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신공덕동 '사랑의 전화'사무실, 이곳에서 김강석(68), 임정금(48) 부부는 10년이 넘게 말동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그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 야간 상담을 한다.
"밤에 상담을 하면 전화 한 사람이 속내를 털어놓기가 쉽잖아요. 상담을 해주는 저희들도 더 진지해질 수 있고요."
 
사랑의 전화는 살면서 힘들고 괴로운 일이 생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을 건네는 사회 복지 단체이다. 하루 평균 500여 통의 전화가 걸려 오는 이곳은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상담원 800명이 24시간 내내 자원 봉사를 하고 있다.

"처음 상담을 시작할 때는 어떤 전화가 걸려 올지 불안했어요. 하지만 10년 넘게 하다보니 지금은 생활의 일부가 돼버렸네요."
기숙사 사감 시절 사생들과의 상담을 통해 자연스럽게 '카운슬링'에 관심을 갖게 된 임씨는 지난 89년 사랑의 전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이곳에서 법률사무소를 퇴직한 후 상담 원을 자청한 남편 김씨와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가끔 상담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둘이 함께 한다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피곤할 땐 서로 어깨도 주물러주고 마음을 의지하며 일해왔기 때문에 이들은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올 수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남녀, 이성 문제를 고민하는 청소년 등 이곳에는 하루에도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전화를 해온다. 그 중에서도 남편 문제로 힘들어하는 주부들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임정금 씨는 자신만의 노하우인 '저울 기법'으로 대화를 풀어 나간다. "이혼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장단점을 종이에 써보세요. 그리고 무엇이 더 좋은지 저울질 해보세요." 임씨는 주부들이 '저울 기법'을 통해 이혼 후 생활에 대해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화가 난 주부들 대부분이 잘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이혼을 하려합니다. 그런 주부들에게 남편과 솔직한 대화를 해보기를 권하는 것이죠."
 
상담을 하다보면 한 사람이 같은 이유로 여러 번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에는 한 남자가 매주 전화를 걸어 집나간 아내가 돌아오길 바라는 편지를 읽기도 했다. 그 남자의 편지 읽기는 2시간 여에 걸쳐 이어졌지만 부부는 그가 편지를 다 읽어야 잠들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들어주었다. 계속 걸려오는 전화에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부부는 매번 정성스럽게 상담에 임한다. "단지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이 안정될 수 있다면 저는 그 역할을 성실히 해 나갈 것입니다."

밤새 전화를 받는 것은 고된 일이지만 가끔씩 걸려오는 감사의 전화 한 통으로 그들은 또 다시 힘을 얻는다. 몇 주 전 에도 김강석 씨는 한 젊은 여성으로부터 팩스를 받았다. 그녀는 김씨 덕에 마음이 편해질 수 있었다며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사랑의 전화 상담을 하면서 저희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부부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 겸손하게 말한다.  김씨는 이런 활동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상담을 하며 얻게 되는 이런 작은 즐거움과 보람들로 부부는 매주 금요일 오후를 기다리고 있다.  
99년 11월부터 부부는 사랑의 전화에서 운영하는 '사랑의 전화 게스트 하우스'라는 노숙자 쉼터를 관리하고 있다. 거기서 이들은 노숙자의 어머니, 아버지로써 또 하나의 사랑을 키우고 있다. 그들이 사랑의 전화에서 배운 것들은 이 곳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된다. 부부는 노숙자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면서 그들과 더불어 쉼터를 가꾸고 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상담을 계속할 것입니다.  이 일이 육체적으로 큰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니잖아요. 오직 말만 할 수 있으면 가능하죠." 부부는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편안한 말벗이 되고 싶다고 소망한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부부의 모습은 어느 부부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김혜민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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