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신문은 독립신문?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은 무엇일까? 바로 1883년 창간된 '한성순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1896년 개화파 인사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을 첫손에 꼽는다. 민간인이 운영 주체가 되어 민중의 이익과 권리 수호, 민족의 자주 독립을 이루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서다. 그러나 독립 신문의 의미와는 다르게 그 이후의 한국 언론은 근대사의 굴곡 속에서 권력과 자본에 영합하는 부끄러운 길을 걷게 된다.

최초의 필화 사건은 1900년 황성 신문의 남궁억 사장 구속 사건이다. "러시아 공사가 일본 공사에게 한반도 분할을 제의했다"는 기사를 썼다는 이유였다. 또 을사보호조약 당시 장지연의 유명한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으로 결국 정간 처분을 받았다. 그 밖에도 '매일신문', '제국신문' 등의 민영신문들은 일제의 무단 통치로 차츰 자취를 감췄다.

1920년 일제는 조선통치 방법을 바꿔 문화 정치를 내세웠다. 이 때 창간된 3개지 가운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지금도 주도적인 언론세력이다. 이들은 일제의 압수 정간, 언론인 구속 등 탄압 속에서도 항일 논조를 유지하려고 애쓰다가 40년대 태평양 전쟁때 폐간된다.

좌우 대립과 반독재


1945년 8월 15일 자주권을 회복한 우리나라에서 폐간되었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복간된다. 그러나 광복 이후 50년의 세월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상당 부분의 힘이 점령국인 미국과 소련에 분할되었으며, 이러한 외적 조건을 극복하려 한 여러 시도들은 각 정파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사분오열됐다. 언론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해방 3년 후의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체제의 종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로 민주주의 국가를 천명한 이승만 정권 역시 일제의 뒤를 잇는 또다른 언론 탄압의 주체가 된다. 언론 통제의 수단으로 폭력을 자행했고 또 정치적 보복으로 언론인을 투옥하는 일도 잦았다. 1959년 4월 경향신문 폐간 사건은 자유당 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이유였다.

언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탄압의 유형은 경제적인 압력이다. 1964년 공화당 정권 시절 언론윤리위원회법 파동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또 세무사찰과 광고 통제도 유용한 언론탄압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사실 이때는 6·25로 체제 비판적인 언론이 사라지고 남아있는 야당지라 해도 체제외적 비판지나 반공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사주와 경영자가 정치세력과 맺는 개인적 친분, 이해관계에 따라 신문의 논조가 변화하면서 점차 이를 비판하는 언론 세력이 생겨났다.

자유당 정권에 대한 반발이 거세진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 정치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그러나 언론은 자기의 목소리를 제대로 못하고 오히려, 정부의 이데올로기를 홍보하는 이른바 '제도 언론'으로 전락한다. 박정희의 군사 정권은 비판적 성향의 신문을 폐간하고 언론사주와 언론인을 분할 통치했고, 긴급조치, 반공법 및 국가 보안법 등으로 언론 활동에 분명한 한계를 정했다. 70년대에 들어서는 부처 대변인제, 출입처 제한 조치 등의 행정적 통제를 가하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언론윤리위원회법 등의  악법 철폐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굽히지 않았지만 오히려 기자를 구속하는 등의 탄압을 계속했다.

동아일보와 언론 통폐합


1974년에 군사정권은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내세운 동아일보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탄압의 방법으로 택한 것은 광고 전면 차단. 7개월간 계속된 광고 탄압은 유신 정권의 대표적인 언론 목조르기였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는 광고 자리를 비워둔 채 백지 상태로 신문을 냈다. 언론 탄압에 격분한 시민들은 빈 자리에 격려광고를 게재하는 등 성원을 보냈으나 정부의 강력한 언론 통제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79년 박통 피살 사건으로 독재정권은 막을 내렸으나 이듬해 5월 군사 정권은 반복된다. 정권을 잡기 무섭게 언론을 옥죄기 시작한 전두환 정권이 제일 먼저 '언론자율정화 및 언론인의 자질 향상에 관한 결의문'을 신문협회와 방송협회에게 강제 채택하게 했다. 그 결과 172종의 정기간행물이 폐간되고 913명의 언론인이 해직됐다. 11월에는 '건전 언론 창달과 육성을 위한 결의문' 강제 채택으로 언론이 통폐합되기에 이른다.

5공화국 시절인 1986년 9월, 민주언론운동연합에서 발행하는 월간 <말>에서는 11개월에 걸쳐 '보도지침' 584개를 폭로해 관련자 3명이 구속됐다. 문화공보부에서 각 언론기관에 매일매일 시달한 '보도통제 가이드라인'인 이 보도지침은, 권력의 언론통제 실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였다. 게다가 전 언론사를 대상으로 했던 세무조사는 언론 경영상의 개혁이기 보다는 정권의 언론 통제의 수단으로 더 크게 작용했다.

국민의 정부와 그의 언론


지금은 어떤가? 최근 몇 달간이나 계속되는 중앙일보와 정부 간의 공방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제까지 계속되어온 정부의 언론 탄압일까, 아니면 한 재벌 그룹 사장의 단순한 탈세 비리일까?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미래의 불확실한 결론보다 지금 진행 중인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자. 한국의 언론이 생겨난지 백 년, 말 바꾸기와 책임 전가는 난무하는 한편 진지한 반성과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 상황은 씁쓸할 뿐이다.

장혜린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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