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이경실, 조혜련, 정선희, 옥주현, 강수정 등의 출연자로 시작한 <여걸파이브>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는 컸다. 시청자들은 이들이 이제까지의 여성 출연자들과는 달리 내숭떨지 않고,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랬다. 진정한 ‘여풍’을 몰고 올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며 방영을 시작한 <여걸파이브>. 2년이 지난 현재 <여걸식스>로 코너명과 멤버도 교체됐다. 그러나 초창기의 ‘주체적인 여성 MC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의미는 점점 퇴색되었다. 남성 출연자들과 짝을 지어 게임을 하는 MC들의 모습은 여느 짝짓기 프로그램과 다를 바가 없다. 프로그램 제목의 ‘여걸’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여성 MC들은 부각되지 않는다. 

오락의 중심엔 언제나 남성이 있다

지난 2003년부터 방영해 온 SBS의 <야심만만>은 강호동, 박수홍 등 4명의 MC를 포함해 매주 섭외되는 패널들까지 거의다가 남성이다. 그 밖에도 매주 토요일 방영되는 MBC의 <무한도전>역시 유재석, 정형돈 등 6명의 남성 출연자들만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한 KBS 2TV <해피 선데이>의 코너인 <품행제로>역시 두 명의 남성 MC와 6명의 남성 패널들만으로 이루어졌다. 이동환(23, 학생)씨는 “너무 출연자 비율이 남성 쪽에만 치우쳐 조금은 단조로운 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남성이 오락 프로그램의 진행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다보니, 오락 프로그램에는 ‘여성’이 없다. “여성 MC가 등장하더라도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방송 중엔 별로 말도 하지 않고.” 이지연(20, 학생)씨의 말이다. 지난 5월 종영한 <소년탐구생활>. 여러 명의 남성 출연자가 난감한 상황에서 누가 가장 여유롭게 대처하는지를 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MC 김용만을 포함한 남성 출연자가 주어지는 미션에 참가하고, 진행은 박경림이 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MC 박경림은 마치 음식위에 얹어놓은 고명처럼 ‘그래도 여성이 한명 등장한다’는 구색만 맞추고 있을 뿐이다. 중간 중간에 한 마디씩 말을 던지는 것 뿐 MC로서의 특별한 역할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제작진들도 할 말은 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강영선 PD는 “MC를 섭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그 사람이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별을 따져서 진행자를 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혜인(20, 학생)씨 역시 오락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고, 시청률이 높으면 그만 아니냐는 의견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오락 프로그램 내에서 여성 출연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이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어차피 웃자고 만들고, 보는 프로그램인데 남녀 성비를 왜 따지나요?” 이혜인씨의 말이다.

공감도 하면서 재밌을 순 없나요?

▲ sbs <체인징유>의 MC들
한편 2005년 종영한 SBS의 <체인징유>는 매주 새로운 주인공이 외모나 성격을 바꿔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또 당당한 여성 4인방(남궁선, 최화정, 이혜영, 이소라)을 앞세워 이들의 일과 사랑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판 리얼 섹스&시티’라 불리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MC들이 여성 특유의 ‘감각’을 프로그램에서 여과 없이 보여준 것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방송 종영을 앞두고 <체인징유>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종영을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의 글들이 올라왔다. “여성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즐겨봤었는데, 끝나서 아쉬웠죠.” 박순영(26, 학생)씨는 요즘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전문 직업을 가진 여성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체인징유>같은 프로그램이 더 이상 제작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여성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오락 프로그램의 시청자는 남성만이 아니다. 오락 프로그램을 보는 여성들은 ‘여성’이 빠져있는 프로그램에서 때때로 소외감을 느낀다. 안소정(24, 회사원)씨는 “<소년탐구생활>같은 오로지 ‘남성’을 중심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 같다”고 말한다. 시청자가 공감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 과연 오래 갈 수 있을까. <소년탐구생활>같은 프로그램은 만들어지는데, 왜 ‘소녀탐구생활’은 없는 것일까. 남성, 여성 모두가 마음으로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의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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