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명 학원 강사가 일 년 만에 70억 매출을 올리고 타 학원으로 옮기려 하자, 이전 학원에서 이 강사가 나가지 못하도록 각종 언론에 악성 소문을 퍼트렸다. 문제가 된 건은 시험지 유출과 학력위조였으나, 재판 결과 그 어느 것도 해당사항이 없었다. 한 주류 업체는 경쟁사가 모델을 바꾼 이후 매출이 급격히 오르자 경쟁사를 견제하기 위해 소주에서 석유 냄새가 난다고 허위 소문을 퍼트렸다. 물론 이는 유통 과정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사실이 아니었다. 이후 조사 결과 이는 직원이 벌인 일로 드러났다. 이 두 사례는 모두 해당 당사자와 기업이 나서서 디지털 장의사 업체에 의뢰해 관련 허위사실을 모두 지운 사례이다.

100년 후 페이스북에는 고인의 계정이 산 사람의 계정보다 많을 거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죽고 나면 인터넷에 올라간 그의 개인정보들은 어떻게 될까? 또한 위 사례처럼, 한때 인터넷을 달구었지만 후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소문들, 즉 '죽은 정보'들은 어떻게 될까? 이를 처리하는 직업인 디지털 장의사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가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디지털 장례로, 고인으로부터 개인정보를 받아 고인이 생전에 인터넷에 남긴 기록들을 모두 지운 후 그것들을 한 곳에 모아 디지털 추모관을 만드는 일이다. 추모 페이지에는 가족들과 지인들만 접근해서 생전 고인의 기록들을 보고 고인을 추모할 수 있다. “원래 산 사람하고 죽은 사람은 분리가 되어 있어야 해요.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의 개인정보가 떠돌아다닌다는 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인터넷 디지털 기록까지 삭제를 해야만 진정하게 사람의 장례를 치른다고 저희는 말하죠.” 디지털 장의사 업체 산타크루즈컴퍼니 김호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둘째는 평판 관리로, 악성 댓글이나 루머에 시달리는 사람들로부터 의뢰를 받아 인터넷에 올라간 개인의 정보를 모두 지워 주는 일이다. 산타크루즈컴퍼니는 고객이 홈페이지에 평판 관리를 의뢰하면 정부에서 구매한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류한 다음 다시 그것이 비평인지 비방인지 직원의 판단을 거친다. 한 사람의 직원이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은 하루에 150건 남짓이다. 이렇게 해서 지울 정보가 결정되면 업체가 변호사를 통해 해당 글이 올라간 사이트 관리자에게 삭제 요청을 보낸다. 이미 40명의 연예인과 30개의 기업이 산타크루즈컴퍼니와 계약한 상태다. 유명 연예인과 기업의 관리비는 연 1억 5천만원에서 2억 5천만원이 들지만, 일반인의 경우 관리비는 보통 50만원에서 100만원 선이다. 기간 또한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계약할 수 있고 얼마나 많은 정보가 퍼졌느냐에 따라 처리 기간과 액수가 달라진다. 그 외에도 김호진 대표에게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사업에 대한 정보를 지워 달라거나 정부 차원에서 한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악성 루머를 지워 달라는 등 다양한 의뢰가 들어온다. 그러나 김호진 대표는 그에게 들어오는 의뢰의 65%는 10대 청소년들의 의뢰라고 밝혔다.

그가 이처럼 청소년들의 잊혀질 권리에 주목하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산타크루즈컴퍼니는 원래 연예인 캐스팅 에이전시로 시작했다.“처음에는 연예인이 악성 댓글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하는 걸 보고 그걸 삭제하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캐스팅한 초등학생이 광고에 나왔는데 성인들이 보기에는 못생겼지만 귀여워 보이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또래들이 봤을 때는 이질감이 있고 되게 싫은 거야. 그래서 뭐 안티카페도 생기고 악성댓글이 엄청나게 붙어가지고 네티즌들이 내가 너희 학교에 가서 너한테 돌을 던질 거다. 막 이렇게 쓰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가 그걸 삭제해주면서 아 이게 필요한 거구나라고 느껴서 그 다음부터 이게 비즈니스로 바뀐 거에요.”

처음에는 연예인과 기업을 상대로 시작하다 보니 삭제가 다급한 사람들의 정보까지 지워주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했는데 그걸 찍은 동영상이 자신도 모르게 유출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 쪽이 변심했거나, 핸드폰이 분실 혹은 해킹을 당했을 때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그는 밝혔다.

이런 디지털 장의사의 존재는 현재 국제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잊혀질 권리와 알 권리의 충돌 때문이다. 유럽사법재판소가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망자의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아직 민감한 영역이다. 해외의 대표적인 디지털 장의사 사이트인 라이프인슈어드닷컴 (http://www.LifeEnsured.com)은 세큐어세이프 (http://www.securesafe.com)에 의해 인수되었다. 또한 레거시로커 (http://www.LegacyLocker.com) 역시 패스워드박스(PasswordBox)로 이름을 바꾸었다. 둘 다 적극적인 디지털 장례 서비스에서, 고인이 죽기 전에 계정을 입력하면 타인이 그걸 관리할 수 있는 정도로 축소된 상태다. 사이트의 이름 또한 바뀌었다. 일본 사이트인 세푸쿠 (http://www.seppukoo.com) 역시 페이스북과의 문제 때문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은 현재 한국에서 인정받고 있지 못한 상태다. 말하자면 불법인 셈이다. 산타크루즈컴퍼니 역시 아직까지 디지털 장의사가 아닌 캐스팅 에이전시로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다. 개인정보 삭제 건으로 BM특허를 내놓은 상태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식 직업으로까지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2013년 국내외 직업비교분석 및 분야별 창작연구 보고서에서 디지털 장의사를 우선도입대상으로 꼽았다. 그러나 2014년 말이 되기까지 실행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아직까지 국회를 표류 중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의 박성훈 주무관은 “일단 디지털 장의사가 한국에 실제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법제도적인 기반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 유산에 대해서 상속 근거를 마련하는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야 되는 등의 법적인 문제가 좀 있어서 저희가 이걸 중장기 과제로 발부했던 거거든요. 그래서 이건 당장 육성 지원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닌데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서 추진할 필요가 있어요..”고 답했다. 고용노동부가 디지털 장의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소관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먼저 입법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윤리과의 박찬욱 사무관은 아직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 유산에 대한 상속 근거 이외에도 개인정보의 적용 대상을 어디까지로 적용하느냐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장의사 자체가 사람이 죽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러나 현 정보통신망법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의 개인정보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문제가 곤란해집니다. 그런 문제가 있어서 당장은 어렵고 현재 디지털 장의사나 잊혀질 권리의 사회적 합의라든가 학계의 논의 등 여러 가지 상황을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잊혀질 권리가 국민의 알 권리와 충돌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왜냐면 정치인 같은 경우에 그에 대한 나쁜 정보를 국민이 알아야 될 수도 있는데 그걸 지우면 문제가 되니까요. 또 누가 어디까지 지워줘야 하냐의 범위도 문제가 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해야 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6월 잊혀질 권리와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회의를 진행했지만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다. 2015년 방송통신위원회 추진예정사업에서도 디지털 장의사를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에서도 잊혀질 권리 일부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현재의 망법 상으로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는 반면 새로 개정해야 된다는 의견도 있어서 논의가 초기 단계에 있다고 그는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잊혀질 권리에 대한 필요성과 인식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저는 아직 삭제할 게 없지만, 이게 누군가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서비스일 거라고 생각해요.” 라고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신지용씨는 말했다. “죽기 전에는 꼭 쓰고 싶어요. 인터넷상의 제 정보가 저 뿐만 아니라 제 가족들에게 어떻게 돌아올 지 모르니까요. 그렇지만 불법이라면 아무래도 하기 꺼려질 것 같아요.” 라고 익명의 응답자는 말했다.

“디지털 장의사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한 영역입니다. 언론에서 다루고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해야 저희도 이제 본격적인 연구를 추진할 수 있거든요.” 방송통신위원회 박찬욱 사무관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정부에서 인정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들은 불법 위험을 감수하고 여전히 영업 중이다. 아직까지 허가도 신고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산타크루즈컴퍼니(http://www.santacruise.co.kr) 이외에도 맥신코리아(http://maccine.net), 스키퍼(http://www.repuler.com) 등의 회사들이 변호사를 통해 평판 관리 및 게시 중단 서비스를 대행하고 있다. 특히 맥신코리아는 지난 2014년 수능을 본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수험생 여러분 힘내세요: 과거는 잊어주세요’ 상품을 50% 할인된 249만원이라는 가격에 제공한 바 있다.

인터넷상의 정보가 범람하는 현대사회에서 ‘죽은 정보’를 제때 삭제하는 것은 앞으로 중요한 일이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공감대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연구와 입법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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