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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를 만나다
배지현 | 승인 2016.04.11 09:52

“Feel the Bern(버니를 느껴라).”

미국은 지금 버니 샌더스 열풍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샌더스 상원의원(76)은 50년 넘게 복지와 분배를 주장해왔다. 그의 일관성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샌더스 돌풍의 가장 큰 요인이다.

우리나라에도 40년 가까이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며 외길을 걸어온 정치인들이 있다.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60)도 그들 중 하나다. 노회찬은 학생운동, 노동운동 그리고 진보정당을 위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지탱해온 걸까.

지난달 26일, 노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 노원에 있는 마들연구소를 찾았다. 연구소는 스무 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이곳에는 그와 12년째 함께 일하는 박규임 보좌관이 있었다. 약속 시각인 오전 11시에서 10분이 지나자 노 전 대표가 모습을 보였다. 그는 훤히 드러난 이마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악수를 건넸다.


첼로를 연주하던 소년, 용접봉을 잡은 청년이 되다

연구소 구석에는 작년 정의당 당 대표 경선에서 사용됐던 포스터가 놓여 있다. 방긋 미소를 지으며 첼로를 안고 있는 노 전 대표가 보였다. 그는 중1 때부터 첼로를 연주했다. 당시 흔하지 않았던 첼로를 배우게 된 건 집안 형편 덕분은 아니었다. 그의 고향은 부산 동구 초량의 산동네로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다. 그는 1956년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함흥 출신인 그의 부모는 사글세에 살면서도 오페라를 보러 다닐 만큼 예술을 중시했다. “어머니가 중학교 입학 전에 악기 하나씩 배우라는데, 누나가 먼저 피아노 한다니까 나는 첼로를 선택한 거죠. 그냥 크기가 크면 다루기 쉬울 줄 알고.”

   
▲ 정의당 당 대표 후보 포스터

그에게 학창 시절을 묻자 “중학교 때까지는 모범생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교과서를 가장 좋아했고, 선생님을 존경하던 소년이었다. 그런 그에게 전환점이 찾아왔다. 72년 고입 재수를 위해 서울로 올라오면서 겪게 된 사건이었다. 그는 그 날을 ‘소년에서 청년이 된 날’로 기억한다. 10월 유신이었다. “대통령이 헌법을 어겼는데 세상은 조용한 거예요. 그때 느꼈죠. 아 뭔가 잘못됐다.”

그는 재수학원 수업이 끝나면 광화문 서점에서 <사상계>, <씨알의 소리>, <다리>, <토지> 등을 구입했다. 어느 날은 하루 만에 책을 다 읽고 새로운 서적을 사러 가니 주인아저씨가 다 읽은 책과 새 책을 바꿔주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73년 경기고에 입학했다. 그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써클을 만들어 공부했고 유인물도 제작했다. “유신 타도라고 적은 유인물을 돌리다가 선생님들에게 걸리는 바람에 조기 방학을 당하기도 했죠.”


그는 고3 때 서울대에 지원했지만 떨어졌고, 이듬해 입대했다. 제대 후 그는 서울대 철학과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원서를 썼다. 그 이유에 관해 묻자 그는 “당시 두 학교가 학생운동을 가장 활발히 했기 때문”이라 대답했다. 그는 고려대 정외과 79학번으로 입학했다. 학생운동에 몸담던 그가 노동으로 발길을 돌린 이유는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 2014년 출간된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광주민중항쟁을 거치면서 학생과 지식인들의 저항만으로는 폭압적인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직접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다. 영등포 청소년직업학교에서 6개월 동안 용접을 배워 82년도에 2급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그는 산업용 보일러를 취급하던 서울 대림 보일러, 부천 금호 실업, 인천 현대철구를 거치며 용접봉을 잡았다. “용접에 꽤 소질 있었죠. 산업재해를 당해 무릎이 다치기도 했지만, 일을 잘하니까 다른 사람보다 월급을 두 배는 더 받았어요.”


토론의 달인에서 삼성 X파일까지


노 전 대표는 ‘진보정당을 만들어 보자’는 꿈을 이루기 위해 92년 노동운동에서 정치로 입문했다.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시기는 2004년 민주노동당 선대본부장 시절이었다. 첫 계기는 3월 20일 김석연 변호사의 대타로 출연한 KBS <심야 토론>이었다. 그는 이날 토론에서 “50년 동안 같은 불판 위에서 삼겹살을 구우면 고기가 새까맣게 타버린다. 이제는 판을 갈아야 한다”, “한국의 야당은 다 죽었다. 누가 죽인 것이 아니라 다 자살했다”고 발언해 일명 ‘노회찬 어록’을 탄생시켰다.

   
   ▲인터뷰를 하는 노회찬 전 대표

그는 여세를 몰아 그해 비례대표 8번에 당선됐고, 민주노동당 지지율을 13%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가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었다. 2011년 진보신당과 통합해 통합진보당을 창당했으나 2012년 당의 부정 경선을 목격하고 조준호, 심상정 의원 등과 정의당을 만들었다. 때로는 ‘삼성 X파일 사건’처럼 스스로 가시덤불에 뛰어든 적도 있었다. ‘삼성 X파일’은 1997년 안기부가 도청한 녹취 테이프와 보고서로 삼성이 여당 대선후보와 검찰 고위급 간부에게 뇌물을 줬다는 내용이었다. 2005년 MBC 이상호 기자가 이를 보도했고 노 전 대표는 그 보도 이후 ‘떡검(떡값 받은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대법원은 2013년 그에 대해 징역 4개월 자격정지 1년 형을 확정 지었다.

그는 의원직을 상실하고 이듬해 동작을 지역에서 출마했지만 패배했다. 그래도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평소 그가 자주 하는 말은 “잘못돼도 죽기밖에 더해”이다. 그 힘으로 그는 나름 즐겁게 살고 있다. 특히 전자기기를 좋아한다. “아이폰으로 오카리나도 연주하고 그래요.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 그는 최근 출시된 아이패드를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트위터로 사진 올리고, 매주 월요일 팟캐스트로 소통


그는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를 자주 한다. 현재 올라온 글만 해도 16,346개다. 그의 트위터를 검색하면 그가 만든 알리 올리오, 봉골레, 미역국 등 여러 음식을 볼 수 있다. 그는 인터뷰 중 요리 얘기에 가장 눈이 반짝였다. 특히 면 요리를 좋아한다는 그는 전 세계의 다양한 면을 모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요즘 대세인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라 치켜세우자, 그는 “나는 그냥 살려고 하는 거지”라며 씩 웃었다. “먹는 거 참 좋아해요. 먹는 데는 안 아껴. 살려고 먹는 사람이 있고, 먹으려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후자야.” 연구소 근처 맛집도 자주 찾는다. 그의 단골집 중 하나인 ㅇ고깃집 사장 장숙희(55) 씨는 “회식이나 인터뷰로 자주 오시는데 고기는 늘 본인이 굽는다”며 “가게가 다 오픈된 곳이라 지나가는 주민들과 소주도 함께 마신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부인의 생일에 손수 옥돔 미역국을 끓이기도 했다. “옥돔 미역국은 육지에서 먹기 힘들어요. 제주도 갔다가 생옥돔을 우연히 얻게 돼 야심작으로 한 거죠. 소고기 미역국도 맛있지만, 미역이 해산물이라 도다리처럼 비리지 않은 생선과 궁합이 더 잘 맞아서 (옥돔 미역국이) 한 등급 더 위야. 평소에는 성게나 굴을 넣고 끓여요.” 부인 김지선 씨는 87년 노동운동을 하다 만났다. 김 씨는 90년대부터 여성운동에 뛰어들었고, 현재는 정의당 당원이다.

현재 노 전 대표는 2014년부터 유시민, 진중권 씨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이하 노유진)>에서 매주 특유의 입담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국정교과서에서 올바른 교과서로 명칭을 바꾼 건 조폭들이 ‘착하게 살자’하고 문신을 새긴 것(71편 2부)”, “허위사실공표는 바나나 우유에 바나나가 들어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바나나 우유라고 하는 겁니다. (47편 2부)” 등 정치 쟁점에 대해 재치 있는 비유를 구사한다. 노유진은 지난 12월 29일, 누적 다운로드 1억 건을 넘어섰다.

시사평론가 이종훈 씨는 작년 신동아 8월 호에 “악의적 비유를 하더라도 적정선을 유지해 살짝만 하면 위트로 받아들여진다”며 “이걸 잘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다”고 말했다. 노유진이 실질적으로 정의당 홍보에 도움이 됐냐고 묻자 그는 “정의당 당원 가입 사유에 노유진이라고 쓰는 사람이 늘었다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가끔 길에서 70대 노인분이 이어폰을 꽂고 있다가 저를 가리키며 놀라기도 하세요. 노유진을 듣고 있는데 나타났다고.”


모든 국민이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세상

그는 트위터를 통해 자주 떠올리는 문구로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를 꼽았다. 이는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가 자신감과 희망을 품자는 뜻으로 국민에게 연설한 말이다. 그는 이 대목 뒤에 “더 나은 정치는 얼마든지 가능하며 세상은 원하는 만큼 바꿀 수 있다”고 적었다. 과연 그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일까.

그는 2010년 출판된 <진보의 재탄생>의 서문에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대학서열과 학력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지방에서 태어나도 그곳에서 교육받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의 광대는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문화의 힘을 강조한 백범 김구 선생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연구소 왼쪽 책장에는 <김구>와 <김구 청문회 1, 2>가 꽂혀 있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문화라고 생각해요. 문화는 여유 있는 사람만이 향유하는 사치가 아니에요.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려야죠.”

마지막으로 문화의 가치를 고려해 이용요금을 더 받아야 한다는 의견에 관해 물었다. “문화적 가치로 고급과 저급을 나누는 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모나리자 같은 그림이 비싸도 보는 건 저렴해야죠. 비싸다고 다 좋은 게 아니에요. 아니 마약은 얼마나 비싸.”

미국의 샌더스는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빈부 격차와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문제의식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영국의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스페인 전쟁을 반대한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 박 보좌관은 “노회찬 전 의원을 만든 건 팔 할이 그의 어머니”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쳤지만 그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었다. 집에 돌아와 그의 트위터에 접속했다. 그는 스스로를 세 단어로 소개하고 있었다.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배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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