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B> 최태혁 편집장

화려한 화보사진, 알쏭달쏭하게 한글화 된 수식어들, 한 묶음씩 딸려오는 부록, 그리고 광고지면의 야릇한 촉감. 흔히 ‘잡지’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다. 그런데 이 잡지는 공책 정도 크기에 광고 한 장 없으며 한 손에 감는 가벼운 맛도 있다. 보통의 '잡지(雜紙)'다운 조잡함이 없는 대신 명백한 주관이 있다. 바로 한 호(號)마다 브랜드 하나를 선정하여 소개하는 <매거진B>다.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전달하는 수단이 종이일 뿐이라는 <매거진B>의 B는 브랜드(brand)의 앞글자이기도 하지만 균형(balance)의 B를 뜻하기도 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균형 잡힌 브랜드는 무엇일까? <매거진B> 편집장 최태혁에게서 직접 B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상의 A보다 진정성 있는 B

<매거진B> 앞표지에는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이라는 부제가 있다. 실제로 책을 펼쳐보면 브랜드에 대한 본격적인 내용이 나오기 전에 지면을 꽉 채운 사진들이 등장한다. 마치 영상물 재생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서서히 변해가는 느낌이다. 그와 함께 한글과 영어로 다소 시적인 문구도 적혀 있다. "<매거진B>의 주관이 무엇이냐고 할 때 한 브랜드를 선정함으로써 이미 설명이 끝났다고 생각해요." 최태혁 편집장은 <매거진B>의 특징을 '건조함'이라 말한다. 핵심적인 것만 집약시키고 불필요한 기름기는 빼 건조시킨 것. 일반적인 잡지들이 할리우드 영화라면 <매거진B>는 북유럽의 밋밋하지만 심도 있는 영화들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표현한다.

 

"B라는 것은 B급 브랜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B는 A급 브랜드와는 차별이 된다는 점에서 B급이다. 저질의 B급이 아니다. 최 편집장은 생각보다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B의 속뜻을 차차 풀어간다. "비즈니스를 구현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전부 최상의 A만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그 수많은 브랜드 중에는 훨씬 진정성이 느껴지는 B급의 것들도 있는데, 이젠 이런 브랜드들이 브랜딩의 미래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B급의 브랜드도 주목해 주었으면 한다는 그의 바람이다. 그런 의도를 반영하여 지금까지 <매거진B>에 소개된 브랜드들은 모두 다섯 개다. 신발 브랜드 '뉴발란스(New Balance)'를 비롯하여 '프라이탁(Freitag, 가방)', '스노우픽(Snow Peak, 캠핑용품)', '라미(Lamy, 만년필)', '브롬튼(Brompton, 자전거)' 등이 있다.

누구나 마음에 드는 브랜드는 다르다. 그만큼 JOH컴퍼니의 관점에서 만들어지는 <매거진B>가 선정하는 브랜드도 극히 주관적이다. <매거진B>는 공식적으로 아름다움, 실용성, 합리적인 가격을 좋은 브랜드의 기준으로 두고 있다. "브랜드라는 것은 사실 굉장히 다양하고 막연하고 막막한 거예요." 누군가는 유명하고 비싼 명품만이 브랜드라고 느낄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동대문 시장도 '동대문'이라는 나름의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매거진B>가 생각하는 좋은 브랜드의 본질은 무엇일까? "누구나 간절히 '내 것'이라고 느끼는 그 심정, 그게 바로 자기만의 브랜드가 아닐까요." 비록 값어치가 얼마 안 되는 펜이라고 할지라도 오랜 세월 그 펜을 써오면서 느끼는 심정, 그 펜이 없을 때 왠지 불안한 심정은 바로 '내 것'이란 마음에서 비롯된다.

오래돼도 변치 않는 B의 존재감

<매거진B>에는 광고가 없다. 판매 수익만으로 어떻게 제작비를 충당하는지 의문이다. 그 점에 대해>생략 최 편집장은 "왜 이런 구성을 구상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수익성을 가늠해서가 아니라 단지 옳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다고 운을 띈다. "한국의 비즈니스도 순수한 마음만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성공하겠느냐는 분들이 있어 인식의 차이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최 편집장의 마음가짐은 <매거진B>에 소개된 브랜드들의 의식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업의 시작은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내겠느냐가 아닌 가치관의 문제란 것이다. 세상의 어떤 사업도 몇 년 이내에 크게 수익을 내지는 못한다. 그저 옳다는 생각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이다. 따라서 <매거진B>도 점점 잘 될 것이라는 기대와 그리 돼야 한다는 의무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시중의 일반적인 잡지들은 어마어마한 보관비용 때문에 한 번 찍으면 파기 처리된다. 반면 <매거진B>는 과월호를 파기하지 않고 계속 판매한다. 만일 현재 5월호를 보고 있는 사람이 이전엔 어떤 브랜드를 다뤘는지 궁금해진다면 서점에서 과월호를 찾아 살 수 있다. 다시 말해 <매거진B>에는 ‘과월호’의 개념이 없다. "<매거진B>가 굳이 시의성을 둔 잡지는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과월호도 지난 것, 옛날의 것이 아니게 돼요." 실제로 판매량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이유에도 과월호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소비자가 마음에 들면 산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간단하고 쉬운 수익구조다.

<매거진B>는 소수의 인원으로 제작된다. 여타 잡지와 상반되는 부분이다. JOH컴퍼니 대표인 조수용 씨를 중심으로 소수의 전문 디렉터들이 각자 맡은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짜고 제작을 담당한다. 인력이 부족하면 외부 에디터 팀을 구해 함께 일한다. "JOH는 비교적 젊은 사람들로 구성돼 있고 기동성을 중시해요. 너무 많은 인원을 두기 보다는 내부에 핵심 소스를 두고 필요한 경우 외부 인원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또한 <매거진B>는 앞으로 기획할 몇 년 치의 브랜드들을 정해둔 상태다. 각 브랜드에 대한 충분한 자료 조사가 완료된 뒤 해당 브랜드 본사와 접촉해 취재하고, 소비자들을 찾아가 인터뷰한다.

여러 번 볼수록 다양한 B의 매력

<매거진B>는 지난 2011년 11월 첫 호부터 한글판과 영문판을 동시에 발행해왔다. 현재 일본과 영국, 스위스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도 해냈다. "B의 관점에서 한국 브랜드를 찾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물론 한국 브랜드도 다룰 예정입니다. 해외 판매를 하기 때문에 주로 글로벌한 차원의 브랜드들을 눈여겨보고 있긴 해요." 지금까지 <매거진B>가 다룬 브랜드들을 보면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그리 익숙한 브랜드만은 아니다. 혹시 B의 관점에 부합하는 브랜드를 찾는 데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하는 물음에 최 편집장의 우문현답이 이어진다. "그런 고민을 제작 초반에 조금은 했어요. 하지만 이제 그런 걱정은 한 50년이나 100년쯤 뒤에 해볼 만한 것 같네요." 시간이 흘러 <매거진B>가 성장하는 동안에 많은 브랜드들이 함께 B의 방향으로 성장해 수를 채워줄 것이라는 그의 기대가 엿보인다.

<매거진B>는 디지털화 되지 않은 아날로그 미디어다. 아직 별도의 전자책 애플리케이션이 없다. 5월호 '발행인의 말'에서도 조수용 대표는 전자책 발행에 대해 성급히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썼다. "물론 아날로그적인 미디어가 디지털 미디어로 넘어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 당장 남들 하듯이 급하게 내지는 않으려 합니다." 조 대표뿐만 아니라 디렉터들도 의견을 함께하는 부분이다. 다른 잡지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전자책 애플리케이션에 포함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해외에서 정기구독을 실시할 때 드는 해외 우편 배송료가 2012년임에도 불구하고 책값보다 더 든다고 한다. 그런 고충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매거진B>만의 글로벌적인 방향을 고심 중이다.

더불어 <매거진B>의 특수한 종이 재질에 대해서 물었다. 기본적으로 잡지라는 점에서 손에 잡히는 물성(物性)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표지, 종이 재질, 인쇄, 제본을 모두 일반적인 가격보다 높게 책정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매거진B>를 하나의 제품으로도 느낄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요. 수익을 포기하더라도 더 완성도 있는 것을 만들고 싶어요. 이 안에 담긴 브랜드들도 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어요." 브랜드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하나의 제품이라고 설명하는 그의 말은 잡지임에도 잡지가 아닌 <매거진B>를 여실히 느끼게 한다.

B의 감성으로 살아가는 사람

얼마 전까지 한 월간지의 기자 및 에디터로도 일했던 최 편집장의 본래 전공은 그래픽디자인이다. 어쩌면 현재의 직업과는 무관하다. "제 관심사는 사람들이 사유하는 방식이에요. 인간은 절대로 논리적 사고를 하지 않거든요. 지극히 감정적인 요소가 중요한 결정요인이 될 수도 있죠." <매거진B>도 감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잡지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저는 한 번도 기자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지는 않았어요. 경험 삼아 시작한 인턴기자 일을 통해 좋아하는 걸 찾게 됐죠." 그는 모든 학문이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효율성, 편리함, 아름다움 등의 양념을 치면서 그 관계를 연구하는 게 제 일이에요.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과정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건지를 단지 종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하는 거죠."

 

평소 존경하는 멘토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어느 분야에서든 한국적인 감성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사람들이라 답한다. "한국적 감성이란 기와지붕, 김치, 한복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생각하는 방식이 한국적이라는 거죠. 우리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그것을 다시 대중적이고 글로벌하게 풀어내는 걸 말해요." 창의적인 것을 만들 땐 외국의 것을 베끼기보다 우리의 기준과 속성을 최대한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땅에서 자라고, 먹고, 배우고 어울리며 자랐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국적 감성에 깊이 몰입하면 어떤 걸 창조하든 그 정신이 담겨요. 그런 시도를 하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한국적 감성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달라고 하자 이우환, 서도호 작가의 작품들을 이야기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을 실천하는 작가들이다.

최 편집장은 학생 시절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그는 "스스로 생각하라"고 충고한다. "많은 사람이 모여 의견을 낼수록 최상의 것이 아닌 평균치의 결과를 가져와요. 자신들의 의견이 모두 반영됐으니 바람직하다고 여길 뿐이죠." 같은 맥락에서 20대 대기업 쏠림현상을 비판하는 그는 주관이 뚜렷한 <매거진B>의 편집장답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기보다 소수의 사람들이 사색의 끝까지 닿아 만든 것들이 더 가치가 있어요." 소수의 발상이 역으로 가장 대중적인 요소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최 편집장의 말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건조하지만 열정이 넘치는 <매거진B>와 똑 닮은 그의 철학은 무심코 곰곰이 생각해보고자 하는 갈망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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