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사랑을 받아오던 남자 투톱 영화*가 2006년, 드디어 봇물을 터뜨렸다. 올해 초 <야수>, <사생결단>을 시작으로 <짝패>, <강적>의 거친 남성들이 월드컵 시즌과 함께 찾아온다. 온 나라가 떠들썩한 월드컵 시즌은 역동적인 남자 투톱 영화의 적정기다. 올 하반기에 개봉할 <거룩한 계보>, <한반도>도의 작업도 한창이다. 유쾌 살벌한 이 ‘짝패’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마치 ‘금녀구역’이라는 메시지를 풍기는 듯한 영화 포스터들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달라졌다, 한국 투톱

홍콩 남자 투톱 영화의 마초히즘과 질척한 감상주의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선과 악의 극명한 관계에 관객들은 식상함을 느낄 뿐이다. 예전의 한국 남자 투톱 영화 중 에서도 홍콩 포맷을 가져다 쓴 작품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투톱 등장인물들은 마치 사인, 코사인 그래프처럼 선과 악의 경계선을 교묘히 오가며 대립한다. 대부분의 영화는 활동 무대가 전혀 다른 두 남자가 만나 필요에 의한 공생을 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공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면서도 필요에 의해 믿는 척, 절묘한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 영화는 그 관계를 애써 미화하려 하지 않는다. 철저한 비극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색한 해피엔딩을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야수>, <사생결단>은 남자 투톱 영화의 발전 가능성에 물꼬를 텄고 한국 느와르*라는 별칭도 얻게 됐다. 대학생 권종현(23, 여)씨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거기에 숨어있는 사람냄새가 좋다”며 남자 투톱 영화를 즐겨본다고 한다. 남자들만의 우정, 배신 그리고 폭력이 오히려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눈에 띄네, 콤비 공식

남자 투톱 영화를 살펴보면 <사생결단>의 황정민과 류승범, <강적>의 박중훈과 천정명과 같이 무게 있는 30대 배우와 폭발적인 에너지의 20대 배우의 결합이 눈에 띈다. 연기파 배우와 인기몰이 중인 스타들을 한 데 묶어 영화의 흥행과 완성도를 동시에 추구한다. 이러한 신구(新舊) 조합은 관객의 구미에도 잘 맞아떨어진다. “환상적인 배우들의 연기 조합이 보여주는 시너지 효과는 기대 이상이죠.” 고등학생 김강우(16, 남)씨는 월드컵보다 투톱 영화의 개봉이 더 기다려진단다. 권종현씨는 “멋진 남자가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메인으로 등장하잖아요, 영화마다 어떤 콤비가 잘 어울리는지 꼽아보는 것도 재밌답니다” 라고 웃으며 말한다.

투톱이 온전히 서려면

촬영장에서 연출 스텝으로 일하고 있는 김예지(24, 여)씨는 “스타성에 가려 내러티브를 잃어버리는 남자 투톱 영화가 많다”며 남자 투톱 영화는 스토리로 승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의 남자 투톱 영화는 인물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볼거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등장인물들이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제대로 언급되지 않아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어머니, 혹은 애인과 같은 이성(異姓)적 요소를 배치했으나 오히려 남자들만의 세계에 갑자기 끼어든 불협화음처럼 여기지기도 했다. 등장인물들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식지 않는 남자 투톱 영화의 열기

그래도 남자 투톱 영화는 다른 장르보다 여러 관객을 포섭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여성 관객이 대부분인 영화 시장에서 남자 투톱 영화는 놓칠 수 없는 소재다. “거칠지만 매력적인 남자들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때문인지 여성 관객들이 더 많이 찾고 있어요.” 영화관에서 스텝을 맡고 있는 조은별(21, 여)씨의 말이다. 여성 관객 뿐 아니라 남성 관객에게도 최강의 ‘짝패’들은 마주하기에 부담 없는 얘깃거리다. 양진영(23, 남)씨는 “남자끼리 영화 보는 걸 이상하게 보는 눈초리가 있는데, 남자 투톱 영화는 그런 시선에서 자유로운 편”이라 영화관에서 챙겨 본다고 한다. 관객을 흡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가진 남자 투톱 영화. 해외 블록버스터들의 돌풍으로 주춤하고 있는 한국 영화의 숨통을 트여주길 기대해본다.


*남자 투톱 영화: 아직 정확한 영화 명칭은 없음. 버디 영화의 한 종류. 버디 영화는 2명의 등장인물(성별에 관계없는)이 주축이 되는 영화다.
*느와르(noir): 불어로 "검다" 는 뜻. 필름 느와르(film noir)가 정식 용어다. 범죄와 폭력의 세계를 다룬 영화를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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