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겨오는 술 냄새, 후줄근한 차림새, 구걸하는 손.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노숙인의 이미지다. 이렇듯 노숙인들은 사회의 냉대 속에서 살고 있다. 가난의 고통과 설움으로 얼룩진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보내주는 단체가 있다.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의 임영인 소장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금, 노숙인은

▲ 임영인 소장.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쪽방, 고시원, 사우나, 만화가게 등에서 살고 있다. “많은 노숙인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갑니다. 돈이 떨어지면 길거리로 나가고, 돈이 조금 생기면 다시 쪽방에 가는 식이죠.” 우리 사회의 노숙인은 전국적으로 3200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임영인 소장은 그 수치를 10배 이상까지 예상했다. “총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어요. 노숙인은 주거자체가 불안정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니까요.” 정부는 길거리에서 생활하거나 쉼터, 보호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만을 노숙인으로 규정한다. 실질적인 노숙인은 이보다 더 많다.

IMF가 발생한 직후, 노숙인의 수가 급증했다.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98년,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가 설립되었다. 하루 평균 250명 이상의 노숙인이 이곳을 찾아온다. 까다로운 절차 없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는 노숙인들에게 잠자리, 먹거리를 마련해주고 의료원과 샤워장, 빨래방 등의 편의시설도 제공한다. 또한, 일자리 제공과 주민등록을 복원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여기저기 떠돌며 사니까 주민등록이 말소된 경우가 많아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된 것이죠.” 노숙인은 기초생활보장 등 최소한의 사회보장시스템도 지원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작지만 커다란 기적

작년 9월,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는 ‘성프란시스 대학’을 설립했다. 노숙인들의 재활을 위한 인문학 과정이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절박한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친다니 약간 생소해 보인다. “인문학은 삶에 대한 공부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자기정체성을 찾는 것이죠.” 이러한 교육을 시행하게 된 이유는 임영인 소장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20대부터 공장에서 생활하면서 노동자들과 함께 지냈다. 그 후 10년 동안 가난한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을 돕다가,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 노숙인들과 지내게 됐다. 그들과 생활을 하는 동안, 임영인 소장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제도적으로 가난을 재생산하는 사회구조를 깨뜨려야만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물질적으로 충족된다고 해서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당당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사회를 폭넓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제도의 개혁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었다. 음식, 돈 등의 일시적 도움도 중요하지만, 노숙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존감이었다.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며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성프란시스 대학을 설립하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여러 대학교들을 찾아다니며 강의실을 부탁했지만,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차츰 뜻을 같이한 여러 교수님들이 합류하고, 후원사도 생겨서 가까스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 후 배우고자하는 열의가 넘치는 사람들을 모집했다. 인터뷰를 거쳐 20명의 학생을 선발했다. 학생들에게 철학, 역사, 예술, 문학, 글쓰기 등의 과목을 가르쳤다. 임영인 소장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방법이었죠”라고 말했다. 노숙인들에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자신의 느낌을 잘 표현해 타인과 합의점을 찾아 가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지난 5월 4일 드디어 첫 수료식이 열렸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갑자기 사라진 사람도 있었지만, 13명이 무사히 수업을 마쳤다.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취업에 성공했다. 예전에는 취직하면 한 달을 채 못 견뎠는데, 지금은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단다. “불투명했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는 그들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그들이 살아갈 이유, 새로운 계기를 찾아 기쁩니다.” 얼마 후면 성프란시스 대학 2기 입학식이 열릴 예정이다.

넓은 곳을 향하여

노숙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 가족과의 유대마저 끊긴 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임영인 소장은 노숙인 문제를 좀 더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또한, 노숙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길 소망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들을 철저히 외면해왔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배려를 받지 못했을 뿐이지, 노숙인은 평범한 우리 이웃입니다.” 노숙인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우리는 잃어버린 그들의 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사회의 따뜻한 관심이 노숙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