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편집인 마틴 배런이 말하는 ‘저널리즘의 새로운 원칙’

더 모스트(The Most)는 워싱턴포스트의 뉴스 웹사이트다. 워싱턴포스트뿐 아니라 타임, 애틀랜틱 같은 미국 유력 매체 뉴스를 한 번에 볼 수 있다. 이 사이트 접속만으로 독자가 ‘모아보기’ 가능한 매체 수는 41개 (2015년 12월 기준). 온라인 판만 발행하는 신생 매체는 물론 브라질, 인도 매체의 영문판 사이트까지 포함됐다. ‘워싱턴을 위해, 워싱턴과 함께(For and About Washington)’라는 슬로건 아래 온라인 사업은 뒷전이던 워싱턴포스트가 달라진 결과다.

변화의 선두에는 마틴 배런(Martin Baron)이 있다. 2013년 1월 워싱턴포스트 편집인 취임 후 배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동영상 뉴스 서비스 확장이다. 2014년 국제 온라인 저널리즘 심포지엄 연설에서 그는 “디지털 혁신만이 성장을 위한 길”이라며 “워싱턴포스트는 현재 온라인 실험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런이 이끄는 워싱턴포스트는 더 모스트 이외에도 모닝 믹스, 포스트 에브리싱 같은 새로운 뉴스 웹사이트를 출시했다.


보스턴 글로브(Boston Globe)에서의 배런 : 탐사보도로 진실을 알리다

워싱턴포스트에 오기 전 배런은 탐사보도를 지휘하며 진실을 쫓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 1976년부터 24년 동안 기자로 살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자 경력만 17년이다. 편집인 경력은 2000년 마이애미 헤럴드에서 시작했다. 2001년 쿠바 소년 곤살레스의 쿠바 귀환 사건을 보도해 마이애미 헤럴드에 퓰리처상을 안겼다. 이후 보스턴 글로브 편집인으로 자리를 옮겨 2002년 보스턴 가톨릭 교구의 아동 성추문 은폐를 세상에 알렸고, 이듬해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보스턴 가톨릭 성추문 사건’이라 불리는 당시 보도는 미국 탐사보도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배런은 올해 4월 캘리포니아 주립대 리버사이드 캠퍼스 연설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가톨릭이 수 십 년간 비밀리에 감춰온 문서들을 뒤졌고 결국 진실을 찾았다. 성적 학대와 은폐는 보스턴 교구뿐 아니라 전 세계 가톨릭에서 자행되고 있었다. 이것은 명백한 진실이었다.”

퓰리처상 선정위원회는 “용감하고도 포괄적인 보도”라는 평가와 함께 2003년 보스턴 글로브에 최고상인 공공서비스 상을 수여했다. 찬사는 12년이 지나도 끊이지 않았다. 할리우드에서 보스턴 글로브의 보도 과정을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가 제작돼 현재 북미 개봉을 앞둔 상태다. 영화 제목은 보스턴 글로브 탐사보도 팀명에서 따왔다. 연출을 맡은 토마스 맥카시 감독은 최근 한 필름 페스티벌에서 이 영화가 “진실을 쫓는 탐사보도에 바치는 연서”라고 밝혔다. 끈질긴 추적으로 탄생한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는 배런이 진실을 알리는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히 복무했다는 증거다.


탐사보도가 남긴 것, 저널리즘 빅 무브(Big Move)

그러나 배런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중이다. 최근 각종 인터뷰와 연설에서 그는 전통 저널리즘의 통념을 버려야한다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연설에서 그는 “전통적 종이 신문을 만드는 것이 언론이 하는 일의 전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종이 신문은 영원하지 않다”고 말했다. 변화에 대한 그의 믿음은 역설적이게도 보스턴 글로브 편집인 시절 내놓은 탐사보도에서 시작한다.

“보스턴 글로브의 가톨릭 성추문 보도를 연구하던 뉴욕대학교 클레이 셜키 교수는 보도가 퍼지는 과정에서 모순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바로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만들어낸 모순이다. 성추문 보도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규모로 전 세계에 퍼질수록, 회사 수익 모델은 무너졌다. 인터넷으로 인해 기사가 더욱 빨리, 더욱 많은 이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지만 회사를 떠받쳐온 광고 수익은 무너져 내린 것이다. 셜키 교수의 지적은 옳았다.” 같은 연설에서 배런이 한 말이다.

언론사의 전통적인 수익은 구독료와 광고료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인터넷 무료 뉴스 유통망이 언론 시장을 휩쓸면서 워싱턴포스트의 구독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013년 상반기에만 신문 판매 부수가 7% 이상 줄었다. 매출이 줄자 인력 감축도 불가피했다. 2013년 이후 워싱턴포스트 직원 중 400명가량이 해고될 정도였다. 배런이 편집장으로 취임했을 때 워싱턴포스트는 수익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위기에 놓여있었다.

배런은 인터넷이 가져온 저널리즘 환경의 변화를 거부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변화의 흐름에 뛰어드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 변화를 ‘빅 무브(Big move)’라고 부르기로 했다. 변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날 것이다. 가능한 선택은 단 하나다. 적응해서 살아남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연설에서 배런이 남긴 이 말은 오늘날 워싱턴포스트가 180도 달라진 행보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한다.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에서의 배런 : ‘독자’ 아닌 ‘고객’ 위한 뉴스

배런이 택한 생존 전략은 뉴스의 상업성 강화다. 과거 언론이 ‘읽히기 위한 기사’를 썼다면 이제는 ‘상품이 되는 기사’를 쓰자는 입장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연설에서 그는 “편집국 직원들은 그동안 언론사가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언론사는 광고주나 독자에 비해 우월한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이제는 수익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널리즘 환경이 변했으니 뉴스의 수익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14년 국제 온라인 저널리즘 심포지엄에서도 그는 같은 입장을 보였다. “독자, 관람자, 청취자 모두 우리의 ‘고객’이며 이들 모두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각에서는 워싱턴포스트의 ‘고객 저널리즘’이 2013년 8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매입한 이후 본격화했다고 분석한다. 워싱턴포스트의 온라인 강화 전략이 베조스가 아마존 수익을 키울 때 썼던 전략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베조스는 배런의 고객 저널리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올해 2월 기사에 의하면 배런은 2013년 베조스와의 첫 회동을 “그와 논의한 것들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많은 고객들을 끌어올 수 있을까?’ 라는 질문과 관계 있었다”고 요약했다. 그러나 창간 130주년이 넘은 정론지 워싱턴포스트가 유연한 상업화 전략을 취하게 된 데에는 편집인 배런의 선택이 힘을 발휘했을 터다. 배런은 캘리포니아 주립대 연설에서 “편집과 경영 사이의 벽을 버려야 한다”며 “편집국이 뉴스 상품 창조와 유통, 광고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 부서에서뿐 아니라 편집국에서도 상업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배런의 고객 저널리즘은 인터넷이 주 무대다. “한 꼭지의 온라인 뉴스가 한 부의 신문보다 많은 고객을 모은다”는 배런의 신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컴퓨터나 모바일 등 온라인 환경에 적합한 뉴스를 만들어 ‘순 방문자’ 수를 늘리고, 여기서 광고 수익을 창출하자는 것이 인터넷 고객 저널리즘의 핵심이다. 배런은 작년 온라인 저널리즘 심포지엄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한 달에 3천만 명의 순 방문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 규모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수익을 내거나 광고주의 관심을 끌고 싶은 언론사라면 더욱 그렇다.” 더 모스트와 모닝믹스 같은 워싱턴포스트의 뉴스 웹사이트 역시 순 방문자를 늘리려는 노력이다. 이는 순 방문자 증가가 수익으로 직결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시도다.


배런이 제시하는 미래의 언론인, ‘테크놀로지 비즈니스맨’

배런의 또 다른 생존 전략은 ‘기술’에 대한 이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연설에서 그는 “디지털 시대가 왔다는 것은 언론인이 ‘테크놀로지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며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술은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을 측정하게 해준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기사를 몇 분 동안 보고 얼마만큼 자세히 읽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관심사부터 구독 패턴까지 분석할 수 있다. 기술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의 신념대로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년간 기술 혁신에 집중했다. 뉴스를 만들고 보도하는 과정에서 기술에 최적화된 저널리즘을 구축하려고 했다. 서울신문의 2015년 7월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포스트는 완성된 기사를 인터넷에 먼저 업로드하고 있으며, 업로드 된 기사 중 일부만 다음날 신문 지면에 싣는다. 크리스 코라티 워싱턴포스트 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6월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순 방문자 수는 1년 전보다 68% 증가한 5440만 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기술 혁신이 워싱턴포스트를 종전의 위기에서 구하고 있다. 배런이 기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온라인 언론의 퓰리처 수상, 지금 당장 가능하다”

2014년 국제 온라인 저널리즘 심포지엄에서 배런은 “퓰리처상 수상이 온라인 언론에게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의 대답은 “지금 당장 가능하다”였다. 2009년 퓰리처상이 온라인 매체를 수상 대상에 포함한 이후, 3년 뒤 ‘허핑턴포스트’의 데이비드 우드 기자가 온라인 보도 상을 받아 주목받았다. 배런은 앞으로 온라인 언론의 퓰리처 수상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치 있는 뉴스는 생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이 심포지엄에서 그는 “혼란과 불안 속에서도 우리는 저널리즘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면서 환경이 변하더라도 저널리즘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캘리포니아 주립대 연설에서도 배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저널리즘 환경은 동요하고 있다. 그러나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단 하나 있다. 진실을 찾아내 세상에 널리 알리는 언론인의 사명이다.”

배런의 말처럼 저널리즘 환경은 동요하고 있다. 언론은 이 변화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변화의 한복판에서 40년차 베테랑 언론인 마틴 배런이 선택한 새로운 저널리즘 원칙은 ‘고객’과 ‘기술’이다. 누군가는 이를 뉴스의 상업화라 비난할 것이다. 누군가는 뉴스의 접근성을 높일 기회라고 평할 수도 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온라인 저널리즘 심포지엄에서 워싱턴포스트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배런은 “변화하는 속도가 10년 후를 예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답했다. 그가 이끄는 워싱턴포스트의 미래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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