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서울 송파구청은 “잠실지구에서 유일하게 재건축에 들어가지 못한 주공아파트 1단지 5390가구가 17일자로 재건축이 승인됐다”고 밝혔다. 이제 잠실 저밀도 지구는 시영아파트와 주공아파트 1~4단지 모두가 재건축 승인을 받았다. 대다수의 주민들은 재건축 승인을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교육이 위태롭다. 잠실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학교가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영아파트와 주공아파트 1~4단지 안에는 9개의 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4개, 중학교 2개, 고등학교가 3개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초등학교는 휴교하고 중, 고등학교는 그대로 다니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문 닫은 학교

현재 잠실 지역은 잠실초교, 잠신초교, 송전초교, 이렇게 3개의 초등학교가 휴교한 상태다. 휴교한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재건축 공사를 시작하면 다들 이주하잖아요. 학생들은 이사 간 동네의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는 거죠.” 강동 교육청 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파트 단지 내의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해서 모두 그 단지의 주민은 아니기 때문이다.

 

3월에 휴교한 잠실초교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다. 강동 교육청이 조사한 ‘잠실 저밀도아파트 재건축에 따른 학생 수 현황’ 결과에 따르면 잠실초교에 다니던 902명의 학생 중 42%는 시영아파트의 주민이 아니다. 이웃 진주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만 257명에 달했다. 이 학생들은 주변 학교로 전학을 가야한다. 이웃 학교의 학생 수가 갑자기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세훈(잠동초등학교 4학년)군은 지난 3월 잠실초교에서 잠동초교로 전학을 했다. “잠실초등학교 다닐 때는 한 반에 35명이었는데 여기는 한 반에 45명이에요.” 원래는 잠동초교도 한 반에 35명이었다. 휴교한 잠실초교 학생들이 가까운 학교로 몰리면서 학생 수가 늘어난 것이다. 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학교와 재건축 조합의 힘 겨루기

영동일고등학교(구 영동여자고등학교)는 재건축과 관련된 학교 중에 유일한 사립학교다. 영동일고는 재건축과 상관없이 학교를 그대로 운영하기로 한 공립학교들과 다른 결정을 내렸다. 재건축 공사로 인해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서울시 교육청과 합의하여 2004년에 개교하기로 되어있었던 문정고등학교 건물을 빌려 쓰기로 한 것이다. 문정고의 개교는 잠시 보류됐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잠실 지역 말고 다른 곳에서도 학교가 임시로 이전하게 된 경우는 없었어요. 영동여고가 첫 사례죠”라고 말했다. 대신 영동일고는 문정고등학교로 입학하기로 되어 있던 남학생들도 함께 받기로 합의를 보았다. 여고가 남녀공학으로 바뀌고 이름도 영동여고에서 영동일고로 고쳤다. 재건축이 끝나면 영동일고 학생들은 다시 잠실의 건물로 돌아오게 된다.

건물을 임대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건물 사용료부터가 문제다. 영동일고는 서울시 교육청에 매년 11억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공립인 문정고는 공유재산이므로 영동일고에 무상으로 임대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이에 영동일고는 재건축 조합에 문정고 사용료와 이전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또 학교 옆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 지반이 내려앉아 학교 건물이 붕괴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조합에 신축 비용도 부담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3단지 재건축 조합 이사 지종철 씨는 “원래 영동일고는 그대로 두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도 재건축 조합에서 최대한 영동일고의 사정을 봐 주려 하고 있어요. 우리가 상당한 비용을 양보하기로 했는데도 영동일고가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를 계속 하니까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올해 영동일고에 배정된 신입생들은 문정고 건물로 등교한다. 아직 2, 3학년들은 3단지 내에 있는 영동일고로 등교하고 있다. 학교가 찢어져 있는 상황이다. 영동일고 행정실의 정현준 씨는 “2, 3학년들이 언제쯤 문정동의 영동일고로 옮기게 될 것인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아 있는 2, 3학년들은 공사판 속의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수업시간에 공사장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돼요. 등교할 때마다 먼지를 잔뜩 마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침하는 친구들도 많아졌어요. 밤이 되면 학교 주변이 너무 위험해지기 때문에 야간자율학습을 못 하게 된 것도 정말 아쉽고요.” 영동일고 3학년 변서정 양의 말이다.

 

공사는 계속 된다

아직 다른 중, 고등학교는 별 문제가 없다. 신천중, 잠신중, 잠신고, 잠실고가 있는 시영아파트와 주공아파트 1, 2단지가 본격적인 철거를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영아파트와 주공아파트 2단지는 이주가 끝난 상태다. 곧 수많은 학생들이 공사판 사이로 학교를 다녀야 한다. 강동 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길을 따로 둘 거예요. 학생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지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철거가 시작된 3단지 영동일고의 상황을 보면 교육청의 말을 믿기 어렵다.  

서울시 교육청은 잠실 재건축으로 초등학교를 몇 개나 얻게 됐다. 시영아파트, 주공아파트 4단지 등에서 초등학교를 신설하기로 한 것이다. 재건축을 하면 주민이 늘어나서 당연히 초등학교가 더 필요하다. 공립 초등학교는 나랏돈으로 짓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 비용의 일부가 재건축 조합원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학교와 재건축 조합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교육청은 뒷짐만 지고 있다. 둘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태도다. 재건축 기간 동안 잠실 지역 학생들은 공사판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 조용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교육청이 나서서 학생들을 보호할 때다.


 
김유리 기자<kimyuri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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