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최선열 교수

얼마전 어떤 결혼식에 가서 주례의 천박함에 크게 분노한 적이 있다. 주례를 선 분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거물 정치인이었는데 결혼식이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자리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주례는 두 젊은이의 결혼에 대한 축하와 덕담은 제쳐놓고 양가 부모들이 세속적으로 얼마나 성공한 기업인들인가 미주알 고주알 다 늘어놓고 과분한 칭찬을 하면서 그들과 자신이 얼마나 절친한 관계인가를 강조하였다. 그런 성공한 가문간의 중요한 혼사에 자신이 주례로 참여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면서 감격해 하는 그는 그의 화려한 공직생활에 걸 맞는 자존심마저 없는 듯 했다.

도대체 어떤 대가가 있기에 저렇게 굴욕적인 자세로 주례를 서는 것일까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해맑은 신부와 신랑의 미소가 역겨운 주례사에 대한 분노를 다소 진정시켜주었으나, 그 날의 결혼식은 이 속물 정치인으로 말미암아 속된 결혼식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하객들 중에는 결혼식은 안중에 없고  이 정치인과 눈을 맞추기 위해  밖에서 계속 서성대다가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우르르 그에게 몰려가는 속물들도 많았다. 이런 한심한 광경에 혀를 차는 사람들이 나 혼자는 아니었다. 
나는 이 정도의 수준 낮은 사람이 최고위 공직에 있었다는 사실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수치와 분노를 느꼈다. 가장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부끄러움도 없이 어떻게 자신의 속물 근성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남의 신성한 결혼식을 더럽힌단 말인가. 

이런 속물 결혼 주례가 어디 이 사람뿐이겠는가.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약방의 감초처럼 참석하여 식의 주인공이나 참석자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원맨쇼나 집단 쇼를 벌이면서 식의 본질을 훼손하고 가는 것을 우리는 적지 않게 보아 왔다. 이처럼 주객이 전도되어 의미가 실종되어버린 허례 허식이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속물 정치인들이나 고위 관료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여기 저기 얼굴을 팔고 다니는 정치인들이 많아 공급에 전혀 차질이 없는 것 또한 문제이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자들이 연출한 의례에는 너무 많은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나타나서 이들에 대한 예우에 주최측이 애를 먹기도 한다. 어떤 때는 귀하신 분들의 바쁜 스케줄 때문에 식이 돌연 지체되기도 하고, 식의 순서가 순리에 맞지 않게 뒤바뀌기도 한다. 그들이 보낸 장승같은 화환들이 식장을 압도하는 것도 못마땅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껍데기 축사를 듣는 것은 고역중의 고역이다. 그들은 자신이 쓰지 않고 비서나 보좌관이 쓴 형식적인 축사를 읽기 마련인데, 가끔 제대로 잘 읽어내지도 못하는 불성실한 명사들에게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남이 써준 원고라도 한번쯤 읽고라도 오는 성의는 보여줘야 하지 않는가. 이런 관객모독에 점점 무감해지는 우리 자신들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신문기사에는 참석한 귀빈들의 명단이 줄줄이 나오고 일렬로 늘어서서 포즈를 취한 그들의 사진이 지면을 장식하는 것이 언론의 관행처럼 되었다. 이런 일상적인  권력의 횡포에 언론도 길들여져 있고 국민들도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어느 일간지에 실린 경복궁 홍례문 낙성식에 관한 "기자수첩"을 보고 나 또한 기자처럼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현판 제막식에서 촌스런 흰 장갑을 끼고 줄을 당긴 사람들은 예상대로 관련부처 장관, 국회위원들, 청와대 고위층, 지방자치 단체장들, 그리고 문화재관련 부서장들이었다고 한다. 지난 6년 동안 고 건축물 복원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낸 목수들에게는 초청장조차도 발송되지 않았으며 총책인 도편수조차도 단상에 놓인 귀빈용 의자에 앉지 못했다는 사실에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관료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문화행정을 제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각종 행사마다 빠짐없이 얼굴을 내미는 정치인들이나 고위 관료들에 밀려 정작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할 사람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직무와 무관한 행사에 관료와 정치인들이 과다하게 참석하는 것을 약방의 감초라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는게 내 생각이다. 공적활동에 할애해야할 귀중한 시간에 공무와 관련 없는 일들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정녕 그들은 할 일을 제대로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들어 시민단체들은 지방자치 단체장들의 판공비나 국회의원들의 활동경비와 같은 돈 문제에 관심을 보여왔다. 그러나 그들이 공적 활동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아직 심각하게 제기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공직자들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오히려 돈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진정한 공복으로 맡은 일에 충실하다면 당연히 일에 파묻혀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공적 행사는 물론이고 사사로운 결혼식 주례까지 마다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아닌가. 

관료나 정치인들의 생활시간을 조사해보면 그들이 귀중한 시간을 업무와 관련되지 않는 일에 허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물론 그들의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거나 공무원으로서 부름을 받은 이상 그들의 시간관리에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들이나 우리나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빠듯하게 사는데 결혼식장, 영안실, 각종 기념식, 회식에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면서 어떻게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들이 어떤 시테크 전략을 쓰는지 우리는 알고 싶은 것이다.

얼마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미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소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입법활동과 민원업무에 매달리며 사생활을 희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가정생활을 중요시하는 현역 국회의원들 중에는 출마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는 것이다. 언제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격무로 가정생황을 충실하게 할 수 없어 정치를 떠나겠다는 멋진 선언을 하게될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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