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의 부속기관인 창업지원단은 사실상 계약직들로만 꾸려져 있다. 14명의 직원 중 13명이 계약직이다. 그 중에서도 무기(無期)계약직인 2명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2년 이하의 단기 계약직이다. 정규직은 부장 한 사람뿐인데, 겸직이라 그나마 이 곳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실제 업무는 전부 계약직들이 도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기 계약직이 수적으로 다수인 경우는 대학 내 부속 연구소뿐 아니라 단과대 행정실에서도 발견된다. 한양대 인문과학대 행정팀에는 정규직이 3명, 계약직 직원 11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역시 2년 일한 뒤에는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는 불안정한 신분이다.
 
대학들이 갈수록 ‘비정규직 백화점’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교직원 자리에 비정규직을 대거 뽑으면서, 채용 단계에서부터 아예 ‘2년만 쓰고 버리겠다’는 식의 태도를 드러낸다. 올해 초 한양대의 교무처 채용 공고를 보면, 계약 기간을 ‘최대2년 미만’으로 명시했다. (<표1> 참조) 계약직이 2년 이상 근무하면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다.
 
 1년 근무한 뒤 평가에 따라 재계약이 가능하다는 것도 고용 불안을 더욱 키운다. 이 대학에서 일하는 계약직 교직원 송모(남, 27)씨는 “재계약이 될지 잘릴지 확실하지 않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이지만 급여 수준은 아르바이트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했다. 같은 대학 사회과학대 행정실의 엄두용(남, 32) 씨도 “(계약직으로 일한 것이)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사실 많이 불안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고, 전문성이나 숙련도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표>1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교무처 학사팀에서는 아래와 같이 계약직원을 모집합니다.
 
     모집분야 : 계약직 직원 – 최대 2년(1년 근무 평가 후 재계약 가능)
     지원 자격
     학사학위 이상
     영어회화 가능자 우대
     주요업무 : 학사업무
     년 급 여 : OO대 계약직원 기준에 준함(연봉 약 1,600만 원) – 4대 보험 가입
 
 
다른 대학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이화여대 교양교육원 연구원 채용 공고에는 ‘계약기간은 2년, 평가에 따라 2년까지 연장 가능’이라고 명시돼 있다. 경희대 역시 올해 사회교육원 계약직원을 모집하며 채용 조건을 ‘1년 계약에 최장 2년까지 임용 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서울 소재 사립 K대 인사팀 관계자는 대학 내 비정규직 교직원이 늘어나는 데 대해 “반값등록금 여파로 5년 이상 등록금이 동결됐다. 재정적 문제로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크게 보면, 비정규직을 늘리는 추세는 대학 구조조정의 여파다. 학교 입장에서는 인건비가 가장 손쉬운 비용 절감의 항목이다.
 
대학들이 한시적인 일자리를 양산하는 것도 문제지만, 비정규직 교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고려대학교 인력개발팀의 구자국 과장은 “대학이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상 2년 미만으로 때울 인력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의 비정규직 교직원 정규직 전환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전체 산업 평균과 견줄 때 훨씬 더 열악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OECD의 ‘2013년 비정규직 이동성 국가별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비정규직 중 1년 이상 근무하고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은 11.1%로 16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설사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임금 차별이 심각하다.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기 때문에 단기 계약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성이 높지만, 정규직 직원과 비슷한 업무를 하고도 임금은 훨씬 덜 받는다. 연세대 무기 계약직 노조 관계자는 “무기계약직은 정규직 급여의 평균 30~40% 수준이고, 상여금은 아예 없다”고 했다.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 지부 홍성민 지부장에 따르면 서울대 무기계약직 교직원은 같은 일을 하더라도 기본급이 다르고 수당이나 휴가비가 거의 없다. 법인 직원 연봉의 60~70% 수준을 받는다.
 
정규직에 비해 업무 강도가 낮은 것도 아니다. 연세대 시설팀의 교직원 전모(남, 40)씨는 “계약서상에 규정된 대로 업무를 수행하지는 않는다. 일반 기업처럼 업무분장이 명확히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 학교에서 13년째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수연(가명) 씨는 “대외적으로는 팀장을 맡고 프로젝트를 관할하지만, 무기계약직에 대한 차별 때문에 같은 연세대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대학 내 계약직 교직원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로 보인다. 대학알리미(www.academyinfo.go.kr) 공시자료에 따르면 연세대는 지난 2012년 정규직과 계약직이 각각 537명, 335명이었지만 지난해 각각 490명과 383명이 됐다. 정규직 직원은 줄고 계약직 직원은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고려대는 계약직 직원이 8명에서 331명으로, 국민대는 100명에서 지난해 235명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정규직 직원은 명예퇴직 등을 이유로 갈수록 인원을 줄이고 있다. 신규 채용에서 정규직은 거의 충원하지 않고 비정규직으로 그 자리를 채우는 추세다. 한양대는 지난 4년간 54명의 정규직이 줄었고, 고려대는 지난 1년 사이 18명이 감소했다.

그러나 대학들은 실제로 비정규직이 급증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고려대 인사팀 관계자는 “2013년부터 그 전에는 포함하지 않던 산학협력단 소속 인원을 통계에 넣게 돼 인원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시자료에도 행정 인턴이나 조교처럼 대학본부가 아닌 단과대에서 자체 고용하는 인력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학 내 비정규직 직원의 규모는 정확한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대학이 ‘신의 직장’이라는 말은 계약직 교직원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급여, 업무, 고용안정성 모든 면에서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당사자인 비정규직들이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숭실대 노조 전영석 사무국장은 “처우가 열악해도 대부분 2년만 일하고 떠날 자리라고 생각해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비율은 대학들의 관심사도 아니다. 대학노조 김병국 정책국장은 “대학을 평가할 때 전임 교원 확보율을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처럼 정규직 직원 확보율도 평가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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