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한 번 받기도 힘든 퓰리처상을 2010-11년 연속으로 수상한 온라인 언론사가 있다. 인터넷 매체로는 최초일 뿐만 아니라 2년 연속 수상이라는 유례없는 진기록도 세웠다. 올해는 방송계의 퓰리처상인 피버디(Peabody)상도 수상했다. 디 외에도 언론계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조지 폴크(George Polk)상, 셀든 링(Selden Ring)상 등을 받으며 창간 이후 6년간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 대단한 언론사,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하루에 올라오는 기사는 고작 2-3개  뿐이다. 많은 날은 기껏해야 4개. 홈페이지에는 그 흔한 광고 배너조차 하나 없다. 보통의 인터넷 신문사라면 망하고도 남았을 이야기를 성공시킨 사람, 바로 마국의 탐사보도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를 설립한 폴 스타이거(Paul Steiger)이다. 40여 년 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월스트리트 저널>의 편집국장까지 올랐던 그가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프로퍼블리카>를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프로퍼블리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저널리즘을 표방하다.

스타이거는 16년간 <월스트리트 저널>의 편집국장으로 재직했다. 그의 능력은 탁월했다. 스타이거가 편집국장으로 있는 종안 신문사는 퓰리처상을 16번이나 수상했다. 그런데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월스트리트 저널>의 영향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머독은 세계 각국의 영향력 있는 언론사들을 인수해<뉴스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이라는 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조직해왔다. 결국 2007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머독의 회사가 되었다. 이에 반발한 스타이거는 2008년 32명의 동료들과 <프로퍼블리카>를 만들었다. 스타이거는 자신의 블로그에 “독자들은 여전히 탐사보도를 원했지만 경영진은 광고주의 아픈 구석을 건드리는 기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언론은 이미 기업의 것이 되었고, 나는 이것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생각했다.”라고 당시의 생각을 밝혔다.


돈과 권력에 지배되는 언론계를 비판하며 출발한 만큼 <프로퍼블리카>는 사적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저널리즘(Journalism in the Public Interest)'을 표방한다. “우리의 목적은 권력의 오남용과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저널리즘을 통해 들춰내는 것입니다.” 한국의 첫 번째 탐사보도센터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스타이거는 이와 같이 말했다. 그렇다보니 비영리 단체인 프로퍼블리카>는 매년 미국의 억만장자 허버트 샌들이 후원하는 1,000만 달러(한화 약 106억 원)와 시민들로부터 받는 기부금으로만 운영된다. 그런데 돈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언론사가 금융업으로 성공한 억만장자의 후원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걱정은 붙들어 매도 좋다. <프로퍼블리카>의 설립을 가장 먼저 제안한 것이 허버트 샌들이다.

권력의 오남용과 그로 인한 실패, 대중들은 이것을 학습해야 한다

<프로퍼블리카> 기자들은 아이템 하나하나마다 많은 공을 들여 기사를 쓴다. 길게는 수년에 달하는 심층적인 조사를 거친 후에야 기사가 발간되기 때문에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익을 저해하는 권력 부패를 폭로하는 탐사보도의 특성상 기사 하나가 갖는 파급력은 큰 편이다. 대중이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과 관련되는 일, 또는 언젠가 관련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다. <프로퍼블리카>는 이 점을 이용해 대중들이 모르고 있는, 그러나 알아야만 하는 사실을 기사로 써낸다.


2010년 <프로퍼블리카>에 첫 퓰리처상의 영광을 안겨준 셰리 핀크(Sheri Fink) 기자의 기사 ‘메모리얼 병원의 치명적 선택 The Deadly Choices at Memorial Medical Center'은 미국 사회에 파문을 몰고 왔다. 2005년 미국 남부를 강타한 카트리나 때문에 뉴올리언스의 메모리얼 병원에는 수백 명의 환자들을 안락사 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을 의료진이 안락사 시켰다는 사실은 미국인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퓰리처상 위원회는 핀크가 이러한 비상식적인 행위를 지적하고 인간의 살 권리와 존엄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을 인정해 시상했다고 설명했다.


스타이거 역시 수상 직후 <프로퍼블리카>를 통해 이 기사가 ‘누가 먼저 살아야 하는가’와 ‘누가 그 결정을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 좋은 글이라고 평가했다. “세리 핀크의 글은 <프로퍼블리카>가 설립된 목적을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대중이 관심을 갖는 단체(정부, 공공기관, 기업 등)의 권력 남용이나 실패를 밝히는 것, 그래서 대중이 이를 통해 학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죠.” 고객과 회사의 돈을 사적으로 사용한 금융인들을 고발한 ‘월 스트리트의 돈 기계 The Wall Street Money Machine' 역시 회사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했다. 2011년 이 기사를 쓴 제스 에인싱거(Jesse Eisinger)와 제이크 번스타인 기자(Jake Bernstein)는 <프로퍼블리카> 역사상 두 번째 퓰리처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폴 스타이거의 인생 3막, 이제 시작하다


<프로퍼블리카>의 편집국장과 CEO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스타이거는 2012년 자신의 자리를 후배들에게 넘겨주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그는 올해 1월부터 현장에서 물러났다. 유능한 후배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대신 스타이거는 회장(Executive Chairman)으로서 기부금을 모으거나 회사 경영 전략을 세우는 등 다양한 행정 업무를 맡아 보고 있다.


평생을 기자로서 살아온 스타이거. 이제 경영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일할 때까지를 인생 1막, <프로퍼블리카>라는 새로운 도전이 인생 2막이라면, 사장으로 변신한 지금은 인생 3막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편집국장이 아닌 회장으로서 운영하는 <프로퍼블리카>의 모습은 어떠할지, 그의 능력이 사장의 자리에서도 잘 발휘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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