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업무 처리를 위해 통화 내용은 녹음됩니다.” “이 전화는 전화 서비스 개선을 위하여 녹음됩니다.”

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 내용이 녹음 된다는 안내가 나온다. 기자가 무작위로 전화를 돌려본 결과 인천은 15곳 중 10곳, 서울은 10곳 중 1곳에서 통화를 녹음했다. 안내 멘트는 흔히 쇼핑몰이나 카드회사의 고객 상담센터나 전자제품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면 듣게 되는 것과 똑같았다. 통화 내용의 녹음은 교육청 단위에서 이뤄진 게 아니라 개별 학교에서 취한 조치다. 대개 작년이나 재작년부터 시작한 곳이 많다.

학교가 녹음을 시작한 것은 우선 보안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계성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었더니 “통화 하실 때 학교 보안과 학생 안전에 관련된 내용은 녹음됨을 알려드리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나온 뒤 교무실로 연결됐다. 이 학교는 최근 개인정보 유출 때문에 곤란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이나 교직원의 정보에 대한 문의전화가 올 경우 어떻게 답변을 했다는 근거를 남겨두기 위해서 녹취를 시작했다.

발언 여부를 사후에 확인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려는 목적도 있다.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학교와 학부모 간에 진실공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천 연수구의 해송초등학교는 지난해부터 녹취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 따르면 실제로 녹음을 확인한 적은 없다고 한다.

교사들에 대한 언어폭력을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다. 이 학교 행정실 직원은 “관공서에서 하듯 녹음을 하니까, 다짜고짜 교장을 바꾸라거나 막말을 하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계성초등학교 교무부장 이 모 씨(가명)도 “통화가 녹음된다는 멘트를 들으면 전화하는 사람도 일단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폭언으로 인해 업무에 지장이 오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대체로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현용숙(44)씨는 “대화 내용이 녹음된다면 아무래도 아이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 때문에 마음 편히 학교에 건의할 수는 없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 정지혜 사무국장은 “학부모에게 일방적으로 녹음하겠다고 통보하는 것은 문제”라며 “본인들의 편리함만을 추구해 오히려 학부모에게 질 떨어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송재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있을 수 있는 폭력을 예방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예방 행위도 지나치면 과잉 조치”라며 “이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전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불특정다수의 통화를 녹음하는 것은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학교, 학부모, 지역사회 간의 원활한 소통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양대 교원단체에 교사들의 불만이 접수된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기자가 취재를 위해 문의를 할 때까지 녹음하는 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김 대변인은 “학부모에 의한 폭언이나 신분을 밝히지 않은 민원이 학교 현장에서 많이 발생한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고 학교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데 예방 차원의 녹취는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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