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진 중절모, 헐렁한 바지, 큼직한 구두, 지팡이, 그리고 특이한 걸음걸이로 유명한 찰리 채플린. 그는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고 그 중 70여 편에서는 직접 감독과 제작, 주연 음악 등을 겸하는 등 천부적인 재능을 선보이며 미국 무성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채플린과 함께 거론되는 또 한명의 무성 영화 시대의 거장, 버스터 키튼. 액션 코미디로 유명한 그는 아크로바틱 액션*과 소란스런 슬랩스틱 코미디*의 대부이며 얼마 전 액션 판타지 ‘짝패’를 선보이며 리얼리즘을 깨버린 류승완의 영화세계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의 작품세계를 자세히 알아보았다.

작품의 큰 줄기가 오락적 요소와 사회 풍자적 요소로 나뉘는데

▲ <제너럴>에서의 버스터 키튼
키튼: 채플린이 왜 그렇게 사회적인 문제를 영화에 끌어들였는지 모르겠어요. 영화는 오락입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하죠. 나의 대표적인 작품인 <장군>,<항해자>, 스팀보트 빌 주니어>는 별 볼일 없는 한 젊은이가 용기와 기지를 발휘해 마침내 사랑하는 여자를 얻는다는 단순한 내용이죠. 대신 신기한 볼거리를 채워 넣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예를 들면 <스팀보트 빌 주니어>에서 푹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돌연히 집이 무너지는 순간 내가 창으로 무사히 빠져 나오는 장면등이 있겠네요. 이런 놀랄만한 아크로바틱 액션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죠.
채플린: 영화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커요. 나는 사람들이 내 영화를 통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랬습니다. <도시의 불빛>에는 술에 취하면 채플린을 친구로 대하지만 술만 깨면 도둑으로 오인하는 백만장자가 등장하죠. 사람들은 그 백만장자와 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웃는 동시에 위선에 얽매인 사람의 모습에서 사회의 모순을 느끼게 되요. 영화를 통해서 시대의 변화를 포착하고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도 가능해요. <모던 타임스>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이 되던 당시 미국 사회의 불안과 근심을 반영한 영화였습니다. 키튼의 영화는 거의 사랑하는 여인에게 구애하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였죠. 몇가지 간단한 줄거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부족했지요. 그래서 키튼은 1930년 유성영화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어려움을 겪었잖아요? 유성영화 시대에는 기승전결이 확실한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중요했으니까요.
키튼: 그걸 스토리 문제로만 한정 시킬 수는 없어요. 내 경우에는 목소리가 문제였다고 봐요. 무성영화에서 보여준 캐릭터에 비해 실제 목소리가 너무나 저음이었고, 종종 갈라져 쇳소리가 나기도 했거든요. 이런 목소리는 영화를 망쳤고 사람들이 내 영화를 멀리하기 시작한거죠. 채플린도 1931년 <모던타임스>를 시작으로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지 않았나요? 특히 <위대한 독재자>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예술가는 공산주의자이고 도덕이 없다”라는 욕을 먹기도 했잖아요. 물론 그의 작품은 히틀러와 파시즘을 세계 인류의 적으로 표현했지만요. 대중들은 그가 공산주의자를 옹호한다고 오해했습니다.
채플린: 나도 그 점을 아쉽게 생각해요. 나는 평화적인 관점에서 독재자와 희생자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데요. 물론 독일의 집단 수용소에서 벌어질 끔찍한 일들을 알았더라면, <위대한 독재자>라는 영화를 만들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살인광 시대>에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범죄성을 다루어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의 거센 공격을 피할 수 없었죠.

‘키튼은 위대한 감독, 채플린은 위대한 배우’ 라고 평해지는데

키튼: 사람들이 곧잘 나와 채플린을 그렇게 평가하더군요. 나와 채플린은 감독이자

▲ <모던타임스>에서의 찰리채플린
배우로서의 역할을 했지만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긴 합니다. 나는 단순한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연출된 장면 효과로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 내려 했어요. <제너럴>에서 추격전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내가 기관차에 탑재된 대포에 불을 붙여 적의 기관차를 겨냥하는데 이 순간 대포의 포신이 갑자기 주저앉아 오히려 내가 있는 기차를 겨냥하죠. 포탄이 발사되기 직전에 기관차는 커브에 접어들고, 수평으로 발사된 포탄은 정확하게 직선으로 날아가 적이 탄 기관차에 명중합니다. 다른 방향에서 내 의도를 따라오게 오게 하는 이러한 방식으로 웃음을 만들었습니다.
채플린: 나는 그런 연출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오히려 전적으로  개인의 슬랩스틱과 몸에서 웃음을 느낍니다. 관객들은 얻어 입은 것 마냥 꼭 끼는 낡은 상의와 헐렁한 바지를 입은 한 남자가 뒤뚱거리며 날아가는 모자를 잡기 위해 애쓰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웃습니다. 또 몸짓과 표정을 통해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슬픈 표정을 지으면 관객들이 내 안에서 슬픔을 보고, 또 자기의 슬픔을 찾아내거든요. 슬픔뿐 아니라 즐거움, 놀라움, 걱정, 그 어떤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키튼은 너무 표정이 없는 것 같아요. 얼마나 무표정이면 'Great Stone Face' 라는 별명을 얻었겠어요.
키튼: 나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 다섯 살 때부터 보드빌 쇼의 일원으로 있었죠. 그 거친 세계에서 일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유지할수록 웃음은 촉발된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무표정은 나의 아크로바틱 액션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고요.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베르그송이라는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기계적 배열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행동과 사건의 배치는 모두 희극적이다”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제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작품 <라임라이트>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출연는데

채플린: <라임라이트>는 내가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한 작품이에요. 내가 키튼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했죠. 나는 칼베로라는, 과거에 인기 있었지만 지금은 은퇴한 뮤직홀 코미디언을 연기했어요. 칼베로란 인물은 <위대한 독재자>에 이어<살인광 시대>이후로 대중과 미국정부로부터 외면당하게 된 내 모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요. 키튼도 유성영화 시대에 들어선 이후 단역에만 출연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키튼: 채플린의 제의를 받고 퇴락한 광대이야기에 전성기가 지난 저를 등장시키는 것이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전성기가 지나버린 나와 채플린이 마지막 무대에서 혼신을 다해 익살극을 펼치는 장면은 잊지 못할 거예요. 정말 이게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면서 했거든요.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관객들의 환호와 갈채를 받을 땐 옛 생각이 났어요. 아참, 이 영화에서는 떠돌이 분장을 하지 않은 채플린이 나오는데 아마 다들 깜짝 놀라셨을 겁니다.
채플린: 내가 그렇게 달라 보였나요? 이 영화는 인간 찰리 스펜서 채플린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였기 때문에 맨 얼굴로 임했어요. 관객들이 영화가 시작한 한참 뒤에도 나를 못 알아봤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영원히 라임라이트에 비춰질 두 거장

영화 속 채플린과 키튼은  젊고 재능 있는 발레리나 테리에게 라임라이트, 즉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한다. 그들이 후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넘긴지도 50여년이 지났다. 이제 키튼과 채플린이 직접 감독, 출연한 작품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명세 감독의 <형사>와 <개그맨>,주성치 작품의 <쿵푸 허슬>,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 등 여러 영화 속에서 여전히 채플린과 키튼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을 비추는 라임라이트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 곡예에 가까운 액션연기
* 액션을 과장한 우스꽝스러운 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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