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우리나라를 방문한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극심한 반일여론으로 인해 푸대접을 받고 돌아가야만 했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문제로 불거진 반일여론은 꽁치조업문제로 극에 달했고 한일관계는 급속하게 냉각되었다. 특히 이번 교과서 왜곡문제는 일본 내에서의 암묵적 수긍 분위기 때문에 더욱더 사회문제가 되었다.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고 있는 역사를 양국의 국민은 왜 그렇게 다르게 보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와세다 대학의 이성시 교수로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이다. 그는 <만들어진 고대>(2001.삼인)에서 동아시아의 역사가 나라마다 어떻게 다르게 해석되는지를 밝히며 고대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을 말한다.

근대 역사학의 틈

근대 동아시아의 역사는 자국의 현실을 투영해서 고대를 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일본의 역사는 서양인을 의식해 존재해왔고 우리나라의 역사는 일본을 의식하면서 존재해왔다고 이야기한다. 일본의 최초 교과서인 '국사안'의 원형이 파리박람회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우리나라의 역사 또한 일본민족에 대한 한민족의 우월성을 고대사 속에서 찾는 것으로 역사연구가 이루어 졌다. 이렇게 출발한 근대 동아시아의 역사는 '만들어진 고대'의 계기가 된 것이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 동아시아 역사 연구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자국 중심적으로 해석된 역사 교육을 받은 국민들이 자신의 역사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고대

E. 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역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성시 교수가 주장하는 "만들어진 역사"란 단순히 현실이 반영된 것이 아닌 현실에 의해서 왜곡된 역사를 말한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은 발해의 역사를 한국 역사의 일부로 본다. 하지만 중국은 공식적으로 발해를 당대(唐代) 소수민족인 말갈인의 지방 정권이라고 파악한다. 저자는 이러한 중국의 해석이 인구의 10%도 안 되는 소수민족이 전체 중국 면적의 6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해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것은 정권유지에 위험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즉 현실의 필요성에 의해서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유럽의 역사가들은 "아시아의 역사가들은 아직까지도 전적으로 해도 좋을 만큼 자신들의 사회와 그 성장에 전념하여 국가라는 틀을 거의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얘기한다. 이는 "역사의 주요 목적의 하나가 국민 의식의 육성에 있다고 하는 19세기에 강했던 신념의 탓"이라는 것이다. 그는 유럽 역사가들의 의견을 책에 서술함으로써 근대 동아시아 역사학이 세계 역사학의 흐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새로운 역사 인식을 확립해야만 하는 내적 동기 뿐 아니라 외적 동기까지 밝혀 주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와 아쉬움

이 책에서 저자는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방향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저자는 재일 한국인으로서 편향되지 않은 중립적인 역사해석을 시도하면서 구체적인 역사 내에서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좀 더 객관적인 해석을 도출해 낸다. 그리고 그 해석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 인식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자국 중심의 해석을 모두 비판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각 국의 해석을 모두 수용하려고 애쓴 듯한 그의 해석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이런 저자의 중립적인 태도는 재일 한국인의 특권이자 한계라고 볼 수도 있다. 실질적 해결책은 이야기하지 않은 채 단순히 새로운 역사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그의 결론은 조금 아쉽다. 많은 학설과 여러 국가의 해석이 나열되어 있어 사론집(史論集)이라기 보다는 학설을 모아 놓은 모음집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역사 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도와 준다는데 있다. 많은 견해와 학설을 통해 우리가 배워온 역사 또한 한쪽으로 치우친 것임을 느끼게 해주고 새로운 역사 인식의 필요성을 주지시켜 준다. 상반된 역사해석으로 국가 간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동아시아 역사의 전체적인 틀을 잡는 일은 필요할 것이다.

정신영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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