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에 대한 대중들의 찬사와 지지가 현실 속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예술계와 관련해 잘 다듬어진 비평기사를 다루는 신문이 미국 내에 하나도 없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1927년 미국의 월간지 씨어터아트(Theatre Art)에 실린 기사의 한 문장이다. 88년 전, 당시 미국 무용계에 불었던 ‘변화’의 바람은 오늘날 미국의 현대무용(Contemporary Dance)을 탄생시켰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무용계의 모습은 88년 전 미국의 모습과 닮았다. 더 많은 대중들이 무용을 배우고, 공연을 관람하고, 무용수의 팬이 되기도 한다. 국립발레단의 홍보마케팅 팀장 김현아씨는 월간 ‘몸’지의 인터뷰에서 “요즘에는 국립발레단에서 6회 공연을 하면 5회는 매진이다” 라며 무용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신뢰도가 과거보다 높아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문에서는 여전히 ‘무용’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무용기자’라는 말은 그저 ‘무용전문잡지’에서나 쓰일 뿐이다. 신문스크랩 프로그램 ‘아이서퍼(Eye surfer)’를 이용해 2014년 10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우리나라 주요 3개 일간지에 실린 무용관련 기사를 찾아본 결과, 평균 17건에 불과했다. ‘뉴욕타임즈’가 같은 기간 동안 쓴 약 250건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숫자이다. 88년 전 미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현대무용’을 수면위로 끌어올린 한 사람이 있다. ‘뉴욕타임즈’의 최초의 무용평론가 ‘존 마틴(John Martin)’이다.


1차대전이 끝난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예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무용은 사람들의 여가활동으로 보편화되고, 포크댄스나 사교댄스와 같은 다양한 장르가 생겨났다. 무용평론가 심정민의 논문에 따르면, 무용보도의 시발점인 ‘극장무용(Theater Art)’이 대중들의 흥미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26년,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877-1927)에 의해 ‘현대무용(Contemporary dance)’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발레의 정형화 된 틀에서 벗어나 신체의 자유분방함을 보여주는 현대무용은 그 당시 대중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무용가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움직임을 표출 해 줄 공식적인 목소리가 필요했고 신문사들은 변화하는 무용계의 경향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보도할 만한 기자가 필요했다. 1927년, 미국의 3대 일간지, 뉴욕타임즈, 뉴욕월드, 헤럴드 트리뷴은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다. 정식 무용 칼럼 비평가를 고용하는 것이다. ‘뉴욕월드’의 ‘루쉴마쉬(Lucil Marsh)’, ‘헤럴드 트리뷴’의 ‘메리 F. 와킨스(Mary F.Watkins)’ 그리고 뉴욕타임즈의 ‘존 마틴(John Martin)’이 그들이다. 이들은 음악평론의 일부였던 무용평론을 하나의 독자적인 분야로 분리시켰다. 하지만 1930년대 미국의 경기침체로 예술지면이 축소되면서 ‘뉴욕월드’와 ‘헤럴드 트리뷴’은 무용평론가를 해고시키고, ‘뉴욕타임즈’의 ‘존 마틴’만이 유일한 무용 평론가로 남게 된다.


“마틴의 찬사가 없는 공연은 맨발로 바늘방석을 밟는 것과 같다”


공연이 끝난 다음 날 아침, 무용수들과 공연관계자들이 눈을 뜨자마자 찾아보는 것은 ‘뉴욕타임즈’의 연예란에 실린 마틴의 칼럼이었다. 무용평론가 ‘도리스 헤링(Doris Hering, 1920-2014)’이 ‘댄스매거진(Dance magazine)’에 서술했듯, 사람들은 마틴의 발레에 대한 계간평론, 특출 난 무용수에 대한 의견 그리고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에 관한 단편 등을 읽고 난 후에야 다른 뉴스거리를 찾아볼 정도로 마틴에 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틴의 독자층은 그들에게만 한정 되지 않았다. ‘언론 편집자’들도 마틴의 독자군단의 일부였다. 그들은 마틴의 글이 호의적으로 읽힐 수 있도록 해석이 담긴 논평을 싣곤 했고, 머지 않아 신문의 광고와 무용공연 브로셔에서도 마틴의 평론이 인용된 글들을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비평가의 첫 번째 의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거나 해석하면서 공연의 상황을 표현하는 것 마지막으로 신문에서의 비평은 무용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일반독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용 공연을 잠재적으로 지지하는 독자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마틴이 1956년 뉴욕트리뷴지의 월터 테리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세 가지 원칙이다. 독자들을 이끄는 그의 힘은 이 원칙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전문적인 지식을 과시하는 평론가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대중들은 그를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관객’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도리스 헤링(Doris Hering)에 따르면 ‘존 마틴은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고티에(Theophile Gautier, 1811-1872)의 환기력도, 춤 비평가 안드레 레빈손(Andre Yacovlev Levinson, 1887~1993)의 박식함도 구비하지 않았지만, 언론기사의 중핵인 누가-무엇을-언제-어디서 와 평론의 중핵인 ‘왜’를 절묘하게 배합한 그의 매력적인 글은 독자들을 흡족하게 만들었다’며 그를 설명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마틴의 직관적인 평가는 다른 평론가들에게 비난을 사기도 했다. ‘댄스매거진’의 스튜어트 팔머(Stuart Palmer) 는 ‘마틴은 논쟁을 거쳐 해결 되야 할 논의들을 너무나도 쉽게 요약해 결론짓는 경향이 있다’며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일간지 평론가였던 마틴은 ‘일반 대중’들에게 읽힐 수 있는 글을 <Capezio상을 수상한 존마틴과 마사그라함>
쓰는데 몰두했다.


“현대무용은 최초의 진정한 미국 예술 현상”


극장예술에 대한 마틴의 애정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 되었다. 1893년 6월 2일 켄터키 루이스빌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가수 출신 어머니가 있었다. 극장과 음악을 사랑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고 자란 마틴은 1912년부터 1927년까지 15년간 연극배우로 종사하며 무용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20년대 극장무용이 확산되면서 ‘뉴욕타임즈’의 음악평론가 ‘올린 다운스(Olin Downes)’는 더 이상 무용평론을 대신 쓸 수 없었다. 때마침 무용수 ‘엘자 핀들리(Elsa Findly)’가 자신의 친구였던 마틴을 올린다운스에게 소개했고, 그는 6개월 임시직으로 ‘뉴욕타임즈’에 들어오게 된다. 마틴은 처음부터 오랫동안 몸담을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현대무용’에 매료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에게 현대무용은 신세계였다. 도리스 헤링에 따르면, ‘1926년 끝없는 변화와 격동으로 대변되는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1894-1991)’의 춤은 등장하자마자 1년 내내 마틴의 일요 칼럼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친근하지 않았던 현대무용을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설명하면서 현대무용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그는 젊은 현대무용가들이 그들의 고유한 안무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도록 ‘지지자’ 역할을 해왔다. 마사 그레이엄이 말했듯, 존 마틴이 없었다면 지금의 현대무용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1962년 1,459번째 논평을 마지막으로 ‘뉴욕타임즈’를 은퇴하고, ‘UCLA’에서 무용이론을 가르치면서 ‘무용교육’에 힘쓴다. 그리고 1985년 5월 19일 뉴욕 주 사라토에서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88년전, 미국의 음악평론가가 무용평론을 대신 썼듯 우리나라 일간지의 무용평론은 공연담당기자가 쓰곤 한다. 정작 ‘무용전문기자’들은 설 곳이 없다. 그들에게는 무용전문지 6개가 전부이다. 월간 ‘몸(Momm)’지의 손예운(25) 기자는 무용전문지 좌담에서 “뉴욕의 한 현대무용단에서 일할 당시, 맨해튼 공연이 끝난 며칠 후 ‘뉴욕타임즈’ 리뷰란에 무용단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글이 실렸다. 부정적인 리뷰였지만 무용수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서 우리나라도 ‘자신감 있는’ 비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인 비평은 쉬이 쓰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무용전문지의 재정 문제도 시급하다. 웹진 ‘춤추는 거미’의 진연숙 기자는 ‘우리나라 무용계에 종사하는 무용수나 평론가, 기자들은 오로지 여기에 전력투구해도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든 점’ 이라며, ‘무용이 좋아서, 이를 위해 글을 쓴다’는 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한국 무용 평론계의 현실은 이렇게 ‘열악’하다. 무용평론가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더 많은 곳에 전달할 수 있도록 무용계가 변화할 때 비로소 한국의 존 마틴의 탄생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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