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밥 먹는데 편하게 먹으라고 제가 손주 안고 나왔어요.”

 

"오늘 플로리스트 첫 수업이었어요. 원래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했지만 다른 일을 하다가 결혼하고 애 키우는 데 바빠서 이제야 배우게 됐어요. 10년 만에 여유가 생긴 거예요. 우습게 들리겠지만, 수업 받다가 계속 울컥울컥 했어요. 애기들이 절 정말 행복하게 해주지만, 그거와 다른 행복… 잃어버린 나를 찾은 느낌이에요.

 

”"만난지 얼마나 되셨나요?"

"(남자) 95일이요. 20살 동갑이에요"
"혹시 여자친구하고 제일 해보고 싶은 게 뭔가요?"
"(남자) 결혼이요."
"(여자) 뭐?"

“휴먼스 오브 서울”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를 누르면 매일 자신의 타임라인에 이름, 나이도 모르는 서울 시민들의 이야기와 사진이 나온다. 휴먼스 오브 서울은 휴먼스 오브 시티 프로젝트의 서울 버전이다. 휴먼스 오브 시티 프로젝트는 세계 200여개 도시에서 진행 중으로, 그 시초는 2010년 미국의 브랜던 스탠던이 뉴욕 거리의 사람들을 찍고 인터뷰한 ‘휴먼스 오브 뉴욕’이다.

새로운 소통창구를 향한 바람
"성균이가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휴먼스 오브 뉴욕 이라는) 이런 프로젝트가 있는데 이거 한 번 봐라. 서울버전으로 하면 어떨까’라고." 친구의 제안에 박 씨는 고민도 하지 않고 "될 것 같다"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본업이 사진작가인 만큼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미디어 속에서 보내고 있다. 이미 전문 작가인 박 씨가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일종의 사회적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기존 미디어에 대한 염증 때문이라고 답한다. "예능, 드라마, 심지어 뉴스까지. 와 닿지 않는 콘텐츠가 너무 많아요. 진실성의 혼란에 대한 염증을 많이 느끼고 있었죠."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방향성을 개척하고 싶다는 바람에 시작된 포맷이 바로 휴먼스 오브 서울인 것이다. 이들이 생각한 방향성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SNS로 일주일 후딱 가죠. 댓글놀이, 쇼핑, 동영상 보기." SNS로 외로움을 달래는 요즘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박 씨는 외로움을 푸는 방법에조차 사람들이 귀찮아하고 나태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어져서죠." 박 씨는 '주변 사람이 모두 소중합니다'라는 흔한 문구는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접근성이 높은 SNS라는 창구를 활용하되,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보는 방법을 선택했다. 사진과 텍스트가 결합한 이야기 전달은 성공적이었다. 프로젝트 1년 만에 얻은 4만 명이 넘는 페이스북 ‘좋아요’ 숫자는 운영진들에게 방향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왼쪽부터 박기훈(31), 크리스티 도켄토르프, 정성균(31) 씨

카메라의 앵글 속에 비친 서울 사람들
박 씨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멘탈 싸움"이라고 표현한다. 정 씨의 경우 프로젝트 초반에는 20명의 시민들한테 연속으로 거절을 당하는 민망한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해야 한다는 왠지 모를 사명감이 있었어요.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 진짜 마음속으로 울었죠." 박 씨는 그때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을 지었다.

인터뷰를 거듭할수록 외국인들과 일반 서울 시민들의 차이를 느끼기도 했다. 박 씨는 어느 날 대낮에 길거리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외국인을 보자마자 인터뷰를 요청했다고 한다. 흔쾌히 응해주는 외국인을 보고 그는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태도의 '다름'을 인식했다. "익스큐즈미 라고 인터뷰를 요청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몸이 뒤로 우선 빠지는데, 외국인들은 앞으로 나와요." 태도의 '다름'은 종종 콘텐츠의 차이로도 이어졌다. 뉴욕과 서울의 휴먼 오브 프로젝트를 비교하면서 지적의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고 한다. 뉴욕의 경우 콘텐츠가 다양한데 왜 서울의 경우는 한정적이냐는 내용이다.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아이언맨, 슈퍼맨 복장하고 지하철 타고, 길거리에서 기타치는 사람이 뉴욕만큼 흔치 않죠." 그러나 박 씨는 문화의 ‘다름’에서 비롯된 개성의 부족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개성은 두드러지지 않더라도 박 씨에게 서울 시민들은 '정 많은' 사람들이다. 외형적으로 뉴욕보다 단조롭지만 파면 팔수록 재밌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에서 박 씨는 이 프로젝트의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는 보통 5분에서 30분 걸린다고 한다. "바쁘다고 5분도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도 얘기 시작하면 20분이 지나도 갈 생각을 안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본인 이야기를 남한테 하고 싶은 거죠. 재밌죠."

취미로 시작한 일, 일상생활의 '소통'으로 자리잡다.
일상적 대화도 인터뷰가 돼버리는 일종의 직업병도 생겼다. "저는 이게 다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제 얘기도 많이 하죠. 수다 떠는 거죠." 인터뷰를 하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면서 되묻는 등 대화의 방식이 효율적으로 바뀌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소통의 즐거움이 프로젝트에 투자한 시간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박 씨는 믿는다. "요즘에는 듣는 게 더 재밌어요. 예전에는 제 말을 했지만. 더 궁금하니까 많이 듣고, 더 깊게 생각하게 돼요." 사소한 주제라도 깊은 대화를 생산해내는 새로운 능력을 발견했다고 박 씨는 만족해했다.

'휴먼스 오브 서울'의 내일
새로운 미디어의 방향성, 비전 제시,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가치 인식. 휴먼스 오브 서울의 시작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두 운영자에게 휴먼스 오브 서울은 청년 시기 자신들이 가장 자신있는 능력으로 도전했던 삶의 한 단락이다. 그들에게 이 프로젝트는 한편으로 절박하고, 다른 한편으로 애절한 도전이다. 순수하고 열정 넘치는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본업과 휴먼스오브서울을 병행하기 힘든 현실적 한계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박 씨가 꿈꾸는 휴먼스 오브 서울의 내일은 프로젝트가 더 유명해지고 성장해서 미디어의 한 장르로 자리 잡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젊은 프로젝트'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페이스북에 게시된 사진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사진을 골라달라고 하자 박 씨는 한참동안 자신의 휴대폰 앨범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고 고민했다. 그동안 찍어온 모든 사진들 중 한 장만 고를 수 없을 만큼 정성을 들인 결과물이었다. “체력 닿는 데 까지 할 생각이에요” 라며 그는 “가장 아끼는 사진 한 장” 에 대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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