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1면은 신문의 간판, 얼굴에 해당한다. 또한 1면은 그 신문사의 편집 의도와 방향이 가장 잘 함축되어 있는 부분이다. 가게 주인이 가장 좋은 제품들만을 골라 진열해 놓듯 각 신문사의 편집자는 그 날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뉴스들을 엄선해 독자들의 눈길을 끌도록 1면을 장식한다.

신문 1면에는 하루에 3, 4개의 뉴스가 실리는 것이 보통이다. 뉴스가치에 따라 그 날의 가장 중요한 뉴스는 왼쪽 상단에, 그보다 덜 중요한 것은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다. 사진은 대부분 면 한가운데 실리고 있다. 이렇게 우리 신문의 1면 편집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선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다. 그러나 9월 11일 미국 테러가 일어난 후, 각 신문들의 1면에는 일상적인 편집 방식을 벗어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광고도 밀어낸 미 테러사건

테러가 발생한 바로 다음날인 12일 아침 모든 신문의 1면은 온통 미국의 테러 사건으로 채워졌다. 미국 테러의 충격을 그대로 신문 지면으로 옮겨 놓으려는 듯 신문 1면 편집 방식도 파격적이었다.
 
우선 미국 테러참사 사건이 주는 충격과 국제사회에 미치는 중요성은 신문 1면을 몽땅 미 테러사건에 할애하게 했다. 사건 발생 사흘이 넘도록 모든 신문은 일제히 1면에서 미국 테러사건 하나만을 연이어 다루었다. 그 기간 동안 테러사건 이외의 국내외 사건들은 1면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심지어 신문사는 미 테러사건 앞에 수천만 원에 해당하는 1면의 광고도 과감히 포기했다. 12일 조선일보, 13일에는 한겨례가 광고를 싣지 않고 1면 전체 지면을 미국 테러참사 보도에 할애했다. 10월 8일 동아일보는 미국의 아프간 공습을 광고 없이 1면으로 보도했다. 
이에 대해 언론을 공부하는 박혜화씨(22 ·이화여대)는 "물론 미 테러사건의 중요성은 알지만, 하루도 아니고 며칠동안 내내 테러 보도만 하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닌가요. 우리나라 신문인지 아니면 미국 신문인지 헷갈릴 정도였어요" 라고 말했다.
  
미 테러 관련 사진 보도

미 테러사건의 충격은 신문 1면에 실리는 사진 크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각 신문사들은 사건의 중요성을 사진의 크기로 전달하려는 듯 크기를 경쟁적으로 늘렸다. 이 기간 동안 1면의 1/3, 1/2 이상의 지면을 칼라 사진이 차지했다. 이처럼 과감한 크기의 사진과 컬러풀한 편집은 신문의 시각적 효과를 어느 때보다도 극대화시켰다. 

반면,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테러사건 바로 다음날인 12일에도 지면의 1/4 정도의, 보통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진을 1면에 사용했다. 13일에는 사진 크기는 더 축소했고, 14일 조간에는 촛불을 들고 애도를 하는 미국 시민들 모습을 담은 사진만이 조그맣게 실렸다. 이는 13, 14, 15일 계속적으로 공격당하고, 폐허가 된 뉴욕의 사진을 커다랗게 싣고 있는 우리의 신문과는 대조적으로 차분한 모습이었다.

미 테러 참사 이후 1면 사진 보도에 대해 한국일보 편집부의 모 기자는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사진 한 장이 기사 못지 않은 뉴스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번 미 테러 보도 동안의 사진 편집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이은 신문사의 똑같은 사진 보도는 독자들은 식상하게 만들었다. 테러 발생 후 사람들이 온통 잿빛 먼지 더미를 덮어쓰고 있는 붕괴 현장 사진은 12일 문화일보 1면을 시작으로, 13일에는 동아, 조선, 중앙, 한겨례, 한국 등 대부분의 신문 1면에 지면의 절반에 해당하는 크기로 실렸다.

사진의 질도 문제가 됐다. 12일 한겨례는 TV 화면의 캡처를 딴 2개의 사진을 확대해 1면의 반이 넘는 크기로 게재했다. 10월 8일 미 아프간 공습 시에도 대한매일, 동아, 한국, 조선 등이 폭발로 인해 카불 시가 섬광으로 빛나는 모습을 보도한 TV 화면을 커다랗게 실었다. 부시의 성명 발표 장면을 담은 CNN 방송장면도 여러 번 등장했다. 이러한 사진들은 화질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CNN로고와 방송자막이 처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실린 사진들도 눈에 띄었다.
 
독자들은 신문사마다 똑같은 사진들, 화질이 좋지 않은 사진들이 며칠동안이나 지면의 반 이상을 채우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의 출처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현실적인 상황은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신문사들이 취약한 정보망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선정적인 헤드라인

기사의 헤드라인과 제목도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크기로 커졌다. 한국일보는 아예 헤드라인을 흰색 글자에 새빨간 바탕으로 처리했다. 테러의 충격을 증폭시키는 폰트 크기와 헤드라인의 디자인에 내용 또한 도발적인 것이 많았다.

 '미국이 공격 당했다', '미국이 테러 당했다' 라는 서술형과 피동형으로 끝난 조선, 중앙의 헤드라인은 사고 발생과 관련한 사람들의 심리를 더욱 자극했다. '사상최악' (대한매일) '최악테러'(한국) 등의 강도가 높은 용어도 많이 사용됐다. 심지어 한국 일보는  '미 최악테러 1만 여명 사망'으로 아직 확인되지도 않은 사망자 수를 헤드라인으로 성급히 뽑아 내걸어 오보의 위험까지 낳았다. 그 날 다른 신문에서는 수천 명의 사망을 추정하고 있었다.

여러 줄의 제목도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헤드라인을 포함한 제목은 길어도 2, 3단을 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편집 방향이다. 그러나 테러 이후에는 제목 수도 늘어 하나의 기사 제목이 4. 5 단으로 구성되었다. 사건의 부가적인 정보를 여러 단의 제목으로 나열한 편집은 독자들로 하여금 한눈에 정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는 독자들이 기사내용보다 나열된 선정적인 제목만 훑어 피상적이고 불충분한 정보를 취하게 한다는 문제점을 가진다.

지나친 미 보복공격 추측 보도

테러 이후 우리 신문의 1면 편집을 보면 대부분이 미국의 보복공격 보도에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3일자 각 신문 1면의 헤드라인을 보면 '전쟁행위 응징' 부시, 보복선언 (대한매일) 美, 대대적 보복공격 태세(조선) 美 테러응징 戰雲고조(중앙),부시 "모든 수단 동원 응징" (한겨례) 등 모든 신문이 미국의 보복 움직임에 대해 대서 특필 했다. 그 다음날에도 부시, 군사보복준비 지시 "21세기 첫전쟁 승리 이끌 것"(동아일보) 美 보복공격 임박(중앙)미, 조만간 보복공격 태세(대한매일) 미, 수일 내 부시 보복 공격 등 모든 신문사가 하나같이 보복 공격 추측 보도를 다루고 있다. 미 테러 이후에 '도대체 미국의 공격이 언제 이루어질까' 하는 것이 우리 언론사의 최대 관심사인 것처럼 보였다. 10월 8일에는 모든 신문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미 아프간 보복 공격을 커다랗게 보도하는데 열을 올렸다.

"우리 언론이 너무 전쟁 임박 분위기를 고조시켜 위기 심리를 조장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디어와 오늘'에서도 국내 언론이 미국의 공격 관련 기사를 미 현지보다 더 흥분하며 지나치게 다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 테러사건 이후 우리 신문의 1면을 보면 과감한 지면 분배와 헤드라인, 사진 편집 등 미 테러의 충격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의 편집은 영상시대에 신문 편집의 변화이다. 그러나  사건을 이미지 위주로, 감각적으로 보도하는 데 치우쳐 사건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보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쉽다.

김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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