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이야아~" 까맣게 분장을 한 개그맨 심현섭이 두 손을 높이 들고 소리 지른다. 지하철 역 이름을 쉬지 않고 쏟아 내는 이는 '수다맨' 강성범이다. 엉터리로 영어를 해석하던 '미친소 선생님', 시도 때도 없이 "김 기사, 운전해~"를 연발하던 '사모님', '안어벙', '우비소녀', '마빡이', '도레미 트리오'. 조금 과장을 보태어 전 국민이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에피소드 하나쯤은 떠올릴 수 있다. "내 아를 낳아도", "사천만 땡겨 주세요", "그런 거야?" 이들의 유행어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 나이를 불문하고 수많은 시청자들이 ‘마빡이’를 흉내 내는 UCC를 찍어 올리기도 했다. 10년간 개그맨들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전성기를 누려왔다. 그리고 지난 7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시초 격인 <개그 콘서트>는 방송 600회를 맞았다. 하지만 이제 <개그 콘서트> 뿐이다. SBS <웃찾사>와 MBC <개그야>, <하땅사> 모두 어느 순간 사라졌다.

루키의 등용문, 공개 코미디

한국 코미디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만담이 있다. '장소팔과 고춘자', '남철, 남성남' 으로 대표되는 만담 코미디는 서로 익살스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을 줬다. 80~90년대에 이르러서는 콩트 코미디가 대세를 잇는다. 다수의 개그맨들이 드라마처럼 역할을 맡아서 대사를 읊었고 이를 편집해서 방송에 내보냈다. KBS <유머 1번지>의 '변방의 북소리'가 대표적인 코너다. 개그맨 심형래의 인기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1999년, 코미디 계는 새로운 시도와 함께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KBS <개그 콘서트>의 등장이었다. <개그 콘서트>는 개그를 텔레비전 속 방송에서 '현장'으로 끌어냈다. 콩트와는 대조적으로 공개 코미디는 짧고 즉흥적인 코너들을 많이 배치했다. 여러 개의 '코너'를 병렬적으로 늘어놓아서 시청자의 지루함을 덜어주고자 했다. 방청객을 동원하면서 현장감을 살렸다. 화려하게 등장한 <개그 콘서트>는 방송 편성 이후 12년 동안 승승장구했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신인 배출의 장이었다. KBS 공채 개그맨들은 <개그 콘서트>로, MBC 공채 개그맨들은 <개그야>로, SBS 공채 개그맨들은 <웃찾사>로 향했다. 공개 코미디 콘서트장은 그들의 직장이었다. 그러나 지난 2월 <개그 콘서트>를 제외한 공개 코미디는 모두 폐지되었다. 폐지된 지 9개월 만인 지난 2월, SBS 공채 개그맨 김형인 씨와 심진화 씨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씨는 <웃찾사>의 폐지는 생계와 직결됐다고 말했다. 하룻밤 사이 직장을 잃은 그는 그 뒤로 케이블 프로그램을 전전하며 살아왔다고 밝혔다. 심 씨는 방송에 출연할 수 없어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고 했다. 방송에서 밀려난 다른 SBS 개그맨들은 <웃찾사> 대학로 공연에서 활동하고 있다. KBS를 제외한 다른 방송사의 경우에는 더 이상 루키를 발견할 수 없다.

코미디 프로그램 폐지의 이유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시청률에 따라 방송 포맷이 변하고 있다. 쉽게 말해 대세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10년 간 공개 코미디가 누렸던 인기는 2008년부터 리얼 버라이어티로 향했다. 시청자들은 더욱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웃음을 선호했다. 2011년에 와서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대세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유명 연예인, 아이돌 가수들만 참여할 수 있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프로그램에 신인 개그맨들이 출연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

또한 공개 코미디는 다른 포맷에 비해 수출이 부진하다. 지난 2006년에 <웃찾사>를 일본 위성채널에 수출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같은 해, 개그팀 '갈갈이 패밀리'와 '컬투'가 일본에 진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KBS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올해까지 코미디 프로그램을 단 한 편도 수출하지 못했다. 코미디 프로그램 수출이 어려운 이유는 '문화할인율'에 있다. 나라별로 웃음의 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문화에 따라 개그의 스타일도 바뀌는데, 이를 문화할인율이라고 한다. 그래도 최근에 <개그 콘서트> '달인'팀이 일본 지상파 TBS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다시 수출에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돌아올까?

하지만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사와 개그맨들의 열망은 아직 식지 않았다. SBS는 올해 하반기 안에 <웃찾사 시즌 2>를 편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SBS는 지난 해 크리스마스에 맞춰 <웃찾사>를 이을 프로그램 <굿타임0230>을 편성했었다. 아이돌 가수를 투입해 높은 시청률을 꾀했지만 2011년 1월 1일 종영했다. 그런 이유로도 더더욱 <웃찾사 시즌 2>는 정통 코미디 부활이라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아직까지 평균 13%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KBS <개그 콘서트>와 경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MBC는 올 해 2월부터 코미디 프로그램 <웃고 또 웃고>를 방송 중이다. 하지만 시청률이 1%를 웃도는 바람에 금요일 밤 12시 35분으로 방송 시간을 옮겼다. 프라임 시간대인 9~11시에 방송되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심야시간으로 밀린 것이다. '나는 가수다' 패러디로 '나도 가수다'라는 코너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여전히 1%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종합편성채널을 인가받은 매일경제의 MBN은 1기 공채 개그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그리고 <개그 콘서트>에 필적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편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상파 방송사와 종편 모두가 공개 코미디 편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시청률의 부담감을 떨쳐낼 수는 없다. 2010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한 개그맨 김병만은 의미심장한 수상소감을 남겼다. "너무 안타까운 점은 방송에서 코미디가 없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MBC SBS 사장님 코미디에 투자해 주십시오." 경쟁을 통해 건강한 웃음을 주는 개그맨들의 노력을 올 해 하반기에는 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지 기대한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