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드라마나 영화제목이 아니다. 서점가에 쌓여있는 책제목들이다. 웹에서만 존재하던 인터넷 소설이나 인터넷 만화도 책으로 나오고 있다. <그 남자 그 여자>는 심야 라디오 프로의 한 코너를 통째로 책으로 옮겨다 놓았다. 출판한지 두달 만에 현재 교보문고 베스트 셀러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귀여니'라는 여고생이 쓴 <늑대의 유혹>은 2002년 말 출판되어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글은 가벼웠지만 책은 출판의 권위를 가뿐히 무너뜨렸다. 황매 출판사 편집장 황복전씨는 귀여니의 소설을 책으로 내기 위해 직접 출판사를 만들었다. 귀여니 인터넷 소설의 출판으로 서점가는 흔들렸다.

베스트 셀러와 애물단지의 사이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책을 읽는다. 어떤 사람은 지식을 얻고자 하고 어떤 사람은 시간을 때우자 한다. "저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책을 읽어요. 어려운 책을 읽으며 스트레스 받는 걸 싫어하거든요." 이광표(25, 대학생)씨의 말이다. 책의 수준을 떠나서 독자가 자신이 얻고자 했던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 책은 독자에게 유익한 책이 될 수 있다. 단, 타인에게 피해를 일으키지 않는 내용에 한해서 말이다.

출판은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대중이 원하는 책이 잘 팔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황매 출판사의 편집주간 이산하씨는 "출판사에서 책을 결정할 때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독자들에게 시의성이 있는지,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매듭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냐는 것이라고 봐요. 그 매듭을 잘 풀어나갈 때 독자들은 책에 열중할 수 있는 거구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팔기 위해’ 만든 책은 그다지 잘 팔리지 않는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처세도서의 경우에는 기업판매, 프로모션이라는 채널을 뚫고 부수가 크게 증가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도서의 경우에는 2, 3년 사이에 절판이 되거나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건강서의 경우도 매한가지다. 시장이 개발되면서 이 분야에 뛰어드는 출판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늘어난 생산만큼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출판사끼리의 과도한 경쟁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대중에게 아부하는 출판은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이런 책들은 5년만 지나면 도서관의 골칫거리가 된다.

종합병원인 출판시장, 진단하고 치료하자

다양한 실용서적과 흥미위주의 책시장이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커지는 반면, 인문과 사회과학 서적의 판매 부수는 줄어들고 있다. 한길사의 편집을 맡고 있는 정희경씨는 말한다. “유럽이나 미국,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학자들의 연구와 각 분야의 생생한 최신담론들이 대중출판으로 쏟아지고 있어요.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학술 활동이나 담론의 전파는 아주 미미하지요. 출판이 돼도 독자들에게 외면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출판 자체가 잘 안되거든요. 철학, 문학이론, 사회학, 인류학 등의 서적은 저자가 방송매체에 노출이 많은 대형 스타급이 아닌 이상 1천 부를 넘기기 빠듯할 정도예요.”

특정 분야를 공부하고 있거나 흥미를 가지지 않는 이상 개인이 인문과학서적을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 인문 과학서들은 출판 제작 단계에서부터 아예 매출을 기대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어려운 학술출판물도 최소 3만 부 이상이 판매돼요. 도서관, 연구센터 등에서 학술활동이 잘 이뤄질 수 있는 최소한의 부수를 판매하고 읽히고 있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우리나라에는 공공 도서관이나 연구센터 시설이 열악하다는 겁니다. 전국적으로 도서관이 얼마 없는 탓에 도서관의 구매력이 떨어지거든요. 학교나 각 지역마다 공공도서관이 확실하게 자리 잡으면 전문서적도 최소한의 구매력은 채워 질 수 있습니다.”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차미경 교수는 지적한다.

민음사 편집부 과장 조영남 씨는 책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재미를 위한 책은 흔히 볼 수 있지요. 그러나 교양에 초점이 맞추어진 적절한 책은 찾기 힘들어요. 전문 분야에 호기심은 가지고 있지만 책 자체가 어려워서 읽기에 부담스럽거든요. 중요한 것은 질이 떨어지지 않지만 읽기 수월한 교양 서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조영남씨는 이내 덧붙인다. “일본의 문고본 시장이 강세를 띄는 이유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 프리랜서 작가의 공동집필이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도 출판 경험을 좀 더 축적해 나가면서 그런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대중적이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의 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전문서적을 재미있게 읽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소비자 만족 출판

인터넷 매체로 인해 출판이 늘어나는 것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원래 미디어의 마지막 단계는 출판이다. 단지 이제는 고전적 미디어인 신문과 TV, 라디오에 고정되었던 출판의 소재가 인터넷의 바다로 몰린 것이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인터넷으로 이동되면서 대중의 편가르기, 뭉치기는 더 쉬워졌다. 그런 경향을 잘 포착하면 출판사는 큰 이윤을 남기는 것도 가능하다. 황매 출판사는 이 점을 잘 포착했고 귀여니 소설로 큰 반향을 일으켜서 출판사의 기틀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형식의 책, '픽쳐북'을 구상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자연 친화적인 인문서적을 중심으로 출판을 할 계획이다. 많은 독자들에게 귀여니 소설로 사랑 받은 만큼 더 실한 책을 출판함으로써 보답하겠다는 생각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출판은 100% 영리기업들로 움직이고 있다. 출판사가 팔리는 책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기간의 판매 부수에만 집착한다면 장수하기 어렵다. 판매 뿐 아니라 평생 AS 에도 신경써야 한다. 대중의 지적 수준과 사고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책임의식 또한 가질 필요가 있다. 질리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장난감 같은 책을 기대해 본다.

 
 
이진아 수습기자 <84groover@hanmail.net>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