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묻을 땅을 파고 있는 미나에게 장미가 묻는다. “언니, 일 끝나시면 혹시 저도 같이 묻을 건가요? 이만하면 된 거 같은데 계속 파시는 걸 보니 이게 2인용인가 해서요.” 장미는 시종일관 ‘난 언니가 무서워요’란 표정을 얼굴에 가득 담고 있다. 죽이지 않을 거란 미나의 말에 세상을 다 가진 양 웃는다.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의 백장미만큼이나 솔직한 그녀, 조은지(25)씨를 만났다.

연기하는 그녀

개성. 그간 조은지씨가 맡아왔던 역할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말이다. “제가 시나리오를 고르는 기준은 딱 두 가지예요. 내가 잘 할 수 있는가, 해보고 싶었는가.” 멜로의 요소가 있는 단편 드라마를 해본 적도 있지만, ‘사랑’이란 감정을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그 후 그녀가 맡았던 배역에는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은 없다. 그녀는 장난스레 덧붙였다. “제 얼굴에 그런 게 어울릴 리가 있나요.”

조은지씨는 기술적인 연기보다 자신의 영혼이 담긴 연기를 하기 원한다.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입된 연기가 진짜 연기라 생각한다. ‘배우는 자유로워야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부딪히면서 많은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소화해야 풍부한 감정이 연기에 녹아든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 <호텔비너스>의 ‘소다’는  그녀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다. “시나리오를 받아보는 순간 ‘이건 나다’라고 생각했어요.” 소다 안에는 인간 조은지가 오롯이 살아 숨쉰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다를 연기할 때 '영혼이 소다 안에 자연스레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에요

연예인이라고 꾸미거나 치장하지도 않고, 외부에 자신의 생활을 답답하게 닫고 꽉 막아놓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그냥 다 보여준다. <달콤, 살벌한 연인>의 ‘장미’를 선택한 이유도 “시기나 질투 같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는 인간적인 면이 끌려서”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유를 느끼며 살아간다. “스케쥴 없을 땐 그냥 놀아요. 상황을 즐기는 편이고 감정에 최선을 다하죠.” 웃고 떠들고 싶으면 친구들이랑 수다도 떨고, 혼자 있고 싶으면 조용히 사색을 즐기기도 한다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단다. “제가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수위가 있어요. 다른 사람이 그걸 넘어가면 직설적으로 말해버려요.” 솔직한 성격이긴 하지만 그간 맡았던 캐릭터들처럼 드세지는 않다. “연기했던 캐릭터들처럼 시끌시끌한 성격은 또 아니에요.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니가 어떻게 저런 역할을 맡았어?’ 라고 놀라거든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하고 싶은 말은 적극적으로 하지만, 말투며 행동은 오히려 차분했다.

캐릭터를 남기는 배우

함께 연기해 보고 싶은 배우는 누가 있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강혜정씨”라고 대답한다. 둘은 절친한 친구 사이다. “할 수 있다면 강혜정씨랑 <처음만나는 자유>에서의 안젤리나 졸리와 위노나 라이더 같은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조은지씨는 ‘혜정이는 멋진 친구다’라며 우정을 과시했다. “쟤 <파리의 연인>에서 ‘양미’잖아.” “쟤 장미잖아.” 그녀는 사람들이 캐릭터의 이름만을 기억하고 ‘조은지’란 배우를 몰라주는 것이 몹시 힘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위치를 몰라 방황하던 그 때 강씨는 브라질의 어느 두 여배우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한다. 두 여배우는 모두 실력과 미모를 갖춘 연기자였다. 그 중 한명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 배우였고, 또 한명은 이름보다는 캐릭터가 더 알려진 배우였다. 두 배우가 동시에 같은 시상식 후보에 오르게 되었는데, 결국 상은 캐릭터가 더 알려진 배우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혜정이가 해 준 이 이야기를 계기로 생각을 많이 바꾸었어요. 그때부터 캐릭터를 남기는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죠”라며 다시 한 번 연기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자유롭고 싶다는 그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캐릭터에 그대로 담아내는 배우. 조은지가 앞으로 또 어떤 캐릭터로 관객들의 가슴에 남게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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