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미국 백악관을 방문했다. 이옥선(88), 강일출(87) 두 할머니는 약 3시간 동안 백악관에서 폴렛 애니스코프(Paulette Aniskoff) 부보좌관 겸 공공업무국장을 만나 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미국의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백악관과 국무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의미 있었던 그들의 면담 뒤에는 뉴욕시민참여센터 소장 김동석(58)이 있었다. 지금도 미국에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김 소장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샘물이 날 때까지...’ 알버트 슈바이처의 유명한 좌우명처럼 김동석 소장은 약 20년 동안 ‘미주한인의 정치력 신장’이라는 한 우물만 팠다. 처음부터 계획한 일은 아니었다. 1985년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뉴욕시립대에서 학위를 마친 뒤 귀국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1992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서 LA폭동이 발생했다. 당시 폭동의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면서 김동석 소장은 “미국에서 소수계로 살아가면서 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보호를 받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인종사회인 미국은 “인종 별로 끼리끼리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 하는 사회”였던 것이다. “LA폭동은 미주 한인들의 이주 역사 가운데 가장 참혹하고 치욕스런 경험입니다. 폭동의 가해자였던 흑인들과 남미계 사람들은 그들만의 정치력을 가지고 있었죠. 이런 정치력으로 그들은 처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1991년 백인 경찰관들이 흑인 운전수 로드니 킹(Rodney King)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모습이 TV에 보도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재판에서 경찰관들이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LA폭동이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언론들이 흑인 차별 사례를 보도하던 중 1991년 발생한 ‘두순자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흑인계와 한국인계의 갈등이 불거졌다. 두순자 사건은 당시 상점을 운영하던 미주한인인 두순자씨가 오렌지 주스를 훔친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와의 말싸움 끝에 총을 쏴 숨지게 한 사건이다. 이 보도로 당시 로드니 킹 사건으로 가득 차 있던 흑인들의 분노는 LA한인타운으로 향했다. 당시 폭동으로 인한 로스앤젤레스 전체 피해액은 7억 1천만 달러(약 7800억 원)로 추정되는데 이 중 한인 타운의 피해액은 3억 5천만 달러(약 3800억 원)로 절반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A폭동은 경기 불황으로 인한 일련의 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 “LA폭동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사건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만약 당시 한인들이 정치력만 있었다면 정부에 당당히 치안에 대한 책임을 묻고 정당한 배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200만 이상의 미주 한인들의 생존을 위해 정치력 신장은 필수적이었죠.”

‘생존’을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것이 절실하다고 판단한 그는 1996년 뉴욕에 한인유권자센터(KACE)를 설립했다. 센터를 설립하고 약 20여 년 동안 김 소장은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이라는 ‘한 우물’만 팠다. “센터 설립 초반과 비교하면 한인들의 유권자등록율과 투표율이 크게 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시민권자가 유권자로 등록을 해야 투표권을 가질 수 있죠.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의 대부분도 미주 한인들이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시민권자에게 유권자 등록을 독려하여 나아가 투표에 참여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센터의 노력으로 20여 년 전만해도 단 7~8%에 불과했던 투표율이 지금은 약 45%로까지 뛰었다. “이제는 투표 안내장과 투표 기계에도 한글이 쓰여 있습니다. 또 선출직에 나선 백인 후보들이 한인 미디어에 돈을 내고 선거광고를 내기도 하죠. 센터 설립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한 것입니다.”

한인유권자센터는 뉴욕주와 뉴저지주에 위치해 있다. 한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대도시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다인종사회인 미국에서 한인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정치적 결집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는 설명한다. 미국 지방정부에게 한인은 ‘아시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인종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백인과 유색인종. 특히 지방정부의 경우 유색인종을 세 가지 이상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흑인, 남미계, 그리고 아시아인이죠. 이 때 아시아인은 대개 중국인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한인들의 정치 참여도 전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죠. 힘들게 얻은 정치적 혜택이 모두 중국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결집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인들이 별로 없는 다른 지역에서도 정치 참여를 일으켜야 하는데, 그게 저희의 숙제라고 할 수 있겠죠.”

지난 11월 4일 미국에서 중간 선거(midterm election)가 치러졌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4년마다 선출하고 2년마다 상원의원의 1/3과 하원의원 전체를 뽑는다. 대통령 선거와 겹치지 않는 하원 중심의 선거를 정권 중간에 치른다 하여 ‘중간 선거’라 부르고 이는 정권에 대한 평가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이번 중간 선거는 ‘공화당 압승’과 ‘오바마 참패’라는 결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미주 한인들의 이목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미주 지역 곳곳에서 이루어진 한인 정치인들의 도전이었다. “그전에도 한인 정치인들은 꽤 있었지만, 기초자치단체의 선출직이 대다수였죠. 하지만 최근에는 뉴욕, 캘리포니아, 조지아, 버지니아 등 주요 주 의회에 한인들이 진출하기 시작했어요. 한인들이 선출직에 많이 도전한다는 자체가 미국 주류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미국 내 주류 정치권에서는 ‘유태계, 대만계, 쿠바계에 이어 드디어 한국계 시민들이 정치권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하지만 그의 궁극적인 목표가 한인 정치인의 배출은 아니다. “한인 정치인들이 한인들의 정치참여 열기를 높이는데 기가 막힌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인 정치인이 최종 목표는 아닙니다. 단지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력에 긴장하는 정치인들을 확보하고자 할 뿐입니다.” 

그중에서도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정치인은 ‘론 김’의원이다. 뉴욕주 하원의원 재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에 론 김은 뉴욕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활동해온 정치인이다. 김 소장은 KACE(뉴욕시민참여센터)에 게시한 칼럼을 통해 론 김을 ‘투지와 끈기의 풀뿌리 정치인’이라 칭했다. 지역에서 주요 현안이 생길 때마다 시민들을 독려해 의원들을 찾아다니는 ‘풀뿌리 로비운동’을 해온 김 소장은 풀뿌리 정치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부터 미국은 이미 ‘풀뿌리(Grassroot)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오랫동안 미국의 정치인들은 자본가들이 제공하는 무제한의 돈, 이른바 ‘소프트머니(soft money)'로 정국을 주도해왔습니다. 재력을 이용한 자본가들의 로비가 성행했죠. 그런데 2004년에 소프트머니금지법이 제정되면서 정치인들이 더 이상 자본가들로부터 돈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대신 시민들의 성금, 이른바 ’하드머니(Hard money)'로 선거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민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2008년 선거부터 만들어졌습니다.” 김 소장은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다. 때문에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그를 오바마 대통령의 대표적인 한인 인맥으로 소개하고 있다. “풀뿌리 시대에는 저 같은 지역 활동가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인이 자기 지역을 살피지 않으면 지역 활동가들이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지난 2014년 중간선거 당시 연방 하원에서 1인자로 군림했던 공화당 원내대표 에릭 캔터(Eric Cantor)가 버지니아주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무명의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중앙 정치에서만 재미를 보다가 지역에 소홀했기 때문이죠. 이것이 풀뿌리 정치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풀뿌리 정치의 주요 동력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김 소장은 20여 년 동안 미주 한인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해왔다. 현재 미주한인 커뮤니티를 주도하고 있는 이민 1세대와 1.5세대의 경우 상대적으로 강한 동포의식과 정체성을 기반으로 이러한 활동에 활기를 주고 있다. 활기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로까지 참여 의지가 이어져야 하는데, 그는 이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사실 한인 2세들의 정체성 문제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민자 부모 세대가 자식들의 출세를 위해서만 교육했지, 정체성 교육에는 소홀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중국계나 인도계는 좋은 학교를 나와 주류에 속한 사람일수록 민족 정체성이 확고한 반면 한인 2세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태도의 차이는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정부도 한인이라는 집단의 의미와 중요성에 주목하지 않고 출세한 2세들만 개별적으로 대우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지난 2011년, 당시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후 주석은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활동가들을 모아 격려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정말 부럽더군요. 그리고 지난 9월 말에는 인도의 나렌드라 총리가 뉴욕을 방문해 3만여 명의 인도인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인도의 발전을 위해 인도 동포들이 힘써달라는 내용이었죠. 2011년에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맨해튼의 최고급 호텔에서 ‘출세한 한인 2세들’ 몇 명과 저녁식사를 가질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미주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한국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김 소장은 재미유대인 커뮤니티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그는 ‘미국이스라엘공공문제위원회(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 AIPAC)’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AIPAC은 미국이 전 세계 유대인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로비 활동을 벌여왔다. 매년 3월마다 워싱턴에서 열리는 AIPAC 총회에는 수만 명의 재미유대인과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한다. 김 소장 역시 AIPAC 총회에 10년 넘게 참석하며 이를 연구해왔고 작년에는 <뉴욕일보>를 통해 ‘재미한인들은 AIPAC에서 지혜와 전략 배워야한다’는 연례총회 참가기를 밝히기도 했다. “재미유대인들은 특유의 공동체의식과 노력으로 강한 힘을 확보했습니다. 미국 내 주류 정치인들이 그들에게 긴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AIPAC은 이스라엘의 국익을 위해 활동하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냅니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 역시 재미유대인들이 자국 정부를 위해 노력하기를 바라지 않고 그들이 미국 사회에서 모범 시민이 될 것을 권장합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미주 한인들이 한국을 위해 일할 것을 기대합니다. 이는 정말 미국을 모르는 일이죠. 이민은 영구적으로 그 나라의 시민이 되는 일입니다. 미주 한인들은 한인 정부가 파견한 스파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정부가 인식해야 합니다.”


그는 2009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2012년부터 적용된 ‘재외국민 참정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에 세금을 내는 미주한인들에게 한국의 선거에 참여하라고 투표권을 부여했습니다. 오히려 민족역량을 구축하고 보존하는 데 반하는 소모적인 정책입니다. 한국 정부는 미주 한인들을 자꾸만 한국으로 끌어들이지 말고 한국과 미국의 국익을 일치시키는 논리를 개발해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정부와 AIPAC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국익이 일치되는 논리를 개발하고, 이러한 논리를 전략적으로 펼쳐 양국의 관계 개선에 힘쓰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이러한 논리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는 이러한 논리를 개발함에 있어 청년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최근에 한인시민센터가 한국보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더욱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청년들이 미주한인들의 성과와 노력에 관심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정부 부처 중 가장 예산이 많고 중요한 부서가 ‘재외동포부’인데요. 이는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한국 청년들이 미주한인들의 성취와 노력에 관심 가져야 한국에서도 이러한 전략적인 사업이 발전할 수 있고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청년들은 너무 바쁘다. 해가 갈수록 정치에 대한 회의감은 커지고 당장 눈앞의 취업이 급하다보니 정치, 사회문제에는 소홀해진다. 하지만 김 소장은 무엇보다도 청년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 사회에서 청년들의 역할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도 정치적인 역할이 가장 중요하죠. 청년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 갖지 않으면 그 사회에 타락과 부패를 가져올 뿐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는 1970,80년대 민주 사회를 열망하던 청년들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남아있습니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 역시 절대로 무기력해지거나 무관심하면 안 될 것입니다. 한 사회에서 약자와 소외계층을 소신 있게 대변할 사람은 오직 청년들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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