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실험대상이 아닙니다.” 
보충*자율학습 폐지에서부터 수능 등급제까지. 유난히 많은 제도 변화를 겪은 현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스스로를 '제도의 희생양'이라 부른다. 기존과 전혀 다른 정책 속에서 교육받았지만 막상 그들에게 적용되는 대입 제도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98년 이해찬 교육부 장관 취임 이후 현재의 한완상 부총리까지 3년 반 동안 여섯 명의 교육부 장관이 바뀐 것만으로도 그들의 교육 혼란상을 알 수 있다.  

현 고3이 중학교 3학년이었던 98년 10월,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입시위주의 교육 탈피를 내세워 혁신적인 여러 제도를 발표했다. 무시험 전형제, 교장추천제, 다양한 특별전형 등 학생들의 품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대학 입시 제도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대부분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이 내용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교육 제도의 변칙 운영과 혼란으로 이들은 '이해찬 1세대'라 불리며 단군이래 최저 학력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현 고3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해인 99년부터 수능을 앞둔 현재까지 이루어진 교육정책의 변화와 이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알아보도록 한다.  

 보충수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가 학력 저하로 이어진 거죠. 남아도는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요.” 수능을 10여일 남겨둔 소미현(신광여고 3년)양은 자율학습이라도 했으면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교육부는 지난 99년 암기위주의 교육 탈피, 개인의 적성, 흥미에 따른 학습 등을 목적으로 각 학교의 보충, 자율 학습을 폐지했다. 오전, 오후의 보충수업과 밤 9시까지 이어진 야간 자율학습에 길들여진 이전 세대에게는 획기적인 정책이었다. 하지만 수업을 일찍 마친 학생들은 학원으로, 과외로 제 2의 학교를 찾아 흩어졌고 이는 사교육비 증가라는 또 다른 문제를 가져왔다.  

몇몇 학교의 경우에는 아예 이러한 정책을 무시하거나 특기적성교육 시간을 변칙 운영하기도 하였다. 학생들의 다양한 흥미와 적성을 고려한 특기 적성 교육은 그 취지가 무색하게 변질되기 시작했다.  “1, 2학년 때는 그나마 특기 적성교육이 이루어졌지만 3학년 때는 완전히 보충 수업이었습니다.” 백암고에 다니는 백정훈(19)군은 3학년이 되면서 7,8교시 특기적성 시간을 통해 수능 준비를 해왔다.  

이렇게 보충, 자율학습 폐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자 한완상 교육부총리는 4월 12일 중고교 보충수업과 관련해 “건전한 보충수업은 학교장 재량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총리의 이러한 발언은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긍정적인 의도를 나타낸 반면 일관성 없는 교육 정책의 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범법자를 만드는 교육부 

 98년부터 단계적으로 제한되던 외부 모의고사가 2001년부터 전면 중단됨으로써 많은 논란이 되었다. 특히 지난 3월 20일 중앙교육진흥연구소가 고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한 모의고사 일정을 취소한 것에 이어 21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2학년도 수능시험 시행계획’에서 수능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발표하자 학생들을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학원을 통해 여러 번 모의고사를 본 경험이 있는 박아름(동일여고 3년)양은 “선생님들이 먼저 학원에 가서 모의고사를 보라고 하시더라구요. 학교에서는 외부 모의고사를 볼 수 없지만 사실상 어떤 방법으로 든 모의고사를 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모의고사 폐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올라있다.  
“수능 시험은 있는데 왜 모의고사는 못 봅니까? 총 없이 전쟁에 나가란 말입니까?”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방학 때마다 보충수업을 해왔으며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야간자율학습도 하고 있다. 모의고사를 폐지한다니, 이제 또 하나의 법을 어겨야겠다.”
이들은 교육부가 학생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고3담임을 처음 맡았다는 오혜선씨도 “아이들이 자기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모의고사를 보지 말라니, 게다가 모의고사를 보는 학교가 적발되면 학교장을 문책하겠다니”라며 제도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365 입시체제

수능 위주의 입시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해부터 특차가 폐지되고 수시 모집이 대폭 확대되었다. 각 대학은 5월과 9월 2차에 걸쳐 시행된 수시모집으로 전체 신입생의 28.8%를 선발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 학생, 교사들은 지난 5월 실시된 1학기 수시모집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1학기 수시 모집은 없어져야 합니다. 1학기 수시에 붙은 학생은 대부분 혼자 고립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차 수시에 붙은 주호찬(부일외고 3학년)군은 1차 수시는 수능시험과 관계없이 합격이 되기 때문에 그 파행이 많다고 지적한다.  

각 언론에서는 몇몇 학교가 수시 모집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하여 내신성적을 조작하고 있다고 보도해왔다.
" 시험을 치르기 전에 선생님들이 시험 문제를 알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서울 M고에 다니는 박민수(가명)군은 언론에서 보도하던 내용이 자신의 학교에서도 일어났다고 이야기한다. 이 학교는 이런 방법 때문인지 50여명의 수시 합격자를 냈다.

일선고교의 수업파행, 대학의 과중한 행정부담 등으로 지난 10월 24일 고려대, 연세대 등 몇몇 대학은 내년부터 1학기 수시모집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대학입학 전형을 다양화한 것은 좋은 시도였지만 시행 첫해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넘어갔다.

 제도뿐인 등급제 

 “수능 등급제는 필요합니다. 점수가 등급으로 동일화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다양한 방법으로 제 자신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소미현(신광여고 3년)양은 등급제는 기본적인 지원자격을 제공하고 면접, 논술 등 자신의 능력을 더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어 좋은 제도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를 통해 의견을 올린 차은호군은 “인문계열로는 1등급인 점수가 자연계열 기준으로는 2등급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등급제가 실시되고 교차지원이 가능하면 누가 자연계열로 시험 보겠습니까?”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수능 점수의 소수점을 없애고 각 영역과 총점에 대해 등급을 나타내는 수능 9등급제는 이처럼 그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교육부의 기대와 달리 수능 등급제를 활용하는 대학이 예상보다 훨씬 적어 그 실효성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단지 22개의 대학만이 정시모집에서 수능 등급으로 지원자격을 정했고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 사립대학은 이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등 11개 대학은 특별전형으로 '수능성적우수자'를 선발, 사실상 특차전형을 부활시키고 있다.

“최저 학력을 나타낸 것이 저희만의 탓입니까?” 현 고 3 학생들은 혼란스러운 대입제도로 이래저래 피해를 보고 있다. 우리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 변화는 겉모습만 화려한 채 실효성 문제를 낳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론과 기성세대들의 따가운 시선은 고3학생들의 사기마저 떨어뜨리고 있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이 또 다른 '이해찬 1세대'를 생산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윤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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