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청년 실업이 40만에 육박하는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MBC 시트콤 ‘논스톱4’에 등장하는 고시생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청년실업을 외쳐댄다. 재미로 보는 시트콤이지만 돌아서면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다. 연일 신조어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 신문에 실리고 있고 취업이 되지 않아 구직을 포기하는 사람도 2004년 2월 현재 12만 4천만 명을 넘어섰다. 아등바등 취업 경쟁에 지쳐 가는 그들이 바로 미래 한국의 얼굴이다.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에요.”

지난 2월 취업정보업체 인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20대 회원 55만 199명 중 자격증을 가진 구직자는 31%(16만9,982명)에 이르고 그 중 절반 이상(51.87%)이 2~5개의 자격증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작년 6월의 48.65%보다도 상승한 것으로 자격증에 대한 구직자들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취업을 앞두고 있는 20대 대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다.

김수경(22, 대학생)씨는 홍보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예비 구직자다. 자격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기본적인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외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대답한다. “자격증보다는 홍보 관련 학회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실질적인 이득인 것 같아요.” 서류 전형에 도움이 되는 ‘OOO 자격증’ 보다는 면접 볼 때 실무로 쌓은 자신의 경험을 어필하는 구직자가 되고 싶다고. 김씨의 생각은 최근 들어 늘고 있는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 추세와 맞아 떨어져 구직자들의 취업 전략으로 쓰이고 있다.

미생물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김희영(21,대학생)씨는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자격증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지식을 갖춘다는 순수 목적은 아니에요. 아무래도 취업이 중심이죠.” 농업 계통 공무원 시험과 수자원 공사 입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김씨는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증에 관심이 있다. 사범대를 다니고 있는 김미지(22, 대학생)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말한다. “임용 고시 볼 때 워드 자격증은 가산점을 주니까 안 따는 사람이 바보래요.“ 그는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증 이외의 것들은 취득 붐이 비교적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자격증의 유효기간이 짧아진다

한국노동연구원 이병희 박사의 ‘자격과 노동 시장’ 연구에 따르면 자격증 취득은 좋은 일자리로 들어가기 위한 적극적인 방안이라기보다는 취업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자격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격’의 액면가도 크게 떨어진 상태. IT 관련 자격증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몰리는 자격증 집중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내 IT 기업과 웹 관련 직업 수요를 고려할 때 대책 없는 자격증 집중은 자격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만 할 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상대적으로 취업 여건이 좋지 않은 지방대생들이 자격증을 많이 따서 틈새 시장을 공략한다는 것도 옛말이다. 합격률 높은 고학력자들이 자격증 시장에 대거 진출하면서 잘 나가던 자격증마저 희소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노동연구원이 2,000여 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신규 채용에 있어 자격증이 고려되는 경우는 13.2%에 불과했다.

70년대에 주산, 부기 등의 자격증이 대세였다면 근래에는 영어, 보안 관련 자격증이 인기다. 인터넷 대란 이후 보안 관련 IT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보안 관련 자격증의 주가가 승승장구 오르고 있다. 발빠른 20대 구직자들은 100% 취업이 보장된다는 CISSP(국제공인 정보시스템 보안전문가), CISA(국제공인 정보시스템 감사사) 등의 자격증 취득을 이미 서두르고 있다. 이에 반해 국가공인자격증은 산업 변화에 둔감하기만 하다. 지난 2월 25일 노동부는 국가공인 중 시계수리기능사를 비롯한 70개의 자격증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변화한 산업 수요에 응하지 못하는 자격증들이 이제껏 방치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산업 변화에 뒤쳐지는 자격증은 없느냐는 질문에 산업인력공단 측은 국가공인자격증만 해도 637 종에 이르니 그런 사례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조리사 자격증의 경우 취득하면 현장 투입이 즉각 가능해요. 반면에 다이너마이트 자격증 같은 경우 실제로 다이너마이트를 폭파시킬 수는 없으므로 시험을 이론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지요.“ 공단 측은 시대 흐름을 놓친 국가 자격증에 대해 언급하는 대신 시험을 실기로 치르느냐 아니냐는 대답을 내놓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허위광고, 구직자 두 번 울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4일 홈페이지(www.mohw.go.kr)에 "노인복지사 자격증은 복지부와 무관하다"는 공지를 띄웠다. 민간자격증인 노인복지사 자격증이 취업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데도 국가공인 자격증으로 오인되어 피해자가 생길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교육인적자원부, 노동부, 소비자보호원은 가짜 국가공인에 현혹되는 구직자가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 소비자의 경각심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민간자격증을 신설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국가공인인 양, 고소득을 보장하는 양 유인하는 허위 광고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구직자들에게 쥐약과 같다.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이런 자격증 관련 악덕 상술은 줄어들지 않는 피해라고 한다. 구직자는 ‘OO인력공단에서 선정한 21세기 유망직종’, ‘100% 취업’, ‘고소득 보장’ 등의 과장 표현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광고에 인증기관 ○○○, 시험기관△△△, 자료제공▽▽▽ 등 여러 개의 기관명을 동시에 기재함으로써 이의 제기할 곳을 불명확히 해 놓은 광고들 역시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의 편도준 차장은 “인쇄 매체를 이용한 허위 광고들은 방송 매체와 달리 사전 심의가 불가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한다. 

자격증에 바란다

자격증 제도는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취업 및 임금 효과를 뚜렷이 반영할 수 없는 자격증은 가차없이 조정 혹은 폐지되어야 한다. 지난 2월 23일 산업인력공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20대 젊은이(이름:sk)의 글은 자격증 문제의 현 주소를 잘 꼬집고 있다. “건축기사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기사자격증은 전문성 없이 모든 분야를 다 공부해야 합니다. 전문적인 건축을 위해서는 슈퍼맨보다 한가지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슈퍼맨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격증 제도는 당분간 구직자에게나 기업에게나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정인 기자 <iloveyou_lolit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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