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지금 기말고사를 맞아 분주하다. 중학교 1학년 아이를 자정까지 학원에서 자습 시키고,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걱정되어 11시 40분에 깜짝 방문하는 학부모.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할까봐 어머니들은 당사자인 학생보다 더 불안해한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바로 영어회화 실력 향상과 다음 학기 예습을 위한 방학 스케줄로 돌입해야 하기 때문에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간다. Possessive mother, ‘소유욕 강한 어머니’들이다.

▲ 클림트, <여자의 세 시기> 중 부분
‘소유욕 강한 어머니’는 자식을 독립된 인간으로 인식하기보다 소유물로 여기고 과잉보호하고 일일이 간섭하는 어머니를 말한다. 자신의 자아를 자식에게 투사하고, 자식의 삶을 대신 살려 하는 것. 자녀의 삶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 오히려 어머니 자신의 삶이 독립성을 잃기도 한다. 이 용어는 심리학의 학문적 탐구 대상으로 쓰인다. 곧 ‘치맛바람’은 일부 엄마들의 유별난 행동이 아니라 인간 행위의 일부로 분류될 정도로 빈번한 활동이라는 거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소유욕 강한 부모의 실례다. 그는 자신이 못다 이룬 궁정 음악가로서의 사회적 성공을 아들이 대신 이뤄주길 간절히 바랬다. 다행히도 어린 아들은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음악적으로 훈련시키고, 아들을 입신시켜줄 스폰서를 찾기 위해 세계 각국의 부호들을 찾아 여행을 다닌다. 그러나 재산을 여행비용으로 다 날릴 때까지 아들은 상류 사회의 사교계 인사로 거듭나지 못하고 부자간에는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모차르트 연구자들은 아버지가 바라는 형태의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모차르트가 초라한 죽음을 맞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인류가 낳은 최고의 작곡가는 평생 동안 아버지의 소유욕과 집착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버지에 의존한 것이다.

슈퍼 부모가 되기까지, 그 고된 여정

한국의 부모들 중에선 모차르트의 아버지와 같은 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얼마 전부터 매니저형 엄마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쓰이고 있다. 매니저형 엄마는 아이의 학원 시간표를 빡빡하게 짜고 일일이 차로 데려다 주고 끝날 시간을 기다려 다시 집으로 데리러 오는 엄마들을 말한다. 좋은 학원 선생님과 우수한 스터디그룹을 구하기 위해 빠른 정보력은 필수. 시간이 부족해 부득이 이렇게 하지 못하는 엄마들의 상당수도 매니저형 엄마의 교육 방법을 선호한다.

그런가 하면 자식이 보다 나은 외국의 환경에서 교육받길 바라며 가족이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것을 감수하는 기러기 아빠들도 있다. 이민자들 중에는 생업을 뒤로 하고 비용 부담이 큰 자녀의 골프 교육에 전념하는 아버지인 ‘골프 대디’도 있다. 세계무대에서 선전하는 우리나라 여성 골프 선수들 가운데 이런 골프 대디의 뒷바라지를 받고 성장한 경우가 많다. 과연 자녀에게는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 걸까?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삶을 일정 부분 희생하며 자식 교육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헌신과 희생이 계속되면 자녀에겐 크고 작은 규모의 심적 부담만이 늘게 된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예일대 로스쿨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고홍주 씨의 어머니 전혜성 박사의 교육관은 다르다. 일차적으로는 자녀에게 목적의식과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아이가 따를 수 있는 본을 보이는 데 주력했다. 할 일을 하나하나 정해주는 게 아니라 알아서 하게 만든 것이다. 고홍주 씨를 비롯한 6남매는 모두 미국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사실 일곱여덟 명의 자매를 갖던 윗세대는 수 명의 자녀에게 매니저가 되어 줄 수 없었지만 자식들은 알아서 훌륭히 컸다. 오히려 부모의 철저한 관리 하에 있는 지금의 학생들은 학력 저하와 사고의 획일화 문제를 지적받는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

소유욕 강한 부모의 자식이 모두 모차르트와 같이 인생을 파국으로 끝맺지는 않는다. 어릴 적부터 경쟁적으로 엄마 따라 학원 돌아다니기에 바쁜 강남 학생들의 다수가 명문대에 합격한다. 그러나 즉각적인 성과가 좋다고 해서 그들이 받는 부정적인 영향이 적은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해주려 하면, 자녀는 경제적 부분이든 정서적 부분이든 어느 한 면모는 유약한 모습으로 퇴보하게 된다. 자녀가 언젠가 다 자라서 부모 곁을 떠나 자립해서 살아가야 할 시기에 부모의 기대와 베풂이 부담 혹은 영원한 ‘비빌 언덕’으로 남는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결과이다. 신용 불량자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는 젊은 세대의 미성숙함의 연원을 부모의 과잉보호에서 찾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어른이 되지 못하는 어른이 많다.

어머니의 자식을 위한 노고는 감사한 일이고, 평생 갚아도 모자란 은혜다. 그러나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학원 스케줄을 짜는 데만 몰두하는 것은 맹모삼천지교와는 거리가 있다. 남들이 다 하는 건데, 하는 말은 정말 위험하다. 엄마 혼자 애쓰는 일은 그만두자. 부모의 욕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부모와 자녀의 독립성이 함께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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