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를 사랑한다면?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건 징그럽지 않나요?" 중흥 고등학교 유성진군(17)의 말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접하는 러브스토리의 대부분은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 또는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이성애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를 사랑한다면? 여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생각은 완강하다. 영화나 책과 같은 곳에서조차 '동성애' 에 대해 거론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이성애가 아닌 동성애는 소수의 사람들이 겪게 되는 비정상적인 감정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동성애자들을 정신병자로 간주하며 정신병 검증을 받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중고생들의 경우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들면서 상담실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연세대학교 동성애자 모임인 컴투게더는 말한다. 미국의 경우는 정신장애 진단 통계 편람 제3판(DSM 3) 에 있는 '정신병 검증 매뉴얼'에서 동성애에 대한 사항을 1981년부터 삭제함으로써 동성애를 단순한 기호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신과 의사들은 아직도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간주하여 고치려고 노력한다.

교과서에 나타난 편견 그리고 그에 대한 반론

동성애에 대한 편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치관을 성립해 나가는 시기인 청소년기에 고전처럼 많이 보는 교과서. 그 속에도 우리사회의 동성애에 대한 편견은 계속된다.

"에이즈, 동성연애 등이 늘어나면서 성도덕의 문란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성을 상품화하려는 상업주의에서 기인하며, 개인적으로는 성에 대한 무지와 그릇된 성 윤리관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교육부 발행, 고등학교 윤리-

"동성애는 자신과 같은 성에 대해서만 성적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동성간의 사랑이나 성행위는 에이즈 등 각종 부작용을 일으킨다. 정도를 지나친 성도착증, 이상 성욕 등은 청소년이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저해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건전한 성의식과 성역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부 발행, 고등학교 교련-

교과서 내용에서 나타나듯이 우리사회가 동성애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AIDS라는 현대판 흑사병 때문이다. AIDS가 동성애자들의 불건전한 성관계를 통해 유포됐다는 가설은 일반인들의 머리 속에 '동성애=AIDS'라는 공식이 박히게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1980년대 초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의사들은 몇몇 동성애 남성이 희귀한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사들의 관심은 주로 환자의 성적 취향에 집중되었다. 의사들은 잠정적으로 이 병을 '동성애자 관련 면역질환'(GRID, Gay Related Immune Disease)이라고 불렀다. 언론은 더 그럴싸하게 '동성애자 암'(Gay Cancer)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렇듯 의사들은 이 병을 동성애자들만의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며 초기 대응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1982년 이 병이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라는 이름을 새로 얻었을 때 이 병은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 사이에도 발견되었다. 97년 9월 보건 복지부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 나라는 679명의 AIDS 보균자가 존재하는데 그 중 20%만이 동성애자였다. 즉 80%는 이성애자라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기피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심하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가 전통적으로 유교를 바탕으로 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유교 문화에서는 음과 양의 구조 속에서 사회가 존속한다고 믿는다. 모든 것을 음과 양으로 구분하는 유교 문화상에서 여성은 음(陰)을, 남성은 양(陽)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들의 결합 속에서 사회가 존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유교사상에 따르면 양과 음의 결합이 아닌 음과 음, 또는 양과 양의 결합은 사회의 존속을 해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교 문화에서는 여성은 얌전하고 성적인 욕망을 억제해야 하며 남성은 공격적이고 성관계에 있어서 여성을 리드해야 한다는 등 이성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성규범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성간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이지 동성간의 관계에서는 이러한 규범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렇듯 동성애는 유교 문화에서 만들어낸 사회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과 성규범을 파괴하는 것이기에 우리 나라에서 더욱 금기시된다.

해방이후 급격하게 흘러 들어온 기독교 문화도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가중시켰다. 기독교 문화는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한다. 그렇기에 성관계에 대해 금기시한다. 때문에 성관계는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생식적인 관계, 즉 이성간의 관계만이 허용된다. 하지만 동성간의 성관계는 생식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이는 단순한 쾌락을 위한 행위로 간주되고 기독교 문화가 지향하는 금욕적인 생활과는 상반되는 행위인 것이다.

우리사회가 동성애를 기피하는 또다른 이유는 그들이 소수라는 점 때문이다. 어디서나 소수들은 다수들의 질서를 위해 희생되어 왔다. 오랜 시간동안 이성애만이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믿어왔고 또한 이성애로 인해 우리사회가 존속되어 왔다고 믿어왔던 사람들에게 동성애라는 것은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을 법도하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 또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조성하는 데 한 몫을 하였다. AIDS발견 당시 언론에서 동성애자 암이라고 명명한 것이나 트랜스 젠더(trans gender)와 동성애자들을 같은 부류로 얘기하는 등 잘못된 언론 보도는 일반인들이 동성애자들에 대해 더욱 부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부추겼다. 컴투게더 측은 "트랜스 젠더는 성정체성이 잡히지 않은 즉, 여성이면서도 자신을 남성이라고 생각하거나 남성이면서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동성애자는 자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대한 성정체성은 분명히 잡혀있는 상태의 사람들로 단순히 동성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졌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에 대항하기 위한 모임이 늘어나는 가운데 최근 '동성애자 인권연대' 대표인 임태훈 씨는 변호사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교육부에 교과서 수정신청서를 냈다. 변호인단은 임태훈 씨가 지적한 내용들이 헌법 제10조의 인격권 및 행복 추구권,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민원으로 회신을 했으며 교과용 도서 심의회의 심의를 통해 향후 내용을 상의하겠다"라고 밝히면서 "교육부의 특별한 입장은 아직 없는 상태이고 내용수정에 관해서는 검토 중" 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재 7차 실험용 교과서는 이미 만들어진 상태이고 내년 1월에는 전국의 시범학교에 배포될 예정이므로 수정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생각과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교과서 속의 사람들은 그 다양함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에 대해 금기시한다. 그런 교과서를 보며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조수인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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