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4월 15일로 다가왔다. 정치권은 벌써부터 총선 준비로 분주하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낙선, 낙천 운동에 열심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숨겨진 정치자금은 속속 드러나고 자기 밥 그릇 챙기기에 신이 난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를 늘린다. 국회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난투극이 벌어진다. 정말 믿고 따를만한 사람 하나가 절실한 때다.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는 시대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일년에 한번쯤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곤 했다. 그 질문의 답은 항상 이순신 장군 아니면 세종대왕이었던가. <인생의 참 스승 선비> 머리말에서 이용범 씨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는 시대’를 꼬집는다. 그가 이 책을 펴내게 된 것도 이런 안타까움을 조금이라도 면해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책 속에서 우리는 234인의 선비를 만날 수 있다. 보통 선비라고 생각하면 조선시대의 선비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삼국시대를 살았던 선비부터 항일기의 선비까지 각 시대별로 다양한 선비들을 선정했다. 그 중엔 높은 벼슬을 지낸 선비도 있고 평생 재야에 묻혀 살았던 선비도 있다. 모든 선비들은 일화와 함께 소개된다. 선비들의 실천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록물보다는 서사가 있는 일화에서 찾는 것이 더 낫다고 이용범 씨는 믿기 때문이다. ‘사서삼경을 읽었다고 해서 선비는 아니며, 실천하지 않으면 선비로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책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도 충분히 곁들이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펴내기 위해서 5년여에 걸쳐 역사서와 개인문집, 야담, 필담류 등 50여 종의 문헌을 꼼꼼히 살펴 정리했다.

옳지 않으면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 불신은 무관심으로 변해 간다. 권력과 부귀에 초연했던 선비, 옳지 않은 일에는 목숨을 걸고 대항했던 선비, 겸손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선비. 옛 선비들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질 줄 알았다. 출마할 때의 공약(公約)은 당선이 된 후 공약(空約)이 되고 국회에서 육탄공격과 욕설을 함부로 내뱉는 지금의정치인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이 책에 담긴 234인 선비 일화는 오늘은 사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신라 진평왕 때의 하급관리였던 검군은 말단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사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해 전국적으로 기근이 심하여 사량궁의 사인들이 창예창의 식량을 훔쳐 나누어 먹었다. 청렴한 검군은 이 일에 가담하지 않았다. 다른 사인들은 그가 이 사실을 밀고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그를 독살하려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검군은 자신의 술잔에 독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태연히 술을 받아 마시고 죽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고자질해서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고려 고종 때의 문신이었던 권수평의 일화를 들어보자. 그는 대정 벼슬을 맡아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마침 낭중 벼슬의 복장한이 억울하게 귀향을 가게 되었다. 나라는 권수평에게 복장한의 토지를 넘겨주었다. 그러나 그는 복장한이 돌아오자 토지와 함께 임대료까지 셈하여 돌려주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하여 재산을 얻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다.

요즘 정치인들은 어떤가. 상대방의 잘못을 폭로함으로써 자신의 점수를 따겠다는 얄팍한 생각뿐이다. 불법 정치자금이 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 문제는 얼마나 더 청렴한가가 아니라 상대방보다 얼마나 덜 받아 먹었는지다. 다들 도토리 키재기에 여념이 없다. 몇 십억, 몇 백억 단위의 돈이 오가는 현실을 보면 권수평의 신념과 청렴결백의 태도가 무색해진다.

교훈적이지만, 지루할 수밖에 없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았다고 해서 무조건 독자에게 먹혀 들어가는 건 아니다. 줄줄이 이어지는 234개의 일화는 독자들에게 지루함을 안겨준다. 하나의 일화가 끝나면, 그 일화의 주인공인 선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덧붙여진다. 400쪽이 넘는 두꺼운 책 두 권은 이 단순한 구성의 반복이다. 

<인생의 참 스승 선비>는 한번 손에 들면 단번에 끝까지 읽어 내려갈 만큼 매력적인 책은 아니다. 대신 하루에 하나씩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어보면 어떨까. 내 인생의 중심을 잡아줄 참스승을 찾아 나서는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김유리 기자 <kimyuri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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