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전통문화는 현대인에게 낯선 존재가 되어버렸다. 왠지 고리타분할 것이란 편견마저 생긴 듯 하다. 하지만 ‘우리 것이 좋은 것’이란 말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국악과 인형극이 만난 국악인형극이다.

국악과 인형극의 만남

지난 2004년 12월, 경기도 국악당은 <삼년고개>라는 국악인형극을 선보였다. <삼년고개>는 한번 넘어지면 3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고개에 관한 전래 동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드라마 <허준>의 OST를 작곡한 것으로 유명한 경기도립국악단의 김영동 예술 감독이 음악을 담당했다. 경기도 내 150 곳의 유치원을 비롯해 가족 단위의 관객까지 총 13000여 명을 동원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 인기를 끈 이유에 대해 경기도 국악당 마케팅 담당 김기현 씨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국악인형극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1월에는 포천반월아트홀에서 국악동호회 ‘청률’의 <도깨비와 혹부리 영감>이 공연됐다. 총 2회 공연에 관객 1700명을 동원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뮤지컬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판소리를 통해 대사를 전달했다. 무대에 가야금, 해금 등을 연주하는 국악단이 등장했다. 관객들은 국악 연주도 함께 관람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2006년 전국문예회관 연합회가 주최한 전국망 사업공모전에서 우수 공연물로도 선정됐다. 오는 8월부터 부천 오정아트홀에서 다시 무대에 오른다. 올 하반기부터는 판소리 ‘수궁가'를 바탕으로 한 작품 <토끼와 거북이> 제작에 들어 갈 예정이다.

국악인형극의 다양한 시도

경기도 국악당은 2005년부터 ‘수요 상설 국악인형극’을 운영해 본격적으로 국악인형극을 알리기 시작했다. 첫 작품 <삼년고개>는 올해 2월까지 공연됐다. 지난 5월부터 두 번째 작품으로 <부리부리 혹부리>가 무대에 올랐다. 막대인형으로 등장인물들의 생동감 있는 동작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부분적으로 막대인형대신 탈 인형을 사용했다. 관객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다.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서 즉석에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관객들은 이에 즉시 반응한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국악 현악기와 관악기의 합주가 나온다. 북 소리와 함께 전통 민요가 나오기도 한다. 민요는 한번만 들어도 따라 부르기 쉬운 선율로 만들어졌다. 공연이 끝날 때에는 혹부리 형제의 화해를 담은 가사의 민요에 모두 손뼉을 치며 장단을 맞췄다.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한 주부 이연미(35)씨는 “매 장면마다 흘러나오는 국악 선율과 전통 민요 덕분에 분위기가 더 활기찼다”며 “앞으로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알리는 공연이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12월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지난 5월, 국립국악원에서는 어린이날 특별 공연으로 발해를 구한 홍라녀 전설을 바탕으로 한 <발해공주>를 무대에 올렸다. 원래 홍라녀 전설은 발해의 공주 홍라녀와 백의장군 이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이번 작품에서는 장군 대신 어부와 사랑에 빠진 공주를 그려냈다. 국악인형극에 상상력까지 더해져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독특한 점은 발해의 역사를 다룬다는 것이다. 외세에 맞서며 북방 대륙을 지배한 발해인의 기상을 보여준다. 아이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발해의 역사를 인형극을 통해 쉽게 알려준다. 퉁소, 요고 등의 전통악기 소리가 역사 이야기와 잘 어우러진다. 다른 인형극과는 달리 인형도 한지로 직접 제작해 발해의 전통의상을 잘 표현했다. <발해공주>는 오는 9월부터 국립국악원에서 상설공연 될 예정이라 한다.

우리 정서에 맞는 전통 문화

<삼년고개>와 <발해공주>를 공연한 인형극단 ‘시소’ 대표 이은미 씨는 “요즘 아이들은 국적불명의 인형과 컴퓨터 게임에 빠져 우리 고유의 정서와 동심을 잃어가고 있다”며 현재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국악인형극에서 사용한 인형은 우리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 ‘시소’에서 직접 만든 것이다. 국악에 이런 인형을 접목해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알려주고자 했다. 이은미 씨는 “인형극은 아이들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예술”이기에 우리 정서를 알리기에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공연이 끝난 후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던 많은 관객들을 보며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어요.” 이은미 씨는 국악인형극에 참여한 것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서구의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 국악인형극은 잊고 있던 우리 문화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 동안 잘 듣지 않았던 국악의 선율이 생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익숙한 이야기와 흥겨운 민속악기의 소리에 빠져들 것이다. 전통 문화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트리는 국악인형극. 이 같은 작품들이 앞으로도 꾸준히 무대에 올려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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