육을 담당하는 인민지 교사는 “‘가나다라’도 모르는 학생이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가는 데는 무리가 있다. 기본적인 한국어교육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인 교사는 “우리 학교의 경우 다문화학생 수는 많지만 대다수가 중국에서 온 학생들이라 한국어수업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학생들의 국적이 다양해지면 그만큼 언어도 다양해져 수업진행이 더 어렵다는 뜻이다.

▲ 대동초등학교 다문화예비교실 꿈나래반의 모습. 문에 중국어와 한국어로 된 안내문이 붙어있다.

다문화학생들의 학교 적응에 한국어 교육이 중요

대동초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문화학생 비율이 가장 높다. 전교생 중 다문화학생 비율이 2015년 기준 43.7%에 달한다.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외국인 부모를 뒀지만 귀화한 학생들까지 합치면 이 비율은 70%대까지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단위로도 최근 5년간 초·중·고교에 다니는 다문화학생은 계속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체 학생 대비 다문화학생 비율은 2012년 0.7%였으나 지난해 1.4%를 넘었다.

다문화가정 학생들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만 18세 이하 다문화가정 자녀는 204,204명이다. 이중 만 6세이하 즉 미취학아동이 절반에 가까운 121,310명이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교육 사업 정비가 필요하다.

전문가들도 다문화학생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기 위해 한국어교육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사회교육과 모경환 교수는 2015년 한국다문화교육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낮아 한국어실력이 부족하면 취학 초기 학교 적응이나 학습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연합뉴스 15.11.11일 보도)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주관한 다문화교육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충남 차동병설유치원의 김옥화 교사도 ”다문화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언어교육”이라고 밝혔다.

학부모에 대한 한국어교육도 필요하다. 대동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학부모님들이 한글을 못 읽는 경우 알림장이나 가정통신문을 전화로 하나씩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결혼으로 형성된 다문화가정에서 어머니의 한국어실력이 좋을수록 자녀의 학교생활 적응도가 높다는 명지대학교 아동가족심리치료센터의 연구결과도 있다.

한편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해 7월부터 다문화교육 사업을 확대했다. 다문화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고 다문화학생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다문화유치원시범사업(6곳)·연구학교(4곳)·중점학교(15곳)을 지정해 운영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다문화 중점학교는 전국적으로 150곳이 있다. 다문화 중점학교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다문화 이해교육 실시하며 다문화 친화적인 학교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대동초등학교는 2014년부터 다문화 중점학교로 지정됐다.

대동초등학교 강향옥 교장은 “한국어교육을 통해 우리말을 습득하고, 학습능력이 향상된 학생들을 보면서 굉장한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또 학교 운영의 방침은 편견 없는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강 교장은 “학생들이 편견 없이 잘 자리 잡고 미래 사회의 인력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기초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동초등학교의 졸업식이 열리던 19일 추가 취재를 위해 다시 한 번 대동초등학교를 찾았다. 이날 졸업식에는 이준식 교육부 장관도 참석했다. 이 장관은 축사를 통해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다름을 장점으로 살리는 것이 미래 사회에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다문화 교육은 우리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라고도 말했다.

졸업식으로 분주하던 그날 학교 운동장 옆 놀이터도 시끌벅적했다. 이날도 여전히 학생들이 뛰놀고 있었다. 학교에 남아 꼬리잡기 놀이를 하던 그 여학생들 말이다. 처음 취재를 갔던 날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기자는 ‘너도 중국인이니?’하고 묻지 않았다. 대동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그런 질문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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