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윤서진(경기 부안초3)군은 학교 화장실이 밉다. 3월 20일 아침 여덟 시, 윤 군은 침실 옆 화장실 문을 잠근 채 변기에 30분 째 앉아 있다. 등교 시간이 다가오자 어머니는 문을 두드린다. 윤 군은 문을 열 수 없다. 아직 대변을 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수업이 끝나는 오후 2시 30분까지 대변을 참아야 한다. 윤 군이 사용하는 학교 화장실에 서양식 변기가 없어서다.
 

▲ 윤서진군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설치된 동양식 변기의 모습

윤견진(9)양은 학교에서 소변을 볼 때면 불안하다. 바지가 변기에 닿을 것 같아서다. 하루는 쪼그려 앉아 바지자락을 단단히 붙잡았다. 휴지를 집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다 옷에 변기 물을 묻히고 말았다. 축축해진 바지로 교실로 돌아갔을 때 ‘오줌싸개'라고 짓궂은 친구가 놀려댔다. 화가 나고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 “그날 이후로 학교에서 오줌이 잘 안 나와요.” 얼굴을 붉히며 윤견진 양이 말했다.

동양식 변기가 학생들의 배변을 가로막고 있다. 서양식 변기는 물론이고, 비데까지 갖춘 집 화장실에 익숙한 학생들은 난생 처음 본 학교 화장실이 낯설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에는 아직 동양식 변기가 서양식 변기보다 많다. 경기 지역 초등학교에도 여전히 동양식 변기가 많았다. 스토리오브서울이 서울시 교육청과 경기도 교육청에서 지난 3월 건네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전체 초등학교에 설치된 동양식 변기는 26,560개로 나타났다. 경기도 초등학교의 동양식 변기는 23,329개였다.

동양식 변기, 배변 활동에 부작용 많아

김은영(41)씨의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 변기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화장실에서 본 것은 물이 채워진 슬리퍼 모양의 물체. 곧바로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물어 본 후에야 비로소 그것이 변기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지금도 동양식 변기는 낯설기만 하다. 어떤 자세로 앉아 대변을 봐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올해 4학년이 됐지만 여전히 학교 화장실이 불편하다.

동양식 변기는 위생에도 취약하다. 쪼그려 앉아 용변을 봐야 하는 변기의 경우 종종 옷과 바닥에 물과 이물질이 튀곤 한다. 초등학교 화장실 청소 용역 업체 관계자 A씨는 “동양식 변기가 서양식 변기보다 더 쉽게 더러워진다”고 말했다.

안전에도 취약하다. 황지원 군(13)은 “지난해 11월 (바닥에 튄 변기 물이 얼어) 화장실에서 두 번이나 미끄러졌다”고 말했다. 임영빈 군(11)은 “가끔 (변기에) 빠질 것 같다. 친구들도 빠질까 무서워 도저히 참지 못할 때 마지못해 쪼그려 앉아 대변을 본다"고 말했다.

30년째 그대로인 초등학교 변기

가정에서 사라진 동양식 변기가 초등학교에선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서울시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는 2년 전 대대적으로 화장실을 수리했다. 그래도 4개의 대변기 중 2개는 동양식 변기다. 이 학교의 교감은 “여전히 일부 학생과 학부모는 동양식 변기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절반 이상이 선호하느냐고 묻자, “수요에 맞춰서 설계했다”는 입장만 되풀이 했다.경기도의 초등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의 한 초등학교는 2009년 개,보수 후에도 여전히 5칸 중 4칸이 동양식 변기다. 이 학교 또한 학생들이 원하기 때문에 동양식 변기를 고수한다고 했다.

▲ 용답 초등학교 화장실 모습

 

과연 그럴까. 서울시 성동구청이 지난해 무악초등학교와 용답초등학교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95.9%의 학생이 서양식 변기를 선호했다. 학부모 단체 역시 절반이 넘는 동양식 변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정숙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단체 사무처장은 “집에서 양변기 생활을 하는데 학교에서 동양식 변기를 쓴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관심”

근본적인 문제는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동구의 무악초등학교는 달랐다. 학생 대표 2인과 교장, 교육청 시설 담당 공무원, 성동구청 관계자 등이 머리를 맞댔다. 회의는 설계부터 준공까지 6개월 간 이어졌다. 그렇다고 더 큰 예산이 든 것도 아니다.

남여 화장실 한 곳에 전면 보수 8천800만원에 부분 보수 6000만원이 들었다. 이는 교육청 단가와 같은 비용이다. 두 학교는 서양식 변기를 대폭 늘렸다. 다섯 칸 중 네 칸을 서양식 변기로 바꿨다. 새로 설치된 변기에 학생들의 98%가 만족했다. 학생들의 화장실 이용 횟수도 41.8% 포인트 늘었다. 김형곤 서울 성동구청 교육지원과장은 “학교와 학생의 의견을 존중하여 만족도 높은 쾌적한 화장실을 탄생시킨 모범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일부 교장, 교감의 무관심도 문제다. 박신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참교육실장은 “화장실은 교장 입장에서 돈을 쓰고 싶은 곳이 아니"라고 말했다. 화단이나 정보화 기기가 교장의 치적을 홍보하는데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 그는 “장학사 또한 아이들 화장실엔 무관심하다"며 “직접 화장실 설계도를 보는 교장도 드물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부터 돌봄 교실이 확대 시행됐다. 돌봄 교실에 참여하는 초등학생은 오후 10시까지 학교에 남게 된다. 아이들의 화장실 걱정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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