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시험 답안의 어떤 점이 부족하여 감점되었는지 뚜렷하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교수님의 채점 기준을 다시 여쭙고 싶습니다.”

서울대 3학년 박지훈(25, 가명)씨가 작년 6월 전공과목 교수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다. 박씨는 이 과목에서 당초 예상했던 에이플러스(A+)가 아닌 에이(A) 학점을 받았다. 성적을 확인하고 기분이 불쾌했던 박씨는 같은 교수에게 이메일을 두 번 보내 평가 기준을 상세히 물었다. 답장을 받고 문의를 멈췄지만 박씨의 마음에는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에이플러스 학점을 받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는 대학생이 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단순히 높은 학점이 아니라 최고점수인 에이플러스다. 실제로 에이플러스에 가까운 최종 학점을 받는 대학생 숫자도 증가했다. 대학정보공시센터 대학알리미가 2015년 서울 소재 12개 대학을 조사한 결과, 졸업생 절반 이상이 에이 이상의 최종 학점을 받았던 학교가 1년 전 5곳에서 7곳으로 늘었다.

에이플러스를 받으려면 공부 방법부터 남달라야 했다. 서울소재 A대 졸업 예정인 이하나(가명)씨는 강의 내용을 노트북에 전부 타이핑해 에이플러스를 싹쓸이했다. 이씨는 매번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 시선은 칠판에 고정한 채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키보드에서 나는 타닥타닥 소리는 교수의 목소리와 동시에 시작해 동시에 멈췄다. 이씨는 “들으면서 바로 타이핑해야 최대한 많이 쓸 수 있다”며 “이해가 가지 않아도 일단 썼다”고 말했다.

이씨의 필기노트는 강의 내용으로 빼곡했다. 곳곳에 빨간색으로 강조한 글자와 도형, 표를 활용한 설명도 보였다. 이씨는 스마트폰으로 강의를 녹음해 다시 듣기까지 하면서 필기노트를 달달 외웠다. 학생의 의견을 묻는 시험 문제가 나왔을 때 미리 외운 내용을 써내기도 했다. 4년간 이렇게 공부한 결과 이씨는 최종학점으로 4.3점 만점에 4.13점을 받았다.

일부 학생들은 에이플러스보다 한 단계 낮은 에이(A) 학점을 받았는데도 교수에게 성적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전명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의외로 에이 학점을 받은 학생들이 성적 문의 메일을 많이 보낸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보낸 이메일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장학금을 받으려면 에이플러스가 필요합니다’라고 호소하는 내용에서부터 ‘에이플러스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내용까지 다양했다. 전 교수는 “에이플러스를 받은 학생들 빼고는 전부 다 성적 문의 메일을 보낸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아예 수강 신청 단계에서부터 ‘에이플러스 전략’을 짜는 학생들도 있다. 서울대 4학년 정현승(25, 가명)씨는 수강 신청 전 인터넷 강의 평가 사이트를 미리 확인해 에이플러스를 적게 준다는 댓글이 있는 강의는 무조건 피했다.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학생들이 이용하는 강의평가 사이트 ‘타임테이블’ 게시판에는 ‘이 교수님 플몰(알파벳 성적에 플러스를 반드시 붙이는 것) 해주시나요?’, ‘에이(A) 나왔어요, 플몰은 안 해주시나봐요’ 같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심해진 탓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 4학년 허동녕(25)씨는 “학점이 꽤 높은 친구들도 취직이 안 되는 현실을 알고 난 뒤로 만점이 아니면 성에 차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평균 학점이 올라 성적 장학금을 받기 어려워진 상황도 원인이었다. 이화여대 3학년 한효정(23)씨는 “여섯 과목 중 에이플러스 다섯 개, 에이 한 개를 받아도 수석은커녕 상위 2% 안에 겨우 들더라”라며 “에이플러스를 받으려면 정말 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서울대 4학년 허동녕(25)씨는 2015년 1학기 에이플러스(A+) 여섯 개와 에이 마이너스(A-)한 개를 받았다. 사진에서 맨 아래 보이는 과목의 성적이 유일한 에이 마이너스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이하나씨는 에이플러스를 받으려고 필기노트만 외우다 보니 정작 독서할 시간은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려대 전명수 교수는 “대학생들이 학과 공부에 충실한 것은 긍정적”이라면서 “에이플러스 학점만 쫓으면 진로 탐색이나 인격 성장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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