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과 몸은 무슨 관계일까. 섹스가 좋았던 남자와의 키스는 한결같이 좋다. 그는 부드럽게 혀를 굴릴 줄 알았다. 그의 혀뿌리가 내 입 속으로 차르르 감겨들었다.’

여주인공의 대사는 늘 솔직하다. 정이현의 소설 <달콤한 나의도시>는 30대 초반인, 현대 도시 여성의 이야기를 감각적이고 생생하게 다루었다. 소설은 지난해 10월 말 부터 약 6개월간 <조선일보> 지면에 등장해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2002년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현대 여성들의 발칙한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주목받기 시작한 정이현 작가는 지난해 12월 단편 <삼풍 백화점>으로 소설부분 현대문학상까지 수상하며 단숨에 한국 문학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달콤한 나의 도시

▲ 출처 : 조선닷컴
‘너무 공감이 가는 소설입니다’, ‘지루한 일상에 몇 분간의 흐뭇함을 주네요.’ 연재가 시작되자마자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낸 <달콤한 나의 도시>는 30대 여성의 일과 사랑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우선 누구와  맺어지는 가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주인공 은수를 굳이 홀로 남겨둔 채 끝낸 이유를 물었다. “흔히 사람들이 원하는 소설 속 끝맺음 ‘누구누구는 결혼해서 신혼여행을 떠났다’ 이런 결말이 정말 해피엔드일까요?” 라고 정이현 씨는 되묻는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전 은수에게 많은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마무리 하는 게 더 행복한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정이현 style

‘모든 고백은 이기적이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고백을 할때 그에게 진심을 알리고 싶다는 갈망보다 제 마음의 짐을 덜고 싶다는 욕심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녀의 소설엔 이렇게 건조한 문장이 대부분이다.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말만 쓴다. 독자들은 이성적인 문장에 생생한 현실감을 느낀다. “오랫동안 사회과학을 공부해 온 것이 오히려 문학을 하는데 플러스 요인이 된 거 같아요” 정이현 씨는 대학 때는 정치외교학을, 대학원에서는 여성학을 공부했다. “논리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문체를 써야 하잖아요. 정반합 딱 밝혀서 문장도 길어지면 안 되고.” 이로 인해 그녀 소설 속 문체들은 언제나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문장은 언제나 일인칭 화자인 여주인공이 직접 육성으로 말하는 방식을 취한다. “독자에게 가장 가깝게 호소력 있게 말하고 싶었어요”라고 작가는 일인칭 화자를 고집해온 이유를 설명한다.

왜 감추려 하죠? 

정이현의 소설을 논할 때면 늘 ‘도발적이다. 발칙하다’란 말이 빠지지 않는다. 데뷔

작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 <달콤한 나의 도시>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은 성적표현에 있어서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한 독자는 중학생인 아들이 남녀가 벗은 몸으로 포개진 장면을 보고 소설을 읽게 되었다며 항의 했다고 한다. 작가는 “왜 중학생 남자 아이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녀의 성을 접하면 안 되는 건가요?”라고 말한다. 사춘기 남학생들이 숨어서 포르노를 접하며 왜곡된 성 정체성을 갖기보다는 개방된 매체에서 성을 접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설 속 여주인공들의 또 다른 특징은 현실에 맞서 싸우지도 않고, 억압받고 좌절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등장하는 20대 초중반의 여성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이기적이고 영악하다.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처녀성을 이용하고 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죽이고 회사 CEO와 도망친다. 어느 10대 소녀는 아버지와 불륜 관계인 ‘채팅녀’의 낙태수술비를 위해 헤어누드를 찍고 자작 납치극을 벌인다. 소설을 통해 여성에게 불평등한 현실을 바꿔보거나 누군가를 계몽하고픈 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살고 있는 평범한 일상 속에 있는 누구나 암묵적으로 알지만 말하지 않았던 부분을 건드려 얘기해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타인과 소통한다는 것

정작 30대 중반에 접어든 작가의 연애, 결혼, 사랑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학업보다는 남자친구와의 만남이 중요했던 대학시절엔 ‘낭만적 사랑’을 꿈꿨었다. 30대가 되면서 주변사람들이 하나둘씩 결혼하는 것을 보면서 형식적이고 천편일률적인 모습이 우습꽝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단다. 딱 30대 중반인 지금은 “인간의 삶이 모습이 다 비슷해 보이지만 각자가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라고 말한다. 어떤 인생이든 자신과 타인과 다르다고 해서 그 가치를 함부로 판단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원 시절 ‘20대 여성의 성경험 연구’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내고 싶었다. “그때 내안의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는 걸 느꼈고 문학에 대한 욕망이 솟아올랐다” 논문을 연기시키고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지금에 이르렀다. 그녀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항상 서로의 다름을 깨닫고 상처받고 돌아선다. “그게 우리네 현실이니까요”라고 잘라 말하지만, 결국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은 ‘서로 소통하기’란다. “역설적이죠? 제 소설 속 인물들은 소통하지 않거든요.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소통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죠” 작가는 “다름을 인정하면 어느 순간 실핏줄처럼 통하는 서로를 발견해 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모순된 이야기를 자신 있게 말한다. 서로의 모든 걸 이해한다고 믿었던 친구 또는 연인이 나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상처받았다면, 정이현 소설 속 주인공들을 만나보자. 우리와 똑같은 상처를 가진 그들에게서 치유하는 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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