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내륙에 위치한 짐바브웨. 이곳에서는 한 번 장을 보려면 돈으로 가득 찬 가방 여러 개가 필요하다. 계산대 위에는 지폐뭉치가 넘치고 주인은 이를 세느라 정신이 없다. 거리 곳곳에는 돈세는 기계 광고가 가득하다. 여기서는 화장실에서 쓸 휴지를 사느니 차라리 돈으로 뒤처리를 하는 것이 낫다.

최근 짐바브웨의 물가상승률이 1000%를 넘어서면서 세계의 언론에 등장하고 있는 이야기다. 모든 국민이 백만장자면서도 빵 한 조각 사먹을 수 없는 나라. 이 초현실적인 인플레이션의 중심에는 로버트 무가베(1924~) 대통령이 있다. 아프리카의 최장기집권자로 짐바브웨를 통치해온 무가베는 이 나라의 역사를 써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민지, 그보다 더한 인종차별로 부터의 독립

 

짐바브웨는 비교적 아프리카에서 잘 사는 나라 중에 하나였다. 나라 곳곳에 각종 광물이 풍부했고 이를 통해 1885년경부터 영국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짐바브웨가 영국에게 광업권을 부여한 대신 영국은 연금과 무기를 대주면서 포르투갈 세력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 짐바브웨는 1891년 정식으로 영국보호령에 들어갔다. 그 후 1901년 보호령이 해체되고 1923년에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독립을 위해 ZAPU(짐바브웨 아프리카 인민동맹)나 ZANU(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가 출현하였으나 이들 민족단체는 서로 날카롭게 대립한다. 이언 스미스는 이 틈을 타 자신이 주도하는 백인정권의 일방적인 독립을 선언했다.

 

스미스 정권이 집권하는 10년 동안 흑인 해방운동 단체는 협상으로 흑인의 다수 지배를 이끌어내자는 온건파와 흑인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급진파로 양분됐다. 후자는 국외에 거점을 두고 게릴라전을 전개했는데 동조하는 인원이 많아지면서 세력이 커졌다. 이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흑인세력의 확장과 함께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자 스미스 정권은 흑백공동내각을 구성했다. 1979년엔 흑인의 단원수를 더 많이 인정하는 새 헌법에 기초해 총선거가 이루어졌다. 이 선거에서 무조레와가 새 총리로 취임했고 전 총리 스미스는 무임소장관*이 되었다.

하지만 급진파인 ZAPU와 ZANU가 연합한 애국전선이 총선거를 인정하지 않고 게릴라 활동으로 반정부투쟁을 계속했다. 1980년 2월 다시 실시된 총선에서 로버트 무가베가 이끄는 게릴라 단체인 ZANUIPF(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가 전체 의석 100석 가운데 57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들의 중심인물인 카나안 바나나가 국가 원수인 대통령에, 총리에 무가베가 취임함으로써 비로소 영국으로부터 정식으로 독립한다.

보복이 가져온 또 다른 비극

초기 무가베 정권은 마오쩌둥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교육기회 확대와 토지 재분배 등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게릴라 혁명에 뛰어들기 전 20년간 흑인 계몽운동에 힘썼던 무가베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초등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는 등 교육면에서의 개혁은 성과를 거두며 인정을 받았다. 80년 총리로 취임한 이후 87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3선, 4선에 성공하였다. 이때부터 그의 정책 방향은 전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가베 대통령은 백인 식민주의자들이 짐바브웨 영토를 강탈한 만큼 무상으로 그들에게 빼앗긴 땅을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취해왔다. 이에 맞춰 1992년 정부가 백인 농장을 인수하는 권한을 갖도록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짐바브웨 의회는 2000년 5월 백인 소유의 토지를 정부가 특별한 보상 없이 몰수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법안이 시행된 이후 정부는 백인 소유 상업농장들을 강제 몰수했다. 무가베는 이에 저항하는 백인들을 가차 없이 처형했다. 강제 몰수한 토지들은 흑인들이 아닌 측근들에게 돌아갔으며 효율적인 농장 경영이 불가능해져 생산량은 급격히 감소했다. 수출이 줄어들고 외국의 투자가 끊기면서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올해 짐바브웨의 공식적인 물가상승률은 1193%이다.

독립영웅에서 세계의 독재자로

현재 짐바브웨가 처해 있는 경제 상황은 마치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대공황에 시달렸던 독일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에 대해 무가베 대통령이 내놓은 해결책은 물가상승을 더욱 치솟게 만들 60조의 돈을 더 찍어내겠다는 말 뿐이다. 전문가들은 짐바브웨의 물가가 1800%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한 그는 폭력배들을 사주하여 그에게 반대하는 야당과 언론을 협박, 살해했다. 흑인을 위한 정치를 내세웠던 무가베는 이제 국민들이 처한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식민지의 독립을 이뤄낸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던 그는 결국 민족의 독재자로 낙인찍혔다.

무가베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도 나올 예정이다. 여론 조사에서는 무가베의 패배가 확실하다. 하지만 2001년 백인 토지 몰수법의 찬반에 대한 국민투표가 거부된 이후로 무가베의 국민에 대한 감시는 끊이지 않았다. 폭력과 협박이 난무하는 공포분위기 속에서 과연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의사가 자유롭게 반영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짐바브웨 국민들은 조국의 나아가 아프리카 전체의 자유를 위해 과거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독재자를 심판 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자신들에게 있음을 국민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임소장관 : 정무장관이라고도 함. 원(院) ·부(部) ·처(處)의 장관이 아닌 국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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