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폭행? 딴 세상 얘기죠”..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때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요? 글쎄요. 그런 건 한 번도 고민해 본적이 없어서…”
경기도 과천에 사는 정지은(36)씨는 자신의 7살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질 리 없다고 확신한다. 아이 키우는 많은 엄마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던 사건들이 정씨에게는 남의 일 같다. 그녀가 선택한 보육은 다름 아닌 공동육아다. 뜻 맞는 학부모 20명이 공동으로 출자해 보육 공간을 마련하고, 교사 3명을 고용했다.

공동육아. 지난 1월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부쩍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언론에서는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보육 시설의 대안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사단법인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은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의 각종 보육 정책 토론회에서 최근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과연 공동육아는 무엇이 특별한 걸까?

존중받는 아이들..교사에 반말하며 수직 관계 없애
정지은씨가 딸을 보내는 공동육아 시설인 ‘아이마을 둥구나무’에 가면, 다른 어린이집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장면을 접하게 된다. 20여명의 아이들 모두가 교사에게 반말을 쓰는 모습이 그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 눈에는 버릇없이 키우는 게 아닐까라고 비쳐질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반말 문화’는 사실 교사와 부모들의 협의 하에 사전 기획됐다. 아이들이 교사와 수평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자유롭고 존중받는 존재로 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말이 편해지면서 교사들도 권위에서 벗어나 아이를 같은 눈높이에서 존중하게 됐다는 게 부모들의 판단이다. 밖에서는? 정씨는 “그건 어린이집에서의 문화입니다. 밖에 나가서 낯선 어른들한테 반말을 쓰진 않아요”라고 했다.

아이들을 꾸짖을 때의 모습도 남다르다. 야단치고 벌주는 처벌 식의 훈육은 상상할 수 없다. 정 씨는 “선생님들이 아이를 혼낼 때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정도예요. 예컨대 애들 사이에 주먹다툼이 벌어지면, 손을 꼭 마주잡고 ‘손이 너무 차갑네.’라고 말씀하세요. 그렇게 눈을 보고 말하면 아이들도 다 알아듣는다는 거죠.”라며 교사들의 방식을 지지했다.

교사-학부모의 튼튼한 파트너십
교사와 아이들의 특별한 관계는 교사와 학부모의 특별한 관계에서 비롯됐다. 보육의 두 주체가 서로를 믿는다. 신뢰의 비결은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공동육아의 기본 원칙에서 나온다. 아이를 맡기고 나면 부모가 할 일이 끝나는 기존 어린이집과는 달리, 공동육아의 경우 보육 과정에 부모가 많이 참여한다. ‘둥구나무’의 학부모 백승우(39)씨는 “우리가 선생님을 돈 주고 고용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대등하게 아이를 키우는 협력자의 느낌이죠. 교육과정을 함께 기획하고 회의도 같이 합니다.”라고 말했다.

교사도 만족스러워 한다. 교사 정은혜(39)씨는 “일반 어린이집에서 근무할 때는 늘 평가에 쫓겨서 쉴 시간이 없었는데 공동육아에서는 학부모님들이 연수를 다녀오라고 비용도 지원해 주시고, 교사의 정신 건강을 신경 써주시니까 쉬는 시간과 방학도 충분히 확보됩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신뢰하고 함께 보육을 맡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 구조라는 설명이다.

교사와 부모도 감시자가 아닌 협력자가 된다. 인천에서 협동조합 형태로 공동육아를 도입한 공립 푸른숲 어린이집에서는 한 달에 한번 ‘방회의’라는 것을 한다. 부모들과 교사의 대등한 소통 창구다. 김혜은 원장은 “일반 어린이집에서는 학부모들의 불만을 교사가 매일 개별적으로 받다 보니 스트레스가 굉장히 크거든요. ‘잘못하고 있나’는 생각에 위축되기도 쉽고요. 이런 스트레스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죠. 그래서 저희는 방회의에서 한꺼번에 처리하고, 함께 해결방안을 의논합니다.”라고 했다.

공동육아에서 ‘공동체’의 의미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부모들의 공동체, 교사와 학부모의 공동체에서, 이웃 공동체로 넓어졌다. 인천의 푸른숲 어린이집이 좋은 예다. 여기서는 부모들이 내 아이뿐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다른 아이들도 관심을 갖고 보살핀다. 모든 부모들은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서, 반드시 교실 안까지 들어가 겉옷을 정리해주고 다른 아이들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 김혜은 원장은 “처음엔 부모님들이 어색하다고 다들 불평했다”면서도 “이제는 공동체 정신이 생겨서 미혼모 가정 등 형편이 좋지 않은 집을 위해 다른 부모님들이 자발적으로 돌아가며 반찬을 싸주시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보육의 주체는 결국 사회”
그러나 공동육아는 어느 정도 재정적인 여건이 충족돼야 할 수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둥구나무’처럼 지자체의 지원 없이 자기 돈만 들여 하는 경우, 보육 공간에 필요한 전세금 2억 원을 학부모 20명이 1천만 원씩 출자해 해결했다. 때문에 강남의 영어 유치원 같은 특별 교육 아니냐는 눈총을 받기도 한다. 지자체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재정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푸른숲 어린이집 김 원장은 “낮은 보육료를 올릴 수도 없고, 사람을 더 뽑을 수도 없다 보니 교사들의 노동 강도가 심해졌다”고 했다. 결국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최근 교사 3명은 그만두어야 할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공동육아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기에는 몇몇 걸림돌이 있긴 하지만, 보육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해답을 분명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사와 학부모의 동반자 관계를 실질적이고 성공적으로 입증했다는 이유에서다. 2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보육 문제 토론회에서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이경란 총장은 “교사 대 아동의 비율을 낮춰 교사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부모가 보육에 제대로 참여해 교사와 갑을 관계가 아닌 동반자의 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또 “문제가 발생할 때 대화로 해결하는 신뢰와 소통의 구조를 만들고, 이를 위해 부모와 교사들, 정부가 협조해야 한다.”며 ‘사회가 함께 키우는 보육’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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