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5월 창간. ‘웃자 뒤집자 놀자’가 모토. 미스코리아 대회를 공중파에서 밀어내는 등 실천적 여성주의를 표방함. 올해로 7돌을 맞는 페미니즘 계간지 ‘이프’를 50자 내외로 표현한다면 이 정도가 될까. 지난 2월 6일 말 많고 탈 많던 잡지 ‘이프’가 네 번째 CEO를 선출했다. 그의 이름은 엄을순(48). 인터뷰 말 꺼내기가 무섭게 “오세요!” 하는 목소리에서 씩씩함이 묻어난다. 날이 풀리고 봄이 온다는 ‘우수’를 하루 앞두고 엄 대표를 만나 보았다.

마포역 4번 출구에서 직진, 불교방송국 뒤로 200여 미터, 이색적인 초록색 건물 지하 1층. ‘도서출판 이프'의 새 보금자리다. 넓지 않은 공간 한 켠에 아직 문패도 달지 않은 엄 대표의 방이 있다. 텅 빈 하얀 벽에선 아직도 페인트 냄새가 묻어 나고 한쪽 구석에는 축하 꽃바구니들이 쌓여 있다. “아직 일주일도 안됐어요.” 라며 인사하는 엄 대표는 올(all)블랙 차림에 강단 있어 뵈는 모습이다.   

이프, 독자를 찾아갑니다

-보도 자료를 보니까 ‘이프’의 대중화를 선언하셨던데요.

-대중적인 이야기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많이 읽히고 싶단 거죠. 짜증나더라구요. 그런 의미의 대중화는 아닌데...

‘이프’ 읽고 싶어 사러 갔더니 없더라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단다. “제가 또, 그거 하면 참 좋겠다, 그러고서 안 하는 거 제일 싫어하거든요. 저는 그 날로 가서 해요.” 그는 산부인과부터 찾아 나섰다. “광고 좀 해주세요” 가 아니다. 여자들이 꼭 알아야 할 상식이 여기에 있으니 너희가 ‘이프’ 좀 사라는 식이다. 보통 흥정꾼이 아니다. ‘이프’의 주요 타겟인 2,30대 여성들이 휴대폰과 밀접한 사이라는 생각에 LG 텔레콤, SK 텔레콤을 닦달, 1000권씩 끼워 팔게 되었다. 올해는 은행에서도 ‘이프’를 만나 볼 수 있다. “미장원도 하라고 난리던데... 거기를 뚫을 길이 없네요. (머리를 만지면서) 보다시피 머리를 잘 안 하니까. 자르는 것도 간신히 잘라요.”

그래도 ‘대중화’ 말이 나오게 된 경위는 있다. 97년 ‘이프’ 탄생 초기에는 여자들도 ‘여자’ 문제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남자들도 밥 먹고 걱정거리 없으니까 저런 소리하는 거라고 무심히 지나쳤다. “옛날에는 더 과격했어요. 사실이에요. 그랬어야 했거든요.” 쳐다보지도 않던 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이프’는 각종 차별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피와 휴지로 범벅인 수술대 위에 두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 여성의 낙태 사진을 보여줘야 했고 과격한 말로 남성을 공격해 욕도 많이 먹었다. 어느덧 일곱 해가 지나고 여성들도 가질 것을 조금은 가진 세상이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깨부쉈으니 이제는 쓸어 담을 차례라고. “남자들 조금씩 젖어들게 만들어서 ‘아’ 어느새 나도 페미니스트가 되었네 할 때까지 데리고 가야죠. 사실 모든 남자가 다 적대시해야 될 대상은 아니거든요.”

“이게 저예요”

인터뷰 도중 그의 작업실로부터 작품 두 점이 배달되어 왔다. 가로 세로 1미터 남짓한 꽃 사진들을 가리키며 “이게 저예요”라고 웃는 엄 대표에게서 천진난만함을 엿볼 수 있다. 지지리도 말을 안 들어 3남 1녀 중 제일 키우기 힘들었다는 외동딸, 1978년 이화여대 메이퀸 최종 후보, 남편 서윤석(이화여대 경영대학장) 씨를 따라 미국 유학길에 오르던 새댁, 16년 간 두 딸과 남편 뒷바라지하던 전업주부, 마흔에 신구대 사진학과 장학생, ‘이프’ 사진기자, 2003년 아주대 MBA 과정 수료. 이 모든 것이 마흔 여덟 엄을순이다. 외모가 바뀌고 나이를 먹고 직업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은 엄 대표의 모습 하나는 항상 ‘왜?’와 ‘나’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재학 시절 그는 우연히 과 퀸(queen)으로 선발되어 최종 후보 경선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상처가 있는지 보기 위해 이마도 살짝 내놓아라 팔도 조금 내놓아라 치마도 무릎 아래로 내리지 마라 하는데 괜히 기분이 나쁘더란다. 최종 후보 3명만 남은 자리, 메이퀸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뜸 한 명 여왕 하고 나머지 시녀 하는 이런 제도는 없어져야 되지 않겠느냐고 쏘아붙였단다. 재벌가 며느리 후보로 물망에 오르던 메이퀸을 눈앞에 두고 당차게 제 목소리 냈으니 어느 누가 그를 무모하지 않다고 했으랴. 신기하게도 그 해 이후로 메이퀸 제도는 사라졌다고. “아무래도 제가 한몫 한 것 같애요. 그러고 보면 제가 안티 미스코리아 원조 격이죠.”

대학 졸업 2개월만에 결혼, 그에게도 전업 주부 시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남편 먼저 공부하고 그 다음에 여유 되면 나 하자는 식이었죠. 근데 어디 그게 됩니까.” 차단된 유학생 커뮤니티 속에서 그는 그저 이것저것 건드려볼 뿐이었다고. 16년을 주부로 살면서 집에서 노는 것이 편해질 만도 했을 텐데 그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무엇을 좋아하나, 무엇을 할 때 제일 기쁜가. 회한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남편과 공부를 시작하는 후배들만 보면 그는 “조금 늦어지더라도 남편과 함께 시작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고 했다.

유학생 모임 안에서만 조용히 지내다가 처음으로 만나본 ‘사회’ 한국은 이상한 곳이었다. 어느 날은 한증막에 앉아 있는데 어떤 여자가 들어와서 깔개를 소리나게 탁 놓고는 그 위에 앉더란다. 얼마 후 그 여자가 나가고 나자 한증막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깔개를 왜 저렇게 탁 놓아, 교양 없이.’ 보다 못한 엄 대표가 한 마디 했다. “아이고 나는 나 욕할까봐 못나가겠네. 모르고 한 일인데 뒤에서 저렇게 수군대면 나중에 또 하게 되잖아요.”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은 꼭 딴죽을 걸고 쉽게 예스하는 법이 없는 그의 별명은 쌈닭이었다.

인터뷰 중간에 “또 딸이네” 하면서 전화를 받는다. 특별한 자녀 교육방침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 몰랐거든요. 딸들은 저를 ‘엄마새’ 같다고 하더라구요” 라며 웃는다. 날개로 자식을 든든하게 보호하고 문제가 생기면 금세 날아와 모든 걸 해결해줄 것 같은 ‘엄마새’. ‘너 혼자서도 완성된 물건이 되어라. 남편과 붙여 놨을 때 완벽한 것보다는 너 스스로 완벽해져야 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그가 자식들의 ‘엄마새’라면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26년을 함께 해 온 남편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된다. 이미 주부 생활이 편해진 엄 대표에게 ‘이프’ 대표 자리가 건네졌을 때 그 누구보다 두 딸과 남편이 등을 떠밀었다고. 그는 이렇게 선포했다. “오케이. 내가 그동안 애들과 당신 밥상 차리느라고 고생했으니까 이제는 내가 내 밥상 차리겠다” 남편 왈, “당신 밥상 내가 차려줄게.”

“한번 이프는 영원한 이프에요”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이프’ 입사, 5년 만에 대표 이사로 등극했다. 아직 조직도도 다 외우지 못한 신출내기 CEO지만 말끝마다 ‘한번 이프는 영원한 이프에요’ 운운한다. 여성의 욕망을 아는 도서출판 ‘이프’에는 학보사 출신도 있고, 소설가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여성들이란 점.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일년에 네 번 계간지 ‘이프’를 만들고 또 네 번 단행본을 발간한다. 5년 간 이들과 언니, 동생으로 부대껴온 엄을순 씨는 이제 대표가 되어 ‘애들’과 만나게 되었다. ‘선배님을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해요.’ ‘나도 너희에게 일 시킨다는 게 영 어색하구나.’ 자매애로 똘똘 뭉친 그들이 단박에 딱딱한 상사-직원 관계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루는 엄 대표가 직원들을 모아놓고 인센티브(성과급)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자 직원들은 분위기가 안 좋아질 것 같다며 한사코 만류했다. 그럼 게으름 부리며 업혀 가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직원들의 대답. “업혀갈 때도 있고 업어줄 때도 있는 것 아닌가요. 업혀 가는 애들 구박 안하고 업는 애는 투정 안 부릴게요.”

엄 대표는 오늘도 행복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제가 아는 여자가 있는데 소위 고학력(high-educated)이에요 그런데 집에서 놀거든요 제가 놀면서 행복하면 암말 안 해요.” 그는 집에서 ‘썩고’ 있는 여성들을 ‘이프’로 끌어들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중이다. 여성들 모두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세상이 오는 것, 그런 여성들을 키워내는 집단 ‘이프’가 되는 것, 그 ‘이프’의 엄마새 같은 CEO가 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2004년 어떻습니까?” 엄 대표는 단박에 “포부가 하늘을 찌릅니다!” 라고 답한다. 여성운동 그거 배고픈 거다 소리 듣기 싫어서 직원들에게 월급도 팍팍 주고 싶은 손 큰 언니. 계간 ‘이프’를 월간 ‘이프’로 돌리고 싶어서 매일 장부 보며 계산기 누르는 경영자. “왜요?”라고 묻지 않는 묵묵부답 직원은 일도 못한다고 주장하는 발랄한 상사. 미스코리아 대회 주관하는 한국 일보 측에서 인터뷰하러 온다며 소매를 걷어올리는 ‘엄마새’. 엄을순 대표가 있는 한 ‘이프’ 호에는 당분간 순풍만이 불 예정이다.

 
 
     최정인 기자 <iloveyou_lolit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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