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이대는 동아리 뒤풀이로 진짜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요?”
이제 막 20살이 된 여자아이는 눈망울을 굴리며 정말 궁금한 듯이 묻는다. 지난 4월 주한미국대사관 주최 세미나에서 만난 다른 대학교의 언론사 1학년 수습기자가 건넨 질문이다. 기자가 속한 대학은 남녀공학이다. 잠시 당황스러워 말을 잇지 못하고 있던 순간, 옆에 있던 허영은 기자가 재치 있게 받아친다. “아이스크림 가게로 뒤풀이를 하러 가면 안 되는 건가요?” 곧바로 쏟아지는 말들. “아, 정말 그런 곳에서 뒤풀이를 하기도 하는군요.” “우리는 절대 상상할 수도 없는데......” “마감 끝나면 항상 술 마시러 가는데.” “우린 끝을 보지 아주.” 신이 난 듯 웃으며 말한다.

대학에 입학한지 채 2달도 되지 않은 여대생은 어느새 뒤풀이=술자리라는 공식을 익혀 버린 듯하다. 이 공식은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 여자친구와의 대화에서도 등장한다. 친구는 영화관련 동아리를 하고 있었다. “여대는 술 많이 안마시지? 우리 동아리는 술 무조건 잘 마셔야 해.” 너무나 당연한 듯 얘기하는 친구의 모습이 ‘우리는 너희와 많이 다르다’라고 강조하는 것만 같다.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왜 이들은 다 같이 술을 아주 잘 마셔야만 동아리의 단합이 제대로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술자리를 좋아하고 술을 잘 마시는 여자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개인적인 취향이 맞는다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어떨까? “그냥 마시게 하는데. 마시다 보면 술은 느는 거야.”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술이 느는 것도 사람 나름이지 원래 술을 잘 마시지 못하거나 술을 안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동아리 뒤풀이는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버린다.

재수를 한 나는 남녀공학 대학에 다녔었고, 당시에도 기자의 꿈을 안고 학내 언론사에 들어갔다. 그곳 역시 술자리만 생기면 마시고 뻗자는 분위기였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러 갔다. 체질적으로 술을 잘 못하는 내게 이런 자리는 고역이었다. 결국 문제가 터졌다. 신고식으로 소주를 한 컵 가득히 한 번에 다 마셔야 한단다. 나와 같이 술을 잘 못하는 내 동기는 도저히 무리라고 간청하다시피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우리 둘은 결국 한 컵의 술을 ‘원샷’하고 쓰러졌다. 그냥 안마시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조직의 분위기를 거스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0살의 여학생, 중학교 친구에게 말하고 싶은 건 허영은 기자의 말처럼 ‘왜, 아이스크림 뒤풀이’를 의아하게 생각하느냐다.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는 여대의 학생들을 이상하게 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안타깝다. 날씨가 덥거나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면 ‘아이스크림 뒤풀이’를 할 수도 있고, 시원한 맥주에 치킨이 먹고 싶으면 치킨 집에 가면 된다. 누가 이들에게 동아리 부원들끼리의 즐거운 단합을 위해서는 술자리가 최고라는 인식을 심어 준 것일까? 이들은 대학에 들어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취해서 끝을 보는 술자리’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술자리 문화가 변하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 지 오래다. 물론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술자리 뒤풀이가 잘못된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탓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간의 그 동안의 쌓였던 감정들을 털어내고 돈독한 정을 나누는 것이 뒤풀이의 목적이다. 술이 넘치는 뒤풀이는 친목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힘들게 견뎌내야 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뒤풀이가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의 뒤풀이 문화는 과연 올바른 것일까? 대학 내 동아리들에게 고한다. 뒤풀이=술자리라는 공식, 이제는 깨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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