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주 유명한 의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미친 사람들을 잘 치료하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의 집 높은 울타리 안에는 더럽고 끈적끈적한 늪이 있었다. 의사는 병을 고치러 온 정신병자들을 발가벗겨 늪 가운데 기둥에 묶어 놓고 치료를 했다. 미친 정도에 따라 늪의 깊이는 깊어졌다. 치료를 받던 한 환자는 진흙탕 속에서 보름을 보냈고 정신을 차린 것 같다며 통사정을 해서 간신히 늪 밖으로 나왔다. 의사는 환자를 늪 밖으로 꺼내주기는 했지만 아직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환자가 문가에 기대어 서 있는데, 한 기사가 매와 개를 데리고 말을 타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환자는 그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개랑 매로 사냥하면 일 년에 얼마 정도 벌 수 있소?" 기사가 대답했다. "대충 금화 4리브라에서 5리브라 정도요." "그럼 당신 말이랑 개, 매에 드는 비용이 일 년에 어느 정도 되나요?" "보통 50리브라 정도 든다고 볼 수 있소." 그러자 그 환자가 깜짝 놀라 말했다. " 어서 여기서 도망쳐요. 우리 의사가 당신을 보면 안돼요. 의사가 당신이 얼마나 미쳤는가를 알게 되면 아마 가만 놔두지 않을 거요. 아마 내가 보기엔 당신이 늪 제일 깊숙이 잠기게 될 거요. 당신이 가장 심하게 미쳤으니…." 

 -이솝우화 中-

기원전 6세기 초, 지금부터 약 2600년 전에 살았던 이솝은 생산 비용보다 소득이 커야 투자 가치가 있다는 경제 원칙을 그 때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에야 당연시되고 있는 이야기지만 2600년이라는 시간 차를 고려하면 그의 경제 관념이 오늘날에 비추어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우 진보적이고 합리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읽었던 '이솝우화'는 지금 10년 만큼의 무게가 더해져 한층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은혜를 입으면 꼭 보답해야 돼'하는 식의 단편적이고 개인적인 교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사회에서 그의 우화가 주는 의미를 연결 지으며 새롭게 인식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솝우화는 다른 동화와 그 내용에 있어 사뭇 다르다. 보통 동화책들이 거의 권선징악적 내용 구조로 되어 있는 데 비해, 이솝우화에서는 아무리 선(善)해도 합리적이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면 해를 입을 수 있고, 또 아무리 악(惡)해도 꾀를 잘 이용하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 진실한 사람과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함께 원숭이 왕국에 갔을 때, 거짓말로 아부를 한 사람은 많은 상을 받았지만 진심을 말한 사람은 원숭이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여느 동화 같으면 어떻게든 진실이 통해 상황이 역전되는 흐뭇한 결말을 맺었을 테지만 이솝우화는 부패하고 부조리한,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풀 많고 편안한 초원으로 내려오라는 늑대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은 염소 이야기를 통해, 이솝은 악한을 쉽게 용서하지 말고 믿지 말라고 말한다. 이 역시 화해와 용서의 예쁜 결말이 주를 이루는 다른 동화와 큰 차이를 보인다.

이솝우화는 부패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그대로 나타내고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이것은 살아가는 힘을 주기보다는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희망과 사랑이 담긴 감동적 이야기는 고단한 삶에서 휴식이 되지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는 못한다. 이에 비해, 이솝우화는 마음이 훈훈해지는 감동을 주지는 못하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무조건 착하기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는 지혜로운 대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솝우화는 어린이에게 착한 마음과 교훈을 심어주기 위한 책이기에 앞서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삶의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겠다.

이솝우화가 이렇듯 삶과 밀착된 내용으로 채워지는 데에는 이솝 자신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올챙이 배에다가 머리는 집채 만하고, 코는 납작하며 말더듬이인 흑인 노예. 게다가 병약하고, 안짱다리에 팔은 짧고 눈은 사팔뜨기이며 콧수염은 더부룩. 그야말로 성한 곳이라곤 없는 형편없는 몰골의 주인공이 바로 이솝이었다.

아마도 이솝은 이런 자신의 모습 때문에 일찍부터 자기 자신을 비롯한 주변 세계에 더욱 냉철한 시선을 가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감으로 가득찬 사람이 범하기 쉬운 오만과 지나친 자기애, 집착, 좁은 식견을 일찌감치 버리고, '못생긴 노예'로 살아가야 할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해 볼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솝은 노예로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주변 세계로 눈을 넓혀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솝의 우화는 머리로 논하는 가치가 아니라 이솝의 생생한 삶 자체에서 묻어 나온 삶의 증거이고, 생활의 지혜가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이솝의 타고난 통찰력이 바탕을 이룬다.

이솝은 이같은 통찰력과 지혜로 자유를 얻어냈다. 민회가 열려 시민들이 원형 극장에 모여서 법관을 선출하는데, 독수리 한 마리가 시(市)의 반지를 낚아채 가는 일이 발생한다. 이 불가사의한 일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솝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솝은 의미를 해석해 주는 대가로 자유를 요구했다. 원형 극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바램으로 이솝의 주인이었던 산토는 이솝에게 자유를 허락하게 된다. 이솝은 자유에 대한 강렬한 바람과 의지로 스스로 그것을 얻어냈다. 이솝 자신이 자유의 소중함을 절실히 체험한 바, 그의 우화 곳곳에도 자유에 대한 메세지가 담겨 있다.

이솝우화는 2600년의 시간과 동· 서양의 공간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삶의 지혜로서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것은 바로 '자유'와 같은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생생한 삶의 옷을 입혀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 천년이 다가오고 생활이 더욱 복잡해진다고 해도 이렇듯 인간사의 본질을 보여 주는 이솝의 지혜는 여전히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혜원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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