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4일 오후 5시 34분, 대림동 중앙시장. 중국어로 된 간판이 즐비하다>

“혹시 중국 동포세요?” 수첩을 들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입을 꾹 다문다. 조선족 억양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도 반응은 마찬가지. 주말 오후, 북적이는 대림역 12번 출구 앞 중국 동포들의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대학생 정도 돼 보이는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대답을 피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특유의 억양으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조선족’ 한마디에 말을 멈추고 손사래를 치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저 한국말 잘 못해요.”라며 자리를 뜨려는 조선족 김 모씨(26)를 겨우 붙잡아두고 말을 걸었다. 그는 막 담배에 불을 붙인 상태였지만, 손을 멀찍이 들고 대화가 끝날 때까지 피지 않았다.
 
  1년 전 한국으로 유학 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씨는, ‘조선족 말투를 듣고 알아보는 게 너무 불편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도 제 억양을 듣고 모두 제 쪽을 쳐다봐요. 부담스럽기도 하고 가끔은 친구들에게 미안할 때도 있어요.”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편견이 담겨있다고 했다.  특히 조선족이 연관된 강력 범죄 뉴스가 보도되면 그 편견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조선족 중에서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범죄자)들은 아주 나쁘지만, 우리 모두가 그렇다고 보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이날 만난 조선족들의 대부분은 김 씨와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조선족=강력 범죄’라는 인식 때문에 스스로 조선족임을 밝히기가 어렵다는 것. 조선족 억양을 알아보고 말을 거는 기자를 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12년 전 한국에 와 내내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조 모씨(52)는 “한국인들이 조선족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조선족도 한국인을 믿지 못 한다”고 토로했다. 조선족임을 밝히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거나 쉽게 무시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편견과 차별이 반복될수록, 약자인 조선족은 더 ‘우리끼리’ 뭉치며 한국을 적대시하게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조선족=식인족? 악의적 루머 난무
 
  2012년 ‘오원춘 사건’ 이후 조선족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괴담 수준의 이야기들이 인터넷을 통해 무분별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잔혹한 시신유기수법으로 인해 오원춘이 중국의 인육 공급책이라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국내 체류 외국인의 33% 이상을 차지하는 조선족들에 대한 반감과 공포심은 위험 수위에 달했다. 실제로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에 ‘조선족’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조선족 장기매매’, 조선족 추방’, ‘조선족 살인’, ‘장기적출’ 등 강력 범죄를 연상시키는 부정적 연관 검색어들이 함께 나타난다.

<2015년 1월 21일 오후 12시 52분 DAUM(위), NAVER(아래) ‘조선족’ 검색 연관검색어>


 여기에 지난해 12월 발생한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의 피의자 박춘봉도 조선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잠시 사그라지는 듯 했던 ‘조선족 루머’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난 25일,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는 <조선족 다문화 범죄를 경고하는 한 강력계 형사의 절규>라는 제목의 글이 698건의 추천을 받아 ‘일간 베스트’에 올랐다. 본인을 가리봉동 경찰서 강력계의 형사라고 밝힌 글쓴이는 ‘체험 삶의 현장을 느껴보고 싶으면 밤 12시에 신림 쪽에 가서 하룻밤 지내보세요. 무사 귀환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라며 조선족들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백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조선족에 비하면 극소수다.’ ‘이곳에서 3일만 지내보면 여태껏 보지 못했던 칼부림 장면이 펼쳐질 것이다.’ 등 믿기 어려운 사실들에 대해서도 ‘강력계형사로서 조사하고 실제로 경험한 끝에 만들어진 사실’이라고 썼다.

  <2012년 6월 19일, 구로경찰서 보도자료 일부>

  그러나 이 글은 이미 3년 전 경찰 조사에 의해 허위로 밝혀진 바 있다. 구로경찰서는 당시 보도자료를 배포하여 가리봉동 경찰서에는 강력계가 존재하지도 않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칼부림과 강력사건이 발생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근거 없는 사실이라고 일축했다. 해당 커뮤니티에는 평소에도 하루 평균 3,4건의 조선족 혐오 게시글이 다수의 추천을 받아 ‘베스트’글로 올라간다. ‘인천은 조선족이 인육 공급을 하기 위한 조선족의 루트 연결점이다.’ ‘신림동에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이유는 뒤에 관악산이 있어서 시체 유기를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와 같은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이들도 있다.
 
  이 외에도 경찰 조사 결과 근거 없는 소문으로 밝혀진 이야기들이 아직도 인터넷에서 버젓이 떠돌고 있다. ‘조선족 베이비시터가 아이 둘을 납치해 중국으로 데려갔다. 찾고 보니 이미 장기를 다 떼어낸 뒤였다’는 내용의 ‘조선족 베이비시터 괴담’ 등이 그 예다. 몇 년 전 발생한 루머지만 “지인에게  얼마 전 일어난 사건”, “경찰인 매형에게 직접 들은 사건” 등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실제로 네이버 최대 육아 커뮤니티 ‘맘스홀릭 베이비’에 조선족 베이비시터 관련 글을 검색하면 ‘아이 데리고 중국으로 도망가면 어쩌려고 하느냐’, ‘조선족은 믿을 수 없다.’등의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지던 루머는 실제 외국인 밀집지역 거주자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림동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주민 조 모씨(65)씨는 ‘언제부턴가 밤에는 대림역 근처를 지나가기 무서워 피해 다닌다’고 말했다. ‘인신매매’나 ‘납치’, 등에 관한 괴담을 모두 믿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족들이 칼을 들고 다닐까봐 괜히 불안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동네 식당의 대부분이 중국 음식점이고, 어림잡아 80%는 조선족인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주민 최 모씨(61)씨는 “집값이 싸서 4개월 전 이사 왔는데, 조선족 밀집지역인 줄은 몰랐다.”며 미리 알았더라면 이사를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범죄자 비율 다른 외국인에 비해 낮은 편
 
   ‘조선족=강력 범죄’ 라는 편견에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경찰청 범죄통계 <범죄자 국적>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내 외국인 범죄자 28,984명 중 절반을 뛰어넘는 14,557명이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다. 미국과 베트남, 몽골 등을 훨씬 넘어서는 수치다. 이 중 살인과 강도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703명에 달한다. 미국과 베트남 국적에 비해 4배에서 5배 정도 많다.
 
  그러나 국내 거주 외국인의 나라별 인구수를 감안하면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의 범죄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다고 볼 수 없다. 2013년 12월 기준 국내에 체류했던 중국인은 한국계 중국인(조선족)49만 7989명 포함77만 8113명이었다. 조선족을 중국인 인구에 포함해서 집계한 통계이기 때문에 정확한 비율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전체 중국인의 ‘인구 대비 범죄자 비율’은 몽골과 러시아에 비해 낮으며 미국, 캐나다와는 비슷하다.
 
  또 살인, 살인 미수, 강간 등 강력 범죄자의 비율도 베트남,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른 국적의 체류자들에 비해 눈에 띄는 차이는 없었다. 한국 형사정책연구원이 경찰청의 협조를 받아 발간한 <외국인 밀집지역의 범죄와 치안실태 연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2007년부터 2011년까지 국적별 등록외국인 10만 명당 외국인 범죄자 검거인원은 몽골, 미국, 캐나다, 러시아, 태국, 파키스탄, 우즈벡, 중국 순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미군속의 인구가 등록 외국인 수에서 제외되어있어 검거인원지수가 높게 계산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조선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오해로 인한 잘못된 인식 개선 필요


  형사정책연구원은 이에 대해 ‘범죄자 수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인구 대비 범죄 발생률도 높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중국인의 등록외국인 10만 명당 검거인원이 전체 외국인의 평균치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므로 다른 국적의 외국인에 비하여 유난히 범죄가담률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 또 ‘이러한 분석 결과에 기초하여 일반 국민들이 갖고 있는 외국인의 국적에 따른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바로잡도록 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승환 안양대 중국어과 교수(49)는 ‘우리 사회가 조선족들을 중국인이나 일본인처럼 평범한 외국인으로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와 같으면서 다른, ‘한국인’으로 보기 때문에 부정적인 편견이 더욱 심화된다는 것. 또 이미 조선족에 대한 편견이 고착화된 기성세대들보다는 젊은 세대들부터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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