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완서 맏딸 호원숙씨 첫 수필집 출간

엄마의 능력이 너무 뛰어나면 자녀가 크게 자라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호원숙 씨는 “박완서라는 큰 나무는 그늘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어머니라는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는 동안 제 키가 커졌어요”라고 말한다.

소설가 박완서 씨의 맏딸 호원숙(52)씨가 50대의 나이에 첫 수필집,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자랐다>를 출간했다. 1992년 <박완서 문학앨범>에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이란 글을 ‘박완서의 딸’ 로서 쓴지 14년 만이다. 아침마다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한다는 관악산 자락의 서울대 교정에서 그녀의 새 책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50대, 첫 책을 내다

“처음부터 책을 출간하려고 수필을 쓴 건 아니었어요.” 호 씨의 출판은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다. “동창회 사이트에 올렸던 수필의 반응이 좋아서 책으로 까지 나오게 됐죠.” 그녀가 2003년부터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에 올린 수필들은 입소문을 타며 100회를 넘겼다. 책을 내보는 게 어떠냐는 주변의 권유에 결국 수필집까지 발간하게 되었다. 이해인 수녀는 “사소한 것들 까지도 사색의 깊은 우물에 넣어 감칠맛 나는 언어로 건져 올리는 호원숙의 인생관은 아름답고 긍정적이며, 수수하고 지혜롭다”고 평했다.

<큰 나무..>수필집의 주제는 크게 아침 산책, 미술관 순례, 어머니, 50대의 자신으로 나뉜다. 수필집에는 유독 그림에 관한 글이 많다. 원래 그림, 유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현재 경운 박물관에서 운영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규장각을 보며, 미술 작품을 보며 느꼈던 떨리는 감정들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어요.” 그녀는 50대의 나이를  ‘꿈꾸는 시간’ 이라 표현한다. “전 꿈이 많은 사람이예요. 아직도 이렇게 하고 싶다,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꿈을 꾸죠.” 그녀의 꿈은 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성취는 아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녀의 꿈은 영혼을 고양 시키고 싶다는 것이기에 진솔하게 느껴진다.

 ‘호원숙’의 이름을 건 첫 수필집이지만 그녀의 인생에는 언제나 문학이 있었다. “어머니는 36년동안 글을 쓰셨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등단 하셨으니까 삶의 80%는 문학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셈이죠.”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국어선생님, 잡지기자를 거쳐 전업 주부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문학은 항상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언제나 문학에 대한 갈증이 있었죠. 글쓰기를 외면하는 것은 저에게 정직하지 못한 행위였어요.” 그녀는 “결국 이 한권의 책은 제 생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어머니, 박완서

박완서 씨는 언제나 그녀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다. 호 씨에게 어머니는 소설가가 되기 이전에도 ‘남들과는 다른 분’이었다. “언제나 어머니가 다른 곳으로 가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녀는 어머니의 데뷔작 <나목>을 읽었던 날의 충격과 서운함을 잊지 못한다. 가족의 따뜻했던 어머니가 다른 존재가 돼버린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 이를 ‘어머니가 자신만의 세계로 날아가 버려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서운함에 마음이 저려 와 밥도 물도 먹을 수 없는 시간이 있었다’고 표현했다.

어머니가 <나목>으로 등단하고 명성을 얻은 이후에도 호 씨는 박완서 씨의 글에 큰

▲ 출처 : 조선일보 2006.4.22일자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어머니의 깊은 내면에 들어간다는 부담감에 어머니의 글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잔인하게도 박완서 씨의 글을 보고 마음 깊이 감동한 것은 가족의 전부였던 25살 남동생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다음부터였다. 그녀는 책에서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서 이겨 낸 어머니의 모습과 작품은 말할 수 없는 겸허와 존엄에 차 있어 저리도록 아름다웠다’고 고백했다. “어머니가 제 인생에 큰 스승이 이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배우는 것 보다 큰 가르침을 얻었죠.”

호원숙과 박완서는 다르다

가장 큰 스승이자 지지자인 박완서 씨는 호 씨의 수필을 “반듯하고 좋은 글이다”라고 평했다.  주변에서는 ‘그래도 박완서 글보단 못하네’ 라고 평하기도 한다. “어머니와 저의 글은 완전히 달라요. 다르기 때문에 ‘누가 더 낫다, 누가 더 못하다’라고 말할 수 없어요”라고 잘라 말했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박완서 글은 박완서 글이고 호원숙 글은 호원숙 글인 거죠. 저는 제가 쓸 수 있는 글을 쓸 뿐입니다” 라며 웃음을 지었다. 앞으로도 그녀는 그녀만이 쓸 수 있는 ‘호원숙 표’ 수필을 써나갈 것이다.

박완서의 딸이 책을 냈다는 소식에 가십거리 위주의 여성잡지 인터뷰가 쇄도한다는 호 씨. ‘어머니와 나는 개별적 존재’ 라는 그녀의 말은 박완서의 딸을 넘어 작가 호원숙으로 우뚝 선 모습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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