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無緣)사회. 일본 공영방송 NHK 다큐멘터리 팀이 2010년 방영한 고독사한 사람들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인생을 취재한 기록을 옮긴 책의 제목이다. NHK 다큐멘터리 팀은 고독사가 만연한 일본사회를 인연이 없는 사회라 하여 ‘무연사회’라고 불렀다. 이 책엔 ‘유품정리업’이라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한다. 아무도 찾아가려 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나서서 지워야 하는 고독사의 흔적을 전문적으로 치워주는 일종의 청소부다.

‘일본의 현재를 보면 한국의 10년 후가 보인다’ 한국과 일본의 발전 속도를 비교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10년, 일본의 인구구조에 따른 사회변화는 한국사회를 내다볼 수 있는 전례다. 하지만 이젠 굳이 10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1인 가구는 예능소재가 되었고, 고독사는 뉴스의 단골 소재다. 그리고 어느새 유품정리업이 한국사회에 등장했다. 예비 사회적기업 (주)함께나눔 크린키퍼트 전무이사 이창호씨에 의해서다.

지난 2월 16일 오후 2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마상로에 위치한 (주)함께나눔 크린키퍼트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 빌딩 앞엔 아직 시동이 걸려있는 트럭 한 대가 서있었다. 직원들은 트럭에서 짐을 내렸다. 방금 일을 끝내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트럭을 지나쳐 2층으로 올라갔다. 사무실에는 직원들보다 먼저 올라온 이창호 전무이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업실패가 전화위복이 되다

사업실패가 유품정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대학교를 일본에서 다닌 이창호 씨는 무역업으로 일본에서 자리 잡았다. 일본 기업이 한국에 진출할 때 도움을 주는 컨설팅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다 고객이었던 일본인 기업가의 권유로 한국에서 석면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 2~3개월 동안 사업은 매우 잘나갔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석면 공사 도중에 이 씨의 직원이 사망하게 되어 한동안 사업허가가 취소되고, 그 사이 경쟁업체가 급증하면서 선발주자로서의 경쟁력이 약해져 사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문제는 석면 사업을 접었는데도 남아 있는 방진복, 석면차량, 공기를 빼내는 기계와 같은 각종 장비들이었다.

이창호 씨는 “이 장비들과 연관된 사업을 찾다가 눈에 띈 게 유품정리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로 <유품정리인은 보았다>라는 책을 읽고, 일본 최초의 유품정리기업 ‘키퍼스’라는 회사에 찾아갔다고 했다. 3개월 정도 ‘키퍼스’에서 일을 하고, 사업을 차린 건 2011년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유품정리회사는 이 씨가 일본 ‘키퍼스’에서 이름을 따 온 ‘크린키퍼스’가 유일했다.
 

처음엔 고인이 꿈에도 나와, 이제는 익숙해

막 일을 마치고 돌아왔던 그는 “오늘은 냄새제거만 하는 작업만 해서 수월한 날이었다”고 했다. 실제 작업 현장을 찾아가지 못한 아쉬움을 보이자 “오늘은 어차피 제대로 된 현장을 볼 수 없었고, 실제 현장이었다면 냄새로 고생했을 것”이라며 “차라리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품정리업을 시작했을 때 겪었던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씨는 “처음에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냄새”였다며 “옷은 물론 코털에도 그 냄새가 남아서 일주일 넘게 고생했다”고 했다. 또 “겁도 많아서 너무 무서웠다”며 “꿈에 나타나기도 했고, 깨어 있는 순간에도 눈 앞에 귀신들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가짐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돌아가신 분한테 편하게 하고, 그 분들은 나를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은 익숙해져 냄새도 나지 않고, 일이 편안해졌다는 이 씨는 웬만하면 직원들과 함께 여전히 현장에 직접 나간다. 한 번 현장에 나가면 4~5시간 정도 일하지만 그는 거뜬하다고 했다.

▲ 왼쪽부터 고독사 현장, 청소 현장, 청소 후 모습이다.

고독사는 청장년부터 노인까지, 진짜 무연고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

유품정리 의뢰는 1주일에 평균 5건 정도다. 단순히 유품처리가 힘들어 의뢰를 하는 경우나 혈흔이 상당한 각종 사건처리 의뢰도 있지만, 유품정리 의뢰의 절반은 고독사 처리다. 고독사의 경우는 대개 이웃이 악취나 이상한 냄새를 맡고 경찰이나 119에 신고를 하게 되어 알려진다. 한 번은 시체가 뒤늦게 발견되고 부패 정도가 심해서 이웃들이 냄새로 고통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주민들이 구세주가 왔다면서 반긴 적도 있었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혼자 죽느냐는 질문에 이 씨는 “고독사는 노인들도 많지만 청장년층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특히 고시원 자살이 많고 빚 때문에 혼자 지내다가 자살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 노인들의 고독사 유형도 다양하다고 했다. 자식들이 외국에서 사는 경우, 가까이 살면서 왕래가 없는 경우, 정말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이 씨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형제이기 때문에 무연고는 사실상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한다. 경찰이 8촌까지 수소문하면 95%는 유족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찾은 유족의 반응은 다양하다. 죽음을 슬퍼하는 경우 있지만 간혹 현장에서 웃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친척인 줄 모르고 살다가 소식을 듣고 와서 집의 보증금이나 유품이 남아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이 경우다. 혹은 외국에서 살아 직접 찾아올 수가 없어서 이 씨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고독사로 인해 난감한 건 집주인이라고 이 씨는 말한다. 거의 대부분의 유족이 유품정리 처리 비용을 지불하지만, 간혹 시신인수조차 거부하고 유품처리 비용도 나 몰라라 하는 유족이 있다고 했다. 이럴 때 비용부담은 집주인이 하게 된다. 고독사 처리비용은 폐기물 1톤 비용이 18만원, 인건비 인당 18만원(1인당 9만원X2명), 사다리 비용 8만원으로 기본이 44만원이다. 혈흔이 있는 경우엔 특수청소비 30만원이 추가된다. 그는 유품을 처리하지 않으면 집주인이 집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내게 된다고 했다.

이창호 씨는 별의 별 사연을 다 만나고, 파렴치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지만, 유족이 울 때 같이 슬프고 유족이 고맙다고 할 때 이 일에 보람을 느낀다.
 

사연을 묻는 건 금기지만, 물건만 봐도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

이 씨는 신월동에 사는 어느 50대 여성의 사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주 미인인 여성이 머리맡엔 전축을 두고 누워 있던 침대 정면엔 큰 그림을 배치하여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며 죽음을 맞이했다. 심지어 경제적 어려움이 없었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했다. 하지만 셋째 딸이 시집을 가면서 집에 혼자 남게 되고,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창호 씨는 유품을 처리하면서 절대 유족에게 직접적으로 사연을 묻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그는 유품만 보고도 어느 정도 죽음의 사인 파악이 가능하다. 이 씨는 신월동 50대 여성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인 것 같다고 했다. 냉장고에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에서 단순 자연사는 아닐 것이라는 거다. 그는 그녀가 스스로 단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웰다잉’이 정착되기를

현재 이 씨는 유품처리 과정에서 이웃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는 방법을 고안 중이다. 시신이 오래 방치 되었을 경우엔 파리 같은 벌레가 많이 꼬이는데 약을 뿌리지 않으면 주변에 병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폴리스라인이 쳐지기 전에 해충약을 뿌리는 방안을 경찰에게 제안했으나 이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장 보존의 원칙’이 있어서 경찰이 수사를 끝내기 전까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유품정리업은 우후죽순 생겨날 겁니다. 그만큼 수요가 있으니까요” 이창호 씨는 유품정리업을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 씨는 적당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허가제를 언급했다. “폐기물 수집관리, 소독 방역, 허가 위생관리는 꼭 허가가 필요하다”며 “무허가 업체가 했을 경우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일본처럼 ‘자격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일본에는 ‘유품정리사’ 자격증이 존재한다고 한다. 좀 더 전문성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씨는 “현재 대한민국 유품정리사 1호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며 자부심을 보였다. 이 씨가 보유한 자격증은 정식은 아니지만 평생교육원에서 받은 거다. “일본에서도 현장에선 방진복을 입지 않는다”며 “이는 내가 도입한 것”이라며 유품정리업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

또한 그는 유품정리를 업으로 삼으면서 ‘웰다잉’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일을 하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됐다”며 웃었다. 앞으로 ‘임종노트’를 배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노트>와 비슷한 것이냐고 묻자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엔딩노트>는 병으로 죽음을 앞둔 한 남자가 죽기 전에 하고자 하는 걸 모두 시도하는 모습을 딸이 촬영한 영화다. 이 씨는 “노트를 예쁘게 제작하여, 노년층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남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역업 이전엔 ‘해외웨딩’이란 개념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하기도 했어요. 젊었을 때 많은 직업을 거쳤는데, 유품정리업은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이창호 씨는 “앞으로도 체력이 되는 한 계속 현장에 나갈 것”이라고 했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한겨레 신문 칼럼(2013년 4월 8일)에서 한국사회를 “‘예의바르게 무관심한’ 개인들의 사회“라고 말한 바 있다. ‘혼자 사는 걸 스스로 선택했든,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든, 1인 가구는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되었다’며 ‘서구 선진국에서 시작해서 일본을 거쳐 한국도 이제 가족도 개인화하고 조직도 개인화하는 사회로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우리사회에서 이젠 연령층과 상관없이 고독사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예의바르게 무관심한 이 사회에서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는 이창호 씨 같은 사람도 함께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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