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논문이 변하고 있다
  대학에서 졸업 논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졸업 논문이 사라진 자리에 갖가지 시험들이 들어서고 있다.한국외국어대학교의 경제학과를 비롯한 몇몇과는 병행 유지하던 논문과 테셋, 매경 테스트 중 졸업논문을 폐지했다. 이제 테셋이나 매경 테스트만을 응시해 일정 점수만 넘으면 졸업할 수 있다. 건국대학교 경제학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졸업논문을 대체해오던 졸업시험을 매경 테스트로 대체했다. 매경 테스트는 2009년부터 신문사 매일경제 산하 매일 경제 연구소가 시행해 온 전 문항 객관식인 경제 경영 이해력 테스트이다. 매일 경제 연구소의 유태형 연구원은 “2013년부터 숭실대, 외대, 건국대를 비롯해 많은 학교들이 매경 테스트로 졸업논문을 대체하고 있고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라고 답했다. 현재 주요 11개 대학이 매경 테스트로 졸업 논문을 대체하고 있다. 
 

             ▲매경테스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대학별 매경테스트 졸업논문 대체 사례

성균관 경영 대학은 공인 영어 시험 점수로 졸업논문을 대체하고 있다. 2007년 졸업논문인정 영어 과목을 폐지한 뒤 성균관대학교 경영학부는 △토익 780점 △토플 CBT 220점 △텝스 690점 등 어학 자격시험에서 기준 이상의 점수를 취득하면 졸업논문을 면제해 주고 있다. 
단순히 자격증이 아니라 학과 특성을 살린 졸업논문 대체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도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언론정보학과는 각종 매체에 보도된 기사로 졸업논문을 대체할 수 있다. 전공의 특성을 살려 참가한 인턴십 활동 역시 졸업논문 대체 활동으로 인정해준다.
  졸업논문을 유지하더라도 보고서 수준으로 간소화하는 학교들도 늘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영학부의 경우 졸업논문 대신 기업전략 보고서를 받고 있다. 중앙대학교 광보홍보학과 역시 수업시간에 제출했던 10장 내외의 전공 수업 보고서 중 가장 잘 된 것 1건을 제출하는 것으로 졸업논문을 대신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부 역시 세미나를 들은 뒤 보고서 2장으로 졸업 논문을 대신할 수 있다.  
  최근, 졸업논문 폐지를 결정한 학교도 있다. 한양대학교는 작년 2014년 2월부터 대부분의 과에서 졸업논문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학과별로 졸업시험과 같은 다양한 대체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강원대학교 행정학과 역시 2015학년도 1학기 졸업논문을 폐지하고 대신에 졸업 시험을 볼 예정이다. 
  오늘날 졸업 논문은 이처럼 폐지되거나, 대체되거나, 점점 간소화되고 있다. 이 현상은 ‘취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각 대학의 졸업 논문을 대체하고 있는 ‘인턴’이나 ‘공인 영어 점수’ ‘경제 능력 시험’ 모두 취업 스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항목들이다.


“졸업논문 폐지, 합리적인 변화다.” 

  졸업논문의 폐지를 지지하는 쪽은 이미 졸업논문이 유명무실해졌다고 말한다. 상당수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졸업논문의 위상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모씨(23)는 “경영학부에서는 졸업논문을 내면 바로 이면지가 된다는 말이 있다.”고 말한다.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민 모씨(24) 역시 “친구들이 평균 졸업논문을 완성하는데 1-2주 정도 투자한다.”고 말했다. 현재 유지되고 있는 졸업 논문 역시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 뿐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학생들의 말들이 잇따랐다.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최성만 교수는 현 대학 상황에서 졸업논문을 인턴이나 자격증으로 대체하는 현상에 찬성한다. “학생들이 취업 준비 등으로 졸업 논문을 쓸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졸업 논문 제도는 의미가 없다. 차라리 학생들이 필요성을 느끼는 어학능력(자격증) 등으로 전공별 특성에 맞게 다양하게 운영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건국대학교 통계학부의 김교수 역시 졸업 논문의 폐지는 ‘현실을 고려한 합리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일부 대형 학부의 경우 학생 수가 120명이 넘는다. 전임 교수가 12명이라고 했을 때 한 교수가 10명 내외의 학생을 맡게 된다. 이 경우 꼼꼼한 지도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험이 보다 객관적으로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측정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의 이재경 교수 역시 졸업논문의 긍정적인 부분을 인정하지만 “대학을 연구중심으로 몰고 가는 상황과 교과과정에서 논문연구나 작성방법을 가르치는 과목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졸업논문은 유지하기 어렵다”라고 답했다.

“지금이야 말로 졸업논문이 절실한 때”
  졸업논문을 폐지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졸업논문을 유지하고 있는 대학도 있다. 서울대학의 경우 90%의 학과에서 졸업 요건으로 논문을 요구한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인문학부와 사회과학부 소속의 대부분의 과들도 20장정도 분량의 졸업논문을 요구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역시 졸업논문이 필수다. 
  이들 대학의 꽤 많은 학생들은 졸업논문이 부담스럽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수료생 구유나(24) 학생은 “취업 준비와 병행하느라 힘들었지만 졸업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졸업 논문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교를 올 해 졸업한 오상희(24)양은 작년 졸업하기 위해 전공과 복수전공을 위해 각각 20장 씩 총 40장의 논문을 작성해야 했다. 그녀는 “시험이 좀 더 편리하긴 하지만 논문은 단순히 쌓은 전공 지식에 대한 확인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은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다. 무엇보다 인문대 학생으로서 글을 쓰고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연습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졸업시험보다 졸업논문이 맞는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졸업논문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교수들도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김애령 교수는 “졸업논문을 인턴이나 자격증올 대체하는 것에 반대한다. 졸업논문의 의미는 대학 졸업-학사 자격이 최소한의 학술적 글쓰기 훈련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인턴’이나 ‘자격증’과 교환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건국대학교 지리교육학과의 이승호 교수는 지금이야 말로 “졸업논문이 절실한 때”라고 말한다. 그는 ”졸업논문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상황은 학생들이 도서관으로 가지만 거기서 전공보다 다른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풍토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학문보다 취업을 우선시 하는 사회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처럼 대학이 제 역할을 못 하는 지금 졸업논문이란 제도를 살려 대학의 본래 취지를 되살려야 한다. “고 주장했다.

폐지나 존치냐, 그것이 문제로다. 
  졸업논문 제도는 현실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워도 이상적으로는 필요하다. 유지냐 폐지냐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로 졸업 논문을 무엇으로 대체하느냐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성균관 경영대학교는 졸업논문을 영어점수로 대체한 뒤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경영학과는 토익점수가 졸업논문 자격을 가지나요?’ 성균관 대학교 학생들의 커뮤니티인 ‘성대사랑’에 올라온 한 글의 제목이다. 경영학과가 졸업 논문 대신 토익점수를 보는 것을 비판하는 게시물이었다. 많은 성대 학생들이 이에 공감하여 ‘부끄럽습니다.’, ‘저도 경영학과지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건 뭐 스펙학과인가요’ 등의 댓글을 달았다. 성대 신문 역시 “경영학 지식을 대변하는 토익 점수.”라는 제목의 기사로 학교의 졸업 논문 폐지에 따른 대체 제도에 대해 비판했다. 
 
반면에 그냥 졸업논문을 쓰게 하는 것 역시 이미 오래 전부터 학생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이화여자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 모두 유명무실한 졸업논문의 존치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학보에 실었다. ‘졸업만을 위한 형식적인 졸업논문’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지였다.


졸업논문이 가야할 길 
  현재 졸업논문은 취업이라는 각박한 현실에 적용되기는 너무 이상적인 제도라는 점 때문에 도태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렇기에 졸업논문의 유지를 주장하는 이승호 교수는 졸업논문도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졸업논문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으로는 졸업 논문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교수들이 졸업논문 제도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면 교수들이 뜻을 모아서 논문 쓰는 학생들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학생들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졸업논문을 제대로 쓰기 위한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 예로 대한지리학회에서 주관하는 학부논문을 발표하여 시상하는 제도를 소개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역시 이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인문학부는 학부생들의 논문을 대상으로 매년 한 차례 우수 졸업논문을 시상하고 68명의 학생에게 총 400만원의 장학금을 상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학생들의 졸업논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이다.
  ‘취업’이라는 현실을 앞에 두고 많은 대학들이 졸업 논문 폐지와 존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현실에 발맞추어 가는 대학은 폐지를 선택하고 실용적인 대안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 경우 대체제도가 기존의 졸업논문을 학문적으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졸업논문을 유지하는 대학은 여전히 대학의 학문적 이상을 말한다. 그러나 역시 학생들에게 외면 받지 않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할 필요가 있다. 폐지와 존치, 대학이 어떤 길을 선택하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중심잡기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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