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정 편집장

최근 한 신문사 기자가 낸 책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몇몇 신문사들이 책의 내용을 인용해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임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일보 작살 내겠다"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나간 뒤 정치권은 문책과 변명으로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책의 저자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신문사들의 왜곡보도에 대한 정정보도 중재 신청서를 냈습니다.

독특하게도 문제를 일으킨 기사들은 아무런 취재 없이 발췌와 인용만으로 쓰여졌습니다. 서평도 아닌데 말입니다. 마치 앵무새처럼 정치인 혹은 일반의 말을 들은 그대로 인용하거나 보충취재 없이 지면으로 옮기는 '받아쓰기식' 보도는 우리 언론의 문제입니다. 이번 사건뿐만이 아닙니다.

신문 속 세상에 비춰진 10월은 의혹과 폭로, 비리로 얼룩진 한 달이었습니다. ○○게이트로 불리는 의혹들과 노량진수산시장 입찰비리 의혹, 전 건설교통부 장관 축재 및 동생 특혜 의혹 등 재·보궐 선거전에 불거져 나왔던 사건들만 해도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대통령 장남의 제주도 휴가여행을 둘러싼 여야간 공방도 있었습니다. 여야의 이러한 폭로·고발·비방전은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에게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실망스러웠던 것은 이러한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입니다. 10월 25일 선거전까지 '~라고 말했다', '~라 밝혔다'는 식의 인용보도들이 지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여야의 공방전에 대한 배경 설명이나 기사를 위한 추가 취재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힘들었습니다. '~라는 분석이다', '~라는 분석이 나왔다'는 내용의 기사들도 분석의 주체와 근거를 밝히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확한 근거와 취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신문의 역할은 목소리 큰 정치인들의 의견을 싣는데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재·보궐 선거 이후에는 언론이 그토록 지면을 할애해가며 쏟아내던 정치계의 비리관련 기사들이 신기할 정도로 깨끗이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여전히 독자들에게 최소한의 판단 근거도 마련해 주지 못한 채 말입니다. 선거 이후 나온 정치 관련기사들도 여야의 반응만을 다루기 바빴지 왜 그러한 선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해설기사는 드물었습니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한 중견기자는 "신문의 냄비근성과 기자들의 안일한 정신 때문이다"며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물론 현직 기자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론과 현실이 다르듯 기자들도 배운 대로 기사를 쓸 수 없음을 안타까워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정치나 선거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취재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을 것입니다.

DEW도 취재원이 허락하지 않아 좋은 멘트를 얻고서도 기사에 인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경험합니다. 그럴 때마다 취재원에게 기사의 방향과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옳다고 생각하는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확한 취재에 바탕을 둔 사실보도와 진실을 밝히려는 기자의 근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올 11월에는 우리 모두 진실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