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돕기 운동본부 사무국장 박정열씨

카레이스키, 고려인은 한국인에게 낯설다. 소련의 강제이주 이후 고려인은 한국인들에게 70년간 잊혀진 존재였다. 하지만 최근 고려인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며 고려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고려인들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외면했던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고려인 돕기 운동본부의 박정열(41) 사무국장을 만나 고려인들의 역사와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들어봤다.

역사 한 복판의 고려인

그는 “고려인들의 어려움은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과 함께 시작됐다”고 말했다. 1937년 연해주에 살던 18만 명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소수 민족 분리 정책에 의해 소련의 서부인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다. 밀가루로만으로 연명한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노인과 어린이등 1만 명이 사망했다. 아무 연고지도 없었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황무지를 개척하고 한인 집단 농장까지 경영했다. “탁월한 농업기술 덕분에 고려인은 소련 내에서도 잘 사는 민족이었습니다.”

1992년 소련이 붕괴되며 고통은 다시 시작됐다. 고려인들이 주로 살던 중앙아시아 지역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11개의 독립국가로 분리되었다. 러시아의 독립민족들은 러시아와 분리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강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박정열씨는 “독립국 안에서 배타적 민족운동이 일어나면서 고려인의 위치가 흔들리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소련 붕괴 이전에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던 고려인들은 소련이 붕괴되면서 직장을 잃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극빈층인 고려인 중에서도 과거에 학교 선생이었다거나 대학교, 석사이상까지 배운 지식인들도 꽤 있다고 말한다.

약해져가는 한국인 의식

현재 러시아와 CIS(독립국가연합)에 퍼져있는 고려인은 우즈베키스탄에 19만, 카자흐스탄에 10만, 연해주에 4만 명 등 총 55만 명에 달한다. 이미 강제 이주된 1세대들은 사망했고 2세대, 3세대로 내려와 현재 5세대까지 존재한다. 그는 “세대를 내려오며 태어난 러시아인과의 혼혈아도 5만 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1세대들이 한국에 돌아갈 날 만을 손꼽으며 살아온 반면 3세대 이후 고려인들에게 한국은 먼 나라다. 박정열 씨는 “실제적으로 3세대 이후의 고려인들에게 한국인의 핏줄이라는 의식은 미약하다”고 말한다. 1세대에 98%에 달했던 한국어 사용 비율도 3세대 이후 5%에 그치고 있다.

고려인 돕기 운동본부에서는 한국인의 자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자원 활동가를 파견해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한국어 교육은 고려인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어는 고려인들이 관광가이드나 한국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고려인들의 자립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약하다고 그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박정열 씨는 말한다. 소련이 해체될 당시 독일, 이스라엘, 터키 등 한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정착 지원금까지 주며 러시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 등의 자민족 인들을 본국으로 돌아오게 했다. 하지만 한국은 고려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원할 때 국적을 주고 생활 안정비를 제공하는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일대사는 현재 우즈베키스탄 문하영 대사에게 “한국에는 정말로 유랑하는 동포들을 본국으로 귀환 시켜주는 정책이 없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독일, 이스라엘 등 각 나라가 소련 해체 이후 흩어져 살고 있는 자국의 동포들을 모으기 위해 힘쓴 반면에 한국은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동포들에 대한 정책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

자녀들의 학비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오는 고려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고려인들은 3개월 단위의 관광비자만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고려인들은 지금까지 한국과 연해주, 우즈베키스탄 등 본국을 3개월에 한 번씩 이동해야 한다. 박정열씨는 고려인들이 3개월 주기로 본국을 오가는 길을 택하는 이유에 대해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더라도 한국에서 돈을 버는 편이 고국의 열악한 사정보다는 벌이가 낫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올해 7월부터 5년간 일할 수 있는 방문취업비자가 법으로 개정될 예정이어서 3개월간 고국을 오가야 했던 문제들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비자 문제 뿐 아니라 한국인들의 무관심과 차별도 고려인 이주노동자들에게 큰 상처가 되고 있다. 박정열 씨는 고려인들이 ‘한국 사람들은 왜 우리들을 얕잡아 보느냐’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고려인들은 한국에서 단지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 얼마 전 자녀 학비를 벌기 위해 한국에 왔던 고려인 이니나 씨가 임금을 받지 못해 생활고에 자살하는 끔찍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고려인돕기 운동본부

고려인 돕기 운동본부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현지에서 고려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방안으로 협력 농장을 만들고 이를 지원하는 사업과 극빈층을 위한 월동 준비 용품 지급, 의료 봉사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현지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교육을 하게 되는 대학생 해외봉사단도 파견하고 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250여명 파견하여 젊은 세대와 고려인들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고려인을 돕는 운동을 시작했다는 박정열 씨. 그는 “고려인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하는 숙제”라고 말한다. 한국은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이후 지금까지도 고려인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해왔다. 그는 “지금이라도 고려인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려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먼 이국땅의 동포들을 챙기고자 그는 오늘도 발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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