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물새네트워크 이기섭 박사 인터뷰

그의 삶은 저어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1년으로 치자면 6개월을 저어새 보호를 위해 쓴다. 일상의 절반을 투자하는 셈이다. “’바보같다’고들 많이 하죠. 아니, 도대체 그만큼 배우고 노력했으면 좋은 데 취직해서 존경도 받고 돈도 벌고 그러지. 뭐하는 짓이냐고.” 그를 보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 ‘고집스럽다’, 가끔 ‘존경스럽다’고도 해요. 가끔. 하하하.”


이기섭 박사는 비영리단체 한국물새네트워크 대표다. 그는 저어새 개체수를 모니터링하고 번식지를 연구한다. 저어새는 봄철에 우리나라에서만 번식을 하는데, 이전에는 얼마나 번식하는지에 대한 자료조차 없었다. 그는 2003년 처음으로 저어새 번식지인 석도를 가게 되면서 멸종위기의 이 새를 접하게 됐다. “참 재미있는 새인데 연구가 거의 없었어요. 왜 이들의 숫자가 적을까 고민해보다가 연구자로서 보호활동을 해보자고 결심했죠.”

 

▲ 한국물새네트워크 사무실(좌)/ 이기섭 박사(우)

그의 명함에는 부리가 주걱처럼 생긴, 낯선 새가 그려져 있다. ‘저어새’다. 이기섭 박사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천장에 달린 새 모형이 반겼다. 역시 저어새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십여 평 오피스텔. 방 안에는 수십 가지의 저어새 모형물과 포스터가 보였고 한쪽 벽면에는 물새 관련한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 책꽂이를 가득 채운 저어새 인형과 모형, 사진, 그리고 책들.

- 저어새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인가?

저어새는 도시인 같지 않아서 좋다. 집단으로 같이 모여 사는 새 중 하나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백로나 갈매기 역시 집단으로 모여 산다. 하지만 백로나 갈매기는 필요에 의해 모여 살되, 이웃간 서로 친하지 않다. 서로 괴롭히기도 하고, 옆집 새끼가 둥지를 침범하면 물어 죽이고, 괴롭히기도 한다. 모여 살면서도 친하지 않은 우리 도시인들 같다. 인간이 도시에 모여 살아야 얻을 수 있는 게 많듯이, 새들도 모여 살면 살아남는 데 유리하다.

 

-저어새를 관찰하기 위해 ‘이것까지 해봤다’ 이런 게 있는가?

(나이 먹고) 해병대에 ‘입대’했던 적이 있다. 해병대 옷을 구입하고 고무보트를 실어서 군인들과 며칠간 생활했다. (저어새가 많이 서식하는 석도는 북한과 인접한 지역이다.) 마음만 먹으면 고무보트로 북한에 넘어갈 수 있는 위치여서 모두들 우리를 초조하게 지켜봤다. 하지만 덕분에 저어새가 어떤 새인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둥지는 어떻게 만드는지, 알은 어떻게 낳는지 등 기초적인 지식들을 알게 됐다. 그때의 기억이 가장 많이 난다.

 

생물동아리 학생들 야외 체험 수업 데려가려 했더니 교장 선생님 “안돼”

 

그가 처음부터 물새 보호 활동을 했던 건 아니다. 환경활동에 뛰어들기 전엔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이었다. 사립학교여서 연차가 올라 연봉도 오를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한 회의와 좌절은 그가 안락함을 벗어 던지고 교단을 떠나는 계기 중 하나였다. “너무 답답했어요. 대학을 위해 모든 걸 짜맞추는 교과과정 속에서, 내가 가르치고 싶은 걸 가르칠 수가 없었죠. 한 번은 내 돈과 내 시간을 들여 생물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을 데리고 야외를 가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께서 ‘안돼요’라고 하시는 거에요. 이유가 뭐냐고 물었죠. ‘사고 나서 애들 죽으면 어떡해요. 그 책임 다 나한테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새에 대한 ‘부채의식’은 그가 환경운동에 뛰어든 또 하나의 계기였다. 자연에 대한 그의 애착은 남다르다. 어려서는 시골에서 자라며 동식물 틈에서 뛰어 놀다가 초등학교 때 서울로 전학을 했다. 공부만 하는 각박한 도시생활에 그는 한때 향수병을 앓기도 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새 연구를 시작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이어나갔다. 하지만 새를 연구하면서 학위도 따고, 돈도 벌었는데, 정작 자신은 새를 위해 해준 게 없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게 했다. 그래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2010년 두루미네트워크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지금은 두루미뿐 아니라, 사람의 개발로 점점 사라져가는 물새로 범위를 넓혔다. 한국물새네트워크의 탄생 배경이다. 현재는 저어새 보호활동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 하늘을 나는 저어새 (사진=이기섭)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 하필 ‘저어새’라는 새를 보호해야 하는가? 저어새 말고도 멸종 위기종이 우리 주변에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천연기념물 205-1호로 지정된 저어새는 전세계적 멸종위기종이다. 현재 2700마리 정도로 추산된다. 최근에는 중국, 러시아에서 번식하는 사례도 발견됐지만, 주로 대부분 봄철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새끼를 낳는다. 우리나라에서 보호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멸종될 수 있는 셈이다.


‘엄브렐라(우산, umbrella) 효과’라는 게 있다. 우리 갯벌에는 가장 취약하고 숫자가 적은 저어새도 살지만, 그보다 개체수가 많고, 아직까지 큰 위협을 받고 있지 않은 갈매기나 도요새도 함께 산다. 우리가 저어새를 보호하기 위해 갯벌을 보호하면, 갈매기나 도요새도 함께 보호가 된다. 같이 우산 밑에 들어오게 되는 셈이다. 가장 약한 종을 보호하다 보면 다른 종들도 자연히 보호가 된다는 게 엄브렐라 효과의 핵심이다.

 

둥지재료 넣어주기 활동… 저어새 개체수 증가

 

그는 2010년부터 저어새 둥지재료 넣어주기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고춧대 등의 나뭇가지를 조그만 배에 싣고 가 저어새들이 번식하는 암초에 둥지터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저어새들은 원래 나무가 많은 큰 섬에서 둥지재료를 구한다. 하지만 교통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새들은 밀려났다. 주변의 외딴 섬에는 쓰레기가 많아짐에 따라 쥐들이 살기 시작했다. 저어새들이 번식할 공간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활동하시는 이사 세 명, 그리고 이기섭 박사와 함께 3월 29일, 저어새 둥지재료를 넣어주는 활동을 직접 체험해봤다.

 

▲ 강화도에 있는 강화군생태자원연구센터에 배에 달 모터, 방수옷과 장화, 촬영 장비와 나뭇가지를 자를 연장을 차에 실었다. 둥지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도로 건너편에 심어진 고춧대도 뽑았다.
▲ 차를 타고 다시 30여분쯤 가 동검도에 있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소형 배와 고무보트를 준비시켜놨는데 그 때 근처 해병대 부대에서 연락이 왔다. 무슨 연유에선지 오늘은 고무보트를 타고 갈 수 없다는 말을 전해왔다. 결국 소형보트에만 둥지재료를 싣고 20여분 간 안개를 헤쳐 ‘수하암’에 다다랐다.
▲ 멀리서 보이는 저어새들. 언뜻 보아도 그들의 터는 황폐하고 더러워 보였다. 이박사와 이사들은 배가 수하암에 근접하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굳이 그렇게나 많은 사진을 찍어야 할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하지만 이 사진들은 저어새 개체 수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 저어새 둥지재료 넣어주기 활동주변에 있는 잔돌로 둥지의 뼈대를 둥글게 만들었고 그 위에 고춧대와 깻잎대를 적당하게 부러뜨려 흩어놓았다. 40여분 간 이런 작업을 반복하니 어느새 작은 암초에는 20여개의 둥지터가 생겼다.

 

멀리서 본 수하암에는 저어새 30여마리와 갈매기들이 쉬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새들은 달아났다. 10여평 되는 수하암에는 낯선 새똥냄새가 풍겼고 섬은 황폐했다. 새들이 만든 둥지는 단 두 개뿐이었는데, 나뭇가지 사이에 과자봉지의 흔적이 보였다. 호박엿 사탕 껍질도 눈에 띄었다. 물이 곧 있으면 빠질 거라는 말에 네 명의 봉사자들은 서둘러 작업을 시작했다.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저어새들은 이들의 수고를 알까.


작업이 끝나 육지로 돌아오니 온몸이 뻐근했다. 이 작업을 위해 그는 몇몇의 이사들과 함께 매 주말, 때로는 평일까지 서해안으로 나온다. 작업을 시작한 이래로 저어새 둥지의 쓰레기가 많이 줄었다. 개체 수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한다. 주변에 저어새가 번식할만한 섬이 없기 때문에, 그는 이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 다리가 낚시줄로 감긴 저어새(좌) (사진=이기섭) / 낚시바늘과 낚시줄에 목가죽이 벗겨진 저어새(우) (사진=장기혁)

최근에는 낚시꾼들이 버리는 낚시 쓰레기 때문에 저어새나 이박사 모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창 번식해야 할, 10살 전후 애들(저어새들)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요. 정말 미스테리에요. 우리는 이게 낚시 쓰레기 때문이 아닌가 라고 추측하고 있어요”. 실제 2010년부터 관찰한 저어새 대부분이 낚시바늘과 관련한 사고로 죽었다. 뾰족한 부리로 하나의 먹이를 찝어 먹는 새들과 달리, 저어새는 먹이가 풍부한 곳에서 부리를 좌우로 흔든다. 바닥에 있는 먹이들을 띄워 잡는 수법이다. 하지만 이 방식 때문에 저어새는 바다에 버려진 낚시 쓰레기에 피해를 입을 확률이 크다.


해양환경 운동단체 오션(OSEAN, 동아시아 바다공동체 오션)이 2010년부터 2년간 한반도 전역에서 조사한 바다새 피해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총 40건의 사례 중 낚시바늘과 낚싯줄, 납추 등 낚시 쓰레기로 인한 피해사례는 전체의 92.5%(37건)을 차지했다.

 

-환경 운동을 하면서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 게 가장 힘든가?

현장을 왔다 갔다 시간 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역시 ‘돈’ 문제다. 저어새 보호운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대학 강의를 나간다. 가끔 연구 용역을 할 때도 있다. 생계를 위해서다. 사용하는 카메라나 도구 등의 장비는 모두 사비로 구입했다. 지원을 받기 위해 어렵게 단체를 법인화시켰지만, 여태껏 정부보조금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환경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부족한 건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맞다. 환경부는 비유하자면 청소하는 사람이다. 청소하는 사람이 무슨 힘이 있겠나. ‘이거 버리면안되는데…’ 하면 성장론자들은 ‘잘 사는 게 먼저지! 청소는 나중에 하면 돼’라는 식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경제대통령’을 원하듯, 우리 후손 시기에는 분명 ‘환경대통령’을 외칠 거다. 어느날 집에 왔는데 집이 세상에, 더럽고 지저분한 거다. 이러면 청소부터 해야 된다. 하지만 우린 그 전까진 관심이 없다. 그게 문제다. 답답하다.

 

▲ 이기섭 박사, 그리고 그가 아이들 교육자료로 만든 저어새 모형 만들기 세트.

이박사는 왼쪽 사진을 가르키며 말했다. “보통 저어새들은 부리가 길어 머리 주변을 혼자 다듬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거기 이가 많이 살죠. 엄청 가려울 거에요. 근데 옆에 있는 짝이나 동생들이 서로 깃털을 다듬어주고 해요. 서로 위해주고 우애가 있는 모습을 보이죠. 저어새 참 재미있는 새에요.” 말하는 내내 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목소리는 즐거워 보였다.

 

-그럼 당장 우리가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시간을 내는 게 최고다. 젊은 사람들은 시간 내서 활동하고, 조금 바쁜 직장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하는 게 좋다. 사라져가는 새에 대해 관심 갖고, 자신의 분야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재능기부를 하든, 돈을 기부하든, 시간을 기부하든.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해도 좋다. 주변에는 수많은 새 관련 단체가 많은데 공통점은 젊은이들의 씨가 말라있다는 점이다. 똑똑하고 힘 있는 젊은이들이 이런 데 가입해 함께 활동해주면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낚시 할 때 낚시 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신경 좀 써 달라.

 

-하지만 그보다 사람들에게 환경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득하는 일이 먼저가 아닌가?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렇다. 그래서 내 목표는 이 활동과 저어새에 대한 사랑이 점점 번져나가는 것이다. 비슷한 사람들이 생겨나 결국 많은 사람들이 저어새 보호활동에 공감하면 국가 정책에도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교육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역시 인력 부족으로 지금은 잘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물새네트워크의 회원은 300여명. 꾸준히 활동하는 건 30여명의 이사들이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후원은 하지만 일손이 많이 필요한 활동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점이 힘들다고 한다.

 

이제 그만 하라는 아내…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

 

그는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며 웃는다. 집에서는 먹고 사는 것도 생각하라며 ‘이제 저어새 좀 그만 쳐다봐’라고 한다. 그는 집에서 혼자 돈을 번다. “내 처가 저한테 그래요. 저어새가 내 자식이라고. 저어새한테 돈 다 쓴다고. 애가 없거든요. 우리집에 애가 둘이고 셋이었으면 저어새 신경도 안 썼을 거라고 하죠. 등록금 달라 하고 그랬을텐데.” 그럼에도 그의 활동의 배경에는 아내의 이해와 배려가 가장 크다고 한다.


“이 세상엔 신부와 목사가 많아요. 그런데 이들은 모두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에요. 다른 동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잔소리로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하하하.”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대학 강의를 가기 위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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