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좀 더 크게 틀어봐” TV에서 흥미로운 대사가 나오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TV의 볼륨을 높인다. 하지만 아무리 볼륨을 키워도 청각장애인들에게 자막 없는 TV방송은 흥미롭기는커녕 그 어떤 메시지조차 전달해주지 못한다. 자막방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급속도로 발전하는 TV방송 기술들은 무의미하다.

그들에겐 반쪽짜리 방송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처음으로 자막방송을 실시했다. 현재 자막방송의 비율은 전체 방송 중 평균 50% 정도다. 자막방송을 처음 시작한 99년의 11%보다 크게 늘어났지만 청각 장애인에게 일반인과 같은 TV시청권을 보장하기엔 부족한 양이다.

자막방송의 질적 향상이 그 양적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드라마, 교양보도에만 자막방송이 집중되어있고, 긴급 속보 등에는 자막 지원이 부족하다. 또한 외국처럼 TV생산 시 자막수신기 장착이 의무화되어있지 않아 청각장애인들은 방송사가 내보내는 자막을 보려면 20만원에 달하는 자막수신기를 별도로 구입해야 한다. 한국 농아인 협회 방송정보과 하운석 팀장은 “한 기업체에서만 수신기 장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원가 사정 때문에 기업에서도 수신기 제공을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소리도 ‘보여’줍시다

세상을 향한 창이라는 TV. 그동안 청각장애인들에게는 굳게 닫혀있었던 TV가 변하고 있다. 2000년부터 통합 방송법이 새로 개정됨에 따라 방송위원회는 ‘시청자권익 보호 사업’을 벌였다. 그 일환으로 자막방송 수신기 보급 사업을 한국 농아인 협회를 통해 지원했고, 청각장애학생들을 위한 EBS 수능방송의 자막 비디오 보급 또한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올해까지 1만 9천 대의 자막수신기를 무료로 청각장애인들에게 제공할 예정입니다. ‘EBS 수능방송 자막 비디오 보급’또한 일반인보다 고교 및 대학 입시가 힘들 청각장애인을 생각한 사업이죠.” 방송위원회 시청자지원팀 선임조사원 이기선 씨의 말이다.

방송위원회가 올해는 자막방송의 편성 확대를 위해 ‘장애인을 위한 방송프로그램 제작비 지원 사업’을 벌인다. 방송 프로그램에 자막과 수화 및 화면해설을 추가하는데 드는 비용을 지원하는 것. 이기선 씨는 “KBS, MBC, SBS, EBS 등 주요 방송사들이 제작비 지원을 신청한 상황”이라며 청장애인들을 위한 자막방송은 물론이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화면해설 또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용자의 시청권을 챙기는 방송 자체의 노력으로 청각장애인들은 물론 시각장애인들 또한 방송 접근권을 보장받게 됐다.

수용자 측에서도 청각장애인들의 방송 접근권 확대를 위한 자발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설립된 ‘자막방송 지원센터’가 그 예다. 한국 농아인 협회의 소속 기관인 자막방송 지원센터는 방송사들에 자막을 지원하는 방송사 자막송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디지털영상 속기교육 프로그램은 지체장애인을 중심으로 속기사를 모집해 장애인의 참여 또한 고려하고 있다. 이 외에도 자막속기 지원 프로그램으로 오프라인 세미나와 각종 행사에서도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자막을 제공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운석 씨는 자막방송 지원센터에 대해 “언제든 TV를 켜면 자막방송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청각장애인들에게도 접근 용이하려면

자막방송의 양적 및 질적 발전을 위한 노력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아직도 많다. “수요자가 많지 않다보니 기술적인 면을 맡아줄 기업체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일반인들이 청각장애인과 함께 TV를 시청할 때 자막 때문에 불편할 수 있는 점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요.” 하운석 씨의 말이다. 이기선 씨는 앞으로 자막방송의 지속적, 안정적 확대를 위해 방송위원회가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공하는 선에서만 그치지 않고 관리와 수요 및 만족도 조사를 통해 정확한 피드백을 얻고 개선점을 찾아나가야죠.” TV가 손 안에도 쥐어지는 시대. 청각장애인들에게도 방송이 눈 안에 완전히 담아지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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