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안티!”
“기자들 무서워서 카메라 앞에 나설 수가 없네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연일 게재되는 뉴스에는 여러 사회 인사들의 기사와 함께 사진이 링크돼있다. 헤드라인을 보고 호기심에 클릭을 하면, 보기 민망할 정도의 순간 포착 사진이 시선을 끈다. 바로 ‘안티 사진’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누리꾼들의 재밋거리에서부터 시작된 안티 사진은 인터넷 뉴스뿐만 아니라 일반 신문에서까지 찾아볼 수 있게 됐다. 구독률 높은 한 일간지의 스포츠 섹션에는 월드컵 대표팀 23명의 사진이 우스꽝스럽게 실렸고, 정치 섹션에선 고위 인사들의 일그러진 표정이 연일 독자와 마주친다. 사진을 보며 웃고 나면 사진 밑에 읽어야 할 기사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기사와 사진, 그 불균형

미국에서 유학 중인 김선우씨(22, 대학생)는 한국 소식을 접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자주 이용한다. 최근 열린우리당 관련 기사를 읽었는데, “모 의원이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선거 유세하는 사진 때문에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라며 정작 기사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부 강인숙씨(48)는 “안 그래도 여론이 정치에 대해 부정적 태도인데, 그런 사진으로 인해 정치가 더 희화화되는 것 같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렇듯 ‘안티 사진’은 쟁점을 다루는 기사 내용을 가볍게 만든다.

사진을 기사보다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경우도 늘고 있다. 어느 일간지의 홈페이지에서 ID가 ‘06sh22’인 네티즌은 “기사가 독자에게 쟁점을 전달해주기보다, 선정적 사진을 설명해주는 낙서로 전락했다”는 분노 섞인 댓글을 달기도 했다. 신문사에서 인턴을 한 이소은씨(23)는 “마감에 임박했을 때 갑자기 생겨난 공란을 메우기 위한 방법으로, 눈길을 끄는 선정적이거나 민망한 사진을 선택해 기사를 쓰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기사를 쓰고 사진을 게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선택한 후에 기사를 맞춰가고 있다는 것이다.

생생한 보도 아래 무수한 안티 사진

일간지의 경우, 논조에 맞도록 인물 사진을 싣는 경향이 있다. 신문사와 비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인사나 관료들은 ‘안티 사진’ 공세에 시달린다. 순간 포착된 떨떠름한 표정이 마치 의미가 있는 양 실리곤 한다며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이미 퍼져버린 사진은 손 쓸 방법이 없다. 

의도와는 별개로 비판 과정 없이 실리는 사진도 문제다. 사진 기자들은 밀고 밀리는 취재 경쟁 속에 급하게 사진을 찍다보면 우스꽝스러운 사진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자들은 마감시간을 맞추기 위해 입수된 사진을 급히 쓸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한다. 오히려 보도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해주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취재 범위와 시간이 정해져있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선 수많은 취재진이 특정 인물에 카메라를 들이미는 아수라장 취재가 성행하고 있다. 정해진 촬영 시간이 없으니 각계 인사들은 언제, 어느 순간 포착이 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사실상 ‘안티 사진’을 예방할 수 있는 뾰족한 방도가 없는 셈이다. 취재 접근이 어려워 사진을 건지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때 통신사로부터 사진을 조달받는데, 우리나라의 영향력 있는 통신사는 연합뉴스*와 뉴시스* 뿐이다. 다양한 통신사를 갖춘 외국보다 사진의 물량이 부족하다. 삽시간에 모든 일간지, 인터넷 뉴스에 똑같은 사진이 캡션만 달리해 찍혀 나온다. 안티 사진일 경우 파장이 클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현장에서 몸싸움을 벌여가며 사진을 찍자니 사진이 엉망이고 통신사에서 받자니 일률적이다. 그렇다고 사진을 싣지 않을 순 없다. 기자들은 고민에 빠진다. 통신사 사진 기자로 있는 김 모 기자는 “취재 경쟁에 밀리다보니 한 장이라도 더 찍어야한다”며 열악한 취재 상황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자는 기사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기자는 글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글만이 그의 책임 영역은 아니다. 사진 기자에게 제공받은 사진들 중 어떤 사진을 자신의 기사에 실을 것인지 진지하게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단지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지면 상 눈길을 끌기 위해 ‘안티 사진’을 고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독자를 우롱하는 일이다. 기자는 기사와 함께 올라간 사진이 미치는 파장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인터넷을 통해 사진들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빠르게 퍼져나간다. ‘안티 사진’에 대한 대책이 하루 빨리 마련돼야 할 때다.

*뉴시스 : 2001년 9월 6일 문화관광부로부터 통신사 허가를 받아 탄생한 민영통신사.
*연합뉴스와 YTN: YTN은 설립 당시 연합뉴스 소속이었으나 97년 IMF를 맞아 별개의 사업체가 되어 현재는 통신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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