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그 전에 먼저 송혜영 양에 대해 좀 알아야 겠는데요?”

이내 “어디 살고 있지요?”, “고향은 어디?”, “꿈이 뭐에요?” 질문이 쏟아진다. 기자는 짤막한 인터뷰를 당하고 나서야 물음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오는 메일을 모두 정성스레 답변해 주시니까 메일로 연락해 보세요.” 박영신 교수를 인터뷰하고 싶다 했더니 ‘작은 대학’ 조교 김혜미씨는 이렇게 말했었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가지고 고유한 인격체로 존중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인문학 위기, 대학 문화에 딴죽 걸다

1991년, 박영신 교수는 진덕규, 김학수, 윤여덕, 정인재 4명의 교수와 함께 대학의 반지성문화에 대항해 ‘작은 대학’을 만들었다. ‘작은 대학’은 대학찾기, 대학 높이기, 대학 낮추기’를 모토로 인간과 사회에 대해 사유하고 탐구하는 모임이다. 스무 여명의 학생들이 2주 마다 책 한 권씩을 읽고 생각하고 고민한 것들을 토론한다. 플라톤의 <국가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등 제목만 봐도 머리가 아픈 고전 20권을 교재로 삼는다.

“물질문명에 기초한 기존 대학의 흐름에 저항하고자 하는 움직임입니다. 붕어빵 찍어내듯 기업이 원하는 기술을 가진 인간 만들기에 급급한 저질 대학 문화에 반기를 드는 거죠. 썩어 빠진 정신부터 바꾸자는 깊은 의미의 사회운동이지요.” 되돌아가야 할 뿌리를 인류의 역사와 사상의 압축체인 고전에서 찾는다고. 박 교수는 ‘작은 대학’ 이야기가 나오자 열을 올리며 지금의 대학 문화에 대한 비판을 봇물처럼 쏟아 놓는다. “교수가 밤낮 연구실에서 머리 싸매도 학문이 될까 말까 인데, 학생 처장이다 장관이다 여기 저기 불려가면 제대로 학문 연구가 되겠습니까?” 옛말이 되어버린 학문의 상아탑. 대학이 진리탐구의 본질을 걷지 않는 현실이 슬프단다.

‘인문학 위기’란 말이 나오게 된 것도 지나치게 실용적 학문만을 우선시하는 현실을 반영한 말이다. 취업이 안된다고, 사회에서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인문학을 기피하는 학생들의 태도도 잘못됐다고 꼬집는다. “아인슈타인이 누가 뭐 인정해줘서 물리학 공부 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변화시켰어요.” 박영신 교수는 기업체에서 몇 백억, 몇 조 돈 버는 것보다 사람들의 세상 보는 시각을 바꾸게 만드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는 전형적인 학자였다.

“돈이 전부가 아니거든요. 내가 백만원 받다가 오백만원 받는다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어디서 툭 튀어나오겠어요? 백만원 받으나 오백만원 받으나 똑 같은 머리에요.” 돈이 중심이 되어버린 사회, 그는 오늘날 문명에 할 말이 너무도 많다.

대화가 필요해

박 교수는 연세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학문이 좋아서인지 출세하고자 박사학위를 딴 건지, 당시 국내 교수들의 진의가 의심스러웠단다. 장학제도도 발달돼 있지 않아 오히려 미국에서 공부하는 게 수월했다. 버클리의 자유스런 수업 분위기가 좋았단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듯, 대화를 통해서 서로 생각의 폭을 넓혀 나가면서 학문의 재미를 느꼈다고 말한다.

“베리 굿!”, “굿 아이디어~” 미국에서 교수나 학생들과 토론할 때 흔히 들을 수 있었던 말이란다. “짧은 영어로 제가 무슨 말을 썩 잘 했겠습니까. 내가 의견을 말하면 교수는 자기 의견과 다르더라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존중해 주었지요.” 일방 통행적 지식 전수만 할 뿐 생각의 교환이나 대화가 없는 한국 교육의 현실을 생각하니 답답하단다. “우린 대화의 능력을 잃어버렸어요.”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아버지, ‘자지 말고 공부해라.’ 약처럼 커피를 타 주는 어머니, 기계처럼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자식들. 한국 가정에 대화란 이미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Happy Together

그가 요즘 들어 표방하는 사회관은 ‘공동체주의’다. “사람은 다 붙어 사는 거거든요.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다른 사람 짓밟는 게 무슨 성취감입니까. 떨어져 내린 사람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인간성이 타락해버린 현실이 문제라고 언성을 높인다. “혼자 살 수 있습니까. 내 아픔이 곧 송양의 아픔이 되고 그런 것 아니겠어요?”

이제껏 대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학문연구에 치중하며 현실을 비판했다면, 요즘 박교수는 몸으로 뛰고 있다. 2000년부터 녹색연합의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어요. 사회운동가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많이 배워요.” 자연을 훼손시키는 인간의 오만함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거 다 마시고 가세요.” 인터뷰가 끝나 나가려던 참, 반쯤 남은 기자의 음료수 잔을 보고 대뜸 소리쳤다. 가까운 거리는 항상 걸어 다니고 차 한 번 산적 없이 지하철만 타고 다녔다며 자랑하는 그. “이만하면 녹색연합의 준비된 사람 아니겠어요?”


 
송혜영 기자 <teaz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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